등록 : 2005.08.11 17:54
수정 : 2005.08.11 18:00
이념에 스러진 이 땅의 영혼들 위환 ‘진혼곡’
<손님> (황석영, 창비, 2001)
방북과 해외 체류, 5년 간의 복역생활의 경험을 가진 작가 황석영이 방북 뒤 독일에 머무는 동안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구상했다는 장편소설.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서 악마처럼 떠도는 ‘냉전’의 악령이 작가의 소명의식을 추동했을 것이다. 제목이 뜻하는 ‘손님’이란 천연두를 뜻하는 민속적 별명이면서 주체적 근대화에 실패한 우리에게 외부에서 이식된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뜻한다. 1950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사건을 배경으로 이 땅에 들어와 엄청난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고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와 그 소용돌이에 휩쓸렸던 여러 인간군상의 원한과 해원을 그려냄으로써 이 소설은 화해와 상생의 무드에 접어드는 21세기 한국사회에 커다란 희망의 빛을 던져주었다.
예수의 결혼 충격적 설정…빅셀러 부활 주도
<다 빈치 코드> (댄 브라운, 대교베텔스만, 2004)
루브르박물관장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던 기호학 교수와 암호 해독가인 박물관장 손녀가 다 빈치의 명화 <모나리자>의 기호학적 단서 등을 따라 역사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을 캐낸다는 줄거리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자손을 남겼다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논란이 일었다. 이 소설은 ‘팩션’의 흐름을 주도했다. 팩션이란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력을 결합한 것을 말한다. 44개 언어로 출간돼 2400만권 이상 판매됐으며 국내에서도 출간 1년 만에 230만부가 판매됐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출판 불황과 빅 셀러의 실종으로 위기에 빠진 소설시장의 ‘화려한’ 부활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톡톡 튀는 구어체로 “권위적인 고전은 가라!”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그린비, 2003)
18세기 연암 박지원의 사유를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철학적 개념어를 통해 풀어낸 저작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시간과 공간, 학문의 분과와 경계를 가로지르는 탈근대적 글쓰기의 한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다. 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는 엄숙하고 권위적인 텍스트로서 고전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텍스트로 고전을 되살려놓은 것이다. 특히 기존의 인문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톡톡 튀는 구어체의 고미숙표 문체는 독자들로부터 “신선하고 재밌다” “너무 가벼워서 부담스럽다”는 양 극단의 평가를 받으며 그 자체로 논쟁거리가 되었다. 이 책의 출간 이후 고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인문 · 사회 · 경제와 만난 과학…대중서의 모범
<과학콘서트> (정재승, 동아시아, 2001)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과학이 인문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의학 등 여러 학문들과 총체적으로 빚어내는 ‘교향곡’이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폭 넓은 시선을 과학에 접목시켜, 과학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총체적 세계 인식을 말하고자 한다. 현대 미술과 ‘카오스 이론’을 접목시키고, 서태지에 열광하다가 그의 헤어스타일에서 ‘프랙탈 구조’를 발견하기도 한다. 또 백화점 설계에 숨은 자본주의 심리학과 파레토 법칙을 예리하게 파헤치는가 하면 증권회사에서 물리학자를 모셔가는 이유를 설명하며 주가의 복잡성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교양 과학서이자 인문학적 성찰로도 읽히는 이 책은 모름지기 과학대중서가 지녀야할 미덕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볼거리 넘치는 역사…출판이 학문적 역량 선도
<한국생활사박물관 1~12> (편찬위, 사계절, 2004년 완간)
400명의 학자와 편집자, 디자이너, 화가, 각계 전문가들이 제작 과정에 참여하여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생활사를 670여 점의 그림과 1,740여 컷의 사진 등의 풍부한 시각자료를 활용해 재현했다. 역사적 전달방식을 ‘박물관’이라는 형식에 맞추었지만 박제화된 유물을 동적으로 접근하게 한 ‘실제감’이 돋보인다. 출판이 학문적 성과를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인 역량을 선도해간 대표적인 사례. 편집과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제작이 입체적으로 그리고 교향악처럼 조화를 이뤄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책만들기의 가능성을 구현해 한국출판사의 기념비적 업적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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