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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른 켄터키주 헤로즈버그 근처의 대평원. 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과 대평원의 조화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솟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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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13
생각 이상으로 잘 버텨주던 몸이 대화를 거부하며 파업을 일으켰다
여행 22일째 켄터키주 해로즈버그에 도착하자 무수히 잔매를 맞은 복서처럼 몸을 주체할 수 없다 몸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너무 얇아서 쉽게 상처가 나던 손바닥이 미끈하고 단단해졌다. 여행 출발지인 요크타운의 은총감독교회에서 출발 전날 하루에 소변이 12번이나 나왔는데 지금은 꼭 필요할 때만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신호가 온다. 처음엔 자전거에서 내리면 몸을 가눌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피로감이 덜하다. 처음엔 12시간을 내처 자기도 해서 여행까지 와서 일어나려면 알람 시계가 필요했다. 지금은 수면시간이 7, 8 시간으로 줄어들었다. 몸이 점차 강도 높은 여행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이다. 운동과 노동의 차이는 운동은 하고 싶을 때 한다는 데 있다. 피로하면 운동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쉬는 동안 근육이 자란다. 그래서 내일에는 더 높은 강도에 대응할 수 있다. 막노동하는 사람들에게 근육이 없는 이유는 그들은 쉬지 않고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자전거 횡단의 내 전략은 처음 몇 일 간은 들쭉날쭉 거리를 늘리고 줄여서 몸을 뒤흔들어놓는 것이다. 그래서 몸에게 항상 예상보다 높은 강도의 임무가 주어질 수 있음을 주지시킨다. 물론 강도 높은 임무를 계속 강요하면 몸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니까 바로 강도를 조절하는 단계로 간다. 그리고는 꾸준히 강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이번 주에 80㎞를 달리도록 했다면 다음주에는 100㎞, 그 다음 주에는 120㎞를 요구한다. 무한정 거리를 늘려갈 수 없다. 그러면 같은 거리를 달려도 빨리 달릴 것을 요구하게 된다. 광화문까지 2시간반을 뛰어서 출근 나는 원래 뛰는 것을 좋아해서 서울 남쪽 끝에 있던 집에서 광화문까지 뛰어서 출근하곤 했다. 2시간 반이 걸린다. 양재천, 탄천, 한강변으로 뛰어서 동호대교를 건넌 뒤 옥수동 뒤의 매봉을 넘어서 남산으로 가고 남산 순환도로를 휘돌아 남대문으로 내려온 뒤 광화문까지 오는 코스를 개발했다. 나는 이보다 더 서울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코스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는 광화탕으로 골인해서 땀을 씻고 출근했다. 처음엔 반만 뛰었다. 동호대교를 넘어오면 옥수역에서 3호선을 타고 출근했다. 그러다 어느 날 ‘풀코스’로 전환한 뒤 목욕탕에서 나오면 피곤해서 바로 퇴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뛰어야 심리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내 꿈은 동호대교 입구까지 자전거를 타고 와서 한강을 헤엄쳐서 건넌 뒤 뛰어서 출근하는 것이다. 그러면 비좁은 지하철에서 졸면서 한 시간을 가는 대신 전신운동을 하면서 출근할 수 있다. 실제 그런 꿈을 안고 잠실대교 밑에서 한강을 왕복 도강한 적이 있었다. 수영하는 내 손이 안 보일 만큼 물은 탁했지만 냄새는 심하지 않았다. 그날 수영과 달리기를 결합한 한강도강대회에 같이 참가한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주검은 며칠 뒤 동호대교 부근에서 떠올랐다. 비극적인 사고였다. 물은 생각보다 차갑다. 그리고 그 날 비까지 내렸다. 물이 차가우면 심장이 얼어붙으면서 펌프질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많이 숨을 들이마셔야 충분히 산소가 공급된다. 그러려면 더 오래 물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호흡의 리듬을 잃게 된다. 불규칙한 호흡은 더욱 심장을 오그라지게 하고, 더 많은 숨이 필요하고…. 경기가 시작돼 사람들이 한강에 뛰어들자마자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아우성이 들려왔다. 다른 사람들의 비명은 공포를 가중시킨다. 물결이 덮쳐 숨을 한번 쉬지 못하게 되면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게 커지고 그러다 심장도 멈추게 된다. 한강에서 실제 수영해야 할 거리는 800m밖에 안되기 때문에 사실 웬만큼 수영하는 사람이라면 어려운 거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어려움을 예상해 오랜 준비운동으로 심장을 덥혀놓아야 한다. 당시 대회주최쪽은 장소사용 허가 문제에만 신경을 쓰다 충분히 준비운동을 시키지 않았다. 어쨌든 사람들이 수영해서 한강을 건너 출근한다면 그것 이상으로 한강수가 깨끗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관광진흥책으로 도강허가증을 내주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지 않을까. 그게 먼 옛날의 일이 돼버렸다. 2년 동안 미국 생활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 운동할 시간을 내지 못했다. 몸무게가, 특히 배에서 집중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매일 느끼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건강은 항상 나빠지고 좋아질 수 있는 유동적인 과정이다. 가장 건강할 때에 비해 10㎏이나 늘었다. 어느 날 한 시간도 달리지 않았는데 헉헉대는 것을 느꼈을 때 중년의 무게를 뒤집을 음모를 꾸몄다. 자전거 여행은 그 중 하나다.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오래 전부터 조금씩 자전거 타는 거리를 늘려가며 근육을 키우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전혀 연습을 하지 않고 에너지를 비축해 놓는 것이다. 나는 후자였다. 불가피한 나쁜 선택이었다. 