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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1 18:24 수정 : 2006.02.22 19:49

세종서적 ‘진화’

아깝다 이책

책 만들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편집자들이 다들 공감하는 바람이 하나 있다. 평범한 독자의 눈을 갖고 싶다는 것이다. 독자와 호흡하고 독자를 위한 책을 만든다는 사람들이 이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늘 원고의 결점을 잡아내고 고치는 게 버릇이 된 편집자들이 빨간 펜을 든 채점자의 눈을 버리고 어떤 책을 맘편히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오죽하면 ‘편집증()’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한자를 잘 보라). 이런 점에서 그들은 매우 불행한 독자들이기도 하다. 편집자라면 대개가 책을 사랑하는 독자였다가 아예 책을 만들기로 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편집자들이 어떤 책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고 소개하면, 독자들은 정말로 그 책을 눈여겨봐야 한다.

<진화> 역시 그런 책이었다. 편집자로 하여금 자신의 직업적 숙명을 망각하고 독자가 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책이야말로 ‘좋은 책’이라 주장하던 차에, 그런 책 하나를 만난 셈이었다. 사실 <진화>를 처음 원서로 대했을 때는 집채만한 공룡이나 전나무처럼 자란 고사리, 팔 달린 고래 등 ‘쥐라기 공원’ 식의 상상을 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책을 다 끝내고 난 다음 “이건 바로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야”라고 결론지었지만.

<진화>는 미국에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교육용 비디오, 온라인 강좌, 전시회 등 대규모 교육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씌어진 책이다. 고 스티븐 제이 굴드(고생물학자), 제인 구달(영장류학자), 도널드 요한슨(고인류학자) 등 일급 과학자들이 자문역 또는 제작팀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신예 과학저널리스트인 칼 짐머가 집필을 담당하는 등 화려한 기록을 뽐내는 책이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지루하고 의미 없는 책이라면 그런 포장이 무슨 소용인가. 과대포장을 접어두고 한 사람의 독자로서 만족할 수 있는 책인가가 중요했다. 그러자 그 모든 선전 문구를 뒤로하고 이 책이 던지는 암시와 재미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들 인간이 자연을 보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였고, 자연이 우리들 인간의 존재를 어떻게 규정해왔는가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가령 인류가 자랑해마지 않는 두뇌를 보자. 인류는 개체보다는 집단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집단을 이루어 살게 된다. 그러자 집단 내부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처리하기 위해 두뇌의 정보처리 능력도 발전하게 된다. 심지어 인류는, 타인도 나처럼 마음이 있고 생각을 할 줄 안다는 것, 즉 남의 마음을 추측하고 행동을 예측하는 ‘마음 이론’을 세우는 단계까지 온다. 나와 타인의 정체성의 개념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그 후의 일이 말해준다. 인류는 타인을 속여 이득을 취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욕망을 참고 타협과 양보를 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윤리와 도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인간 정신의 기원’ 같은 심각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우리가 아닌 다른 생명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진화론을 발표하면서 “살인을 고백하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던 착한 과학자 다윈의 이야기나, 강간 같은 도덕적 일탈 행위도 진화의 산물로 보아야 하느냐는 사회생물학 논쟁 같은 것은 소설보다 흥미롭다.  

책이 나온 지 1년이 가까워오는 데도 초판을 못 넘긴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안 팔릴 것을 감수하고 편집자가 좋아서 만드는 책들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재판쯤은 기대했던 책이기 때문이다. 책의 결점을 뜯어보려면, 이쯤에서 그만 독자이기는 포기하고 다시 편집자로 돌아가야 할 듯싶다. 안희곤/ 세종서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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