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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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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열풍 · IMF 회오리 휩쓸고 간 뒤 성공한 인생이 절박한 개인만 남았다 너도나도 부자되는 법에 몰리고 미래 계획하며 ‘자기개발서‘ 읽는다
2000-2005 디지털 문화의 급속한 진전, 아이엠에프(IMF)로 인한 세계화의 원초적 경험을 통해 끝없이 이어지는 ‘살아남기 게임’에 대한 두려움과 절박감을 느끼면서 맞이한 2000년대 출판계의 외양은 매우 화려했다. 1998년 이후 사라졌던 밀리언셀러가 2000년부터 3년간 해마다 4, 5종씩 등장했으니 말이다. 2001년 하반기 이후에는 사상 초유의 저금리 시대가 열렸고, 금융기관들은 가계대출을 한껏 늘렸으며, 길거리에서는 신용카드가 남발됐다. 때마침 불어닥친 ‘디지털 경제’는 기술 진보로 생산비용을 낮추면서 제품의 가격을 내렸고 글로벌화와 그로 인한 시장개방으로 외국의 값싼 상품이 마구 유입되었다. 외환 위기가 안정되어 물가는 진정되었으며 온라인 쇼핑몰, 대형 할인점, 홈쇼핑 등은 엄청난 가격할인을 해댔다. 벤처 열풍이 대단하던 이즈음 대중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황금가지)를 읽고 부자가 될 의지를 가져보거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진명출판사)를 읽으며 급변하는 현실의 흐름에 자신을 동승시켜보려 했다. 대중은 이런 ‘협박형 정보’를 서둘러 취하는 것이 디지털 혁명과 아이엠에프의 충격을 거치며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자신을 구제하는 것이라 믿었다. 때때로 마음이 공허할 때면 <가시고기>(조창인, 밝은세상), <국화꽃 향기>(김하인, 생각의나무) 같은 헌신적인 아버지 또는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 이야기로 심리적 도피여행을 떠나거나, <상도>(최인호, 여백) 같은 ‘상업적 출세담’에 빠져보기도 했다. 그래도 안정이 안 되면 <화>(틱낫한, 명진출판)를 다스려 스스로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벤처 열풍은 정말로 일장춘몽이었다. 그런 허망함을 ‘로또’로 달랠 것을 은근히 유혹받았지만 그렇다고 후유증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전 국민의 임시직화가 추진되는 듯한 분위기마저 일면서 심리적 마지노선인 ‘38선’이 무너지고 ‘이태백’은 일반화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핵에다 이라크전쟁에다 세상마저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2003년에 들어서자 ‘절박한 개인’만이 앙상하게 남았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앤디 앤드루스, 세종서적)나 <2막>(스테판 폴란 외, 명진출판)은 수렁에 빠진 뒤 위기를 돌파하고 인생대역전을 꿈꾸는 절박한 개인을 다뤘다.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바로 ‘돈’과 ‘부자’였다. <나의 꿈 10억 만들기>(김대중, 원앤원북스)를 읽으며 고달픈 사회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을 표출했으며 <한국의 부자들>(한상복, 위즈덤하우스)을 읽으며 누구나 부자가 되는 꿈을 꿨다. 연말이 되어서는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사이쇼 히로시, 한스미디어)을 읽으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새로운 ‘삶의 철학’을 갖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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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이 일반화하고 노동의 임시직화가 퍼져나간 2000년대에는, ‘절박한 개인’만이 앙상하게 남았다. ‘밥’과 ‘상상’의 리더십을 찾아 자기를 키우려는 개인들을 향해, 실용서든 교양서든 소설이든 개인의 상품성을 키우라고 말하는 책들이 쏟아졌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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