여행 3개월 전까지는 주말마다 지도교수였던 스튜어트 루리와 라이딩을 연습했다. <시엔엔(CNN)방송>의 부사장 출신 고참 언론인인 루리 교수는 73살. 하지만 자전거에만 올라타면 50대 청장년이 된다. 20년 라이딩 경력의 고수다. 그와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양쪽 끝에 자전거 전용 루트가 지정돼 있다. 힘줄을 뚫고 튀어나온 왼쪽 쇄골 2월 중순 어느 날 그 루트를 타고 전속력으로 돌아오는데 차 한대가 월마트 주차장에서 빠져나왔다. 자전거 전용 루트를 지나가고 있었고 내가 그곳까지 갈 때는 그 차가 루트를 통과해서 본 도로로 접어들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속력을 늦추지 않고 가는데 그 차가 갑자기 루트에 멈춰 섰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브레이크를 잡았다. 그러자 속력을 못 이긴 자전거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동시에 내 몸이 공중을 날았다. 왼쪽 어깨부터 아스팔트에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기절했다가 눈을 떠서 루트를 가로막은 차를 보려고 했지만 그 차는 사라졌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중 의대생이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핸드폰으로 구급차를 불렀다. 몇 분 안돼 구급차 두 대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무릎이 깨져 피가 철철 났지만 왠지 창피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 대는 소방서, 다른 한 대는 병원에서 왔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들것에 결박했다. 그리고 병원 구급차 안으로 실어갔다. 여행 3개월째 연습도중 부상을 당했다
미국 의료시스템은 과잉치료에 호객수준
구급차를 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응급실로 끌려가 진통제 처방만 받고 1500달러를 내야했다 응급차 안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병원에서 온 구급요원들은 젊은 여성 2명. 디라는 이름의 요원이 적극적이었다. 나는 구급차로 실려갈 정도는 아니라면서 내리겠다고 했고 디는 큰 가슴을 들 것에 묶인 내 몸에 붙이며 “하니, 상태가 안 좋아. 응급실에 가서 치료받아야 해”라고 설득했다. 나는 미국인 누구로부터도 하니라는 호칭을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내 머릿속에는 구급차를 한번 타고 가면 최소한 1천달러는 나오는데 하는 말이 맴돌았다. 결국 돈 얘기를 꺼냈더니 디는 또다시 징그럽게 달라붙어서 “하니, 병원이 관대하기 때문에 정 돈이 없으면 분할 납부를 하게 해줄 거야”라고 말했다. 분할 납부해야 할 만큼 치료비가 나온다는 뜻이다. 아픈 데가 어디냐고 확인해달라고 했다. 두 팔 뻗기, 두 팔 들었다 내리기, 누웠다 일어서기, 고개 돌리기. 모든 테스트에서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사지를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내가 “봤지?” 그렇게 말했을 때 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결박을 풀어달라고 하고 일어서는데 왼쪽 어깨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만져보니까 쇄골이 툭 튀어나와 있는 게 아닌가. 쇄골이 두 동강 난 게 틀림없다. 디는 “그래, 너는 심각한 상태야”라고 말했다. 거기서 내가 졌다. “그래, 가자” 했더니 디는 표정이 밝아지면서 바로 운전사에게 “갑시다”하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정맥주사를 놓겠다고 해 그건 거절했다. 응급실에서 온 몸 곳곳 불필요한 X레이를 찍어야 했고 결국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깨와 팔이 맞붙은 곳에는 세 가지 뼈가 붙어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쇄골이 힘줄을 뚫고 튀어나온 것. 부러진 것은 아니다. 나중에 정형외과 의사는 한번 튀어나온 쇄골은 원래 상태로 집어넣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응급실에서는 진통제 처방만 받아왔는데 진통제도 너무 세게 처방해서 정신이 혼미하고 구토가 나왔다. 나중에 진통제를 처방의 4분의 1만 복용하니까 진통효과도 있고 정상적인 생활도 가능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을 때 디가 복도로 걸어가길래 “안녕”하고 인사했더니 디는 변심한 애인처럼 수줍게 고개를 돌리고 하니의 눈을 피했다. 미국 의료 시스템은 한번 걸리면 과잉치료에다 거의 호객 수준이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까지 가는데 10분도 안 걸렸는데 1500달러 가까이 나왔다. 학생의료보험회사에서 일부를 부담하기는 했지만 미국 의료제도의 실상을 아는데 비싼 수업료를 냈다. 장거리 여행 계속할 수 있을까 어쨌든 쇄골이 분리되는 바람에 연습을 하지 못했다. 쇄골은 몸의 좌우대칭을 무너뜨리며 지금도 튀어나와 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체력의 바닥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면서 몸의 변화를 처음부터 관찰하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횡단을 시작하면서 걱정했던 왼쪽 어깨는 괜찮은데 오른쪽 어깨가 쑤신다. 왼쪽 어깨가 제 구실을 못하는 만큼 더 많은 하중이 오른쪽에 걸린 탓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엉덩이가 아파서 오래 탈 수가 없다. 자전거를 오래 타지 않은 사람들이 겪는 증상이다. 다리나 심장은 생각보다 괜찮다. 가끔 몸이 생각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것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이제 매일 100㎞는 우습지 하고 생각할 때 몸이 나자빠진다. 여행 22일째 켄터키 주 해로드스버그에 도착했을 때 그랬다. 오늘은 80㎞밖에 타지 않았는데 몸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일찍 도착해 뭔가 해보려고 했는데 무수히 잔매를 맞은 복서처럼 발이 엉켜버린다. 낮잠을 세 시간 늘어지게 잤다. 몸은 나와의 대화를 거부하며 파업을 벌였다. 장거리 여행을 수행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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