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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1 19:42 수정 : 2005.08.11 19:46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장 마생 지음. 양희영 옮김. 교양인 펴냄. 2만9000원.

‘공포정치 화신’ 낙인찍혔지만
그의 삶 마지막 5년 따라가니
민중의 광범위한 지지받는
‘이상주의적 혁명가’ 보인다
피 부른 건 시대적 한계였다

이 책에는 모두 세 개의 서문이 있다. 700여쪽에 걸친 본문에 앞서 읽어볼 것을 감히 추천한다. 우선 지은이인 장 마생의 초판 서문(1956년)과 2판 서문(1970년)이 있다. 초판과 2판 발행 사이에 68년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최갑수 서울대 교수가 한국어판 서문을 썼다. 1970년 이후 사회주의 국가는 몰락했고 ‘좌파’는 전세계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서문들은 로베스피에르에 대해 쓰고 읽는 일이 지독하게 ‘정치적’인 행위임을 일러준다. 번역자의 표현을 빌자면 로베스피에르를 둘러싼 논쟁은 ‘영원한 내전’이기도 하다. 그는 끊임없이 어느 편에 가담할 것인지를 집요하게 묻는 ‘현재적 인물’이다.

장 마생은 초판 서문에서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다. 온건공화주의자들에 의해 공포정치의 화신으로 평가절하됐던 로베스피에르를 ‘복권’시키려는 뜻도 가감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2판 서문에서는 공포정치의 책임이 로베스피에르 스스로에게 있음을 지적하며 ‘궤도 수정’을 시도했다. 다른 좌파 그룹에 대한 탄압, 민중운동의 토대를 억압적 관료기구로 대체한 행위 등으로 인해 “도끼가 (로베스피에르) 자신을 후려쳤다”는 것이다.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장 마생의 ‘좌익적 해석’을 다시 독해하는 최 교수의 서문도 특별하다. 그는 “혁명정부를 조직해 승리를 이룩했지만 그 ‘조직화’ 과정에서 민중운동의 활력을 소진시킨” ‘혁명의 역설’을 말한다. 그것이 로베스피에르 몰락의 궁극적 이유다. 혁명 이후 생뚱맞게도 나폴레옹이라는 독재자가 등장한 것은 “사회구조 내부의 (민중운동)동력의 탈진”때문이었다.

각 서문들의 미묘한 차이 속에 로베스피에르가 있다. 그는 혁명을 꿈꾸는 모든 레닌주의자의 진정한 원형질이다. 동시에 혁명에 진저리치는 모든 보수주의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악마적 마키아벨리의 전형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1789년 삼부회의에 제3신분 대표로 선출된 31살 이후 1794년 단두대에서 처형될 때까지, 로베스피에르의 ‘5년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의회진출 초기의 로베스피에르는 “어투와 사고가 지극히 온건”했고, “폭력이나 유혈없이 반혁명을 제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혁명의 원칙을 가장 단순하고 가장 극단적인 결과로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짧은 시간 내에 좌파를 대표하는 혁명가로 급부상했다.

장 마생이 보기에 로베스피에르가 공포정치의 길로 걸어간 이유는 한 가지다. “예외적인 상황의 가차없는 압력” 때문이었다. 혁명을 위협하는 안팎의 도전에 맞서 ‘내전’을 치러야 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는 로베스피에르의 ‘설익은’ 혁명 이념을 구현할 사회경제적 단계가 아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비극은 이들의 내전이 프랑스 혁명의 주역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가장 좌파적인 블록 내부에서 이뤄졌다는 점에 있다. 거의 모든 혁명가들은 처형되거나 망명하거나 은둔하거나 변절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상퀼로트(프랑스 혁명기 민중)의 혁명적 열정을 파괴”했고, 바로 이 점 때문에 로베스피에르의 영원한 정치적 기반이었던 민중들조차 그에게 등을 돌렸다. “혁명이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다만 여러 ‘편견’과는 달리 로베스피에르가 그 최후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당대 민중의 광범위하고도 일관된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분명 로베스피에르는 민중과 괴리된 이기적 권력자가 아니라, 민중의 대의를 위해 달려온 이상주의자였던 것이다. 생생하게 남아있는 그의 여러 연설문과 일기들이 이를 증언한다. 장 마생은 결국 로베스피에르를 “시대적 한계에 갇힌 인물”로 평가하는 듯하다.

혁명의 시대가 끝나버린 듯한 오늘, 로베스피에르를 통해 프랑스 혁명의 숨가쁜 결을 읽는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은 아마도 이런 것일 터이다. ‘그를 가뒀던 시대적 한계는 이제 그 새로운 지평을 열었는가.’ 로베스피에르는 지금 내 옆에 앉아 있거나, 반대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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