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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1 19:50 수정 : 2005.08.11 20:03

성진이 하룻밤 꿈속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깨어나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는다는 줄거리의 김만중 소설 <구운몽>은 ‘인생 일장춘몽’이라는 관념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구운몽>을 자수로 표현한 10첩 병풍 ‘구운몽도’ 가운데 일부. 19세기 초 작품.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규방문화>(허동화 지음, 현암사·1997)에서.

공주, 규수 따위로 행복하게 살던 여인들이 한 사내의 아내아 첩으로 자신을 굴종시키다니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여덟 여인의 한탄을 꼼꼼히 살펴보면 여성 억압적인 현실을 받아즐이는 것이 아니라 틈만 나면 고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

고전 다시읽기/ 김만중 ‘구운몽’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곳은 생가가 아니라 박물관이란 말이 있다. 그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을 엄청나게 곁눈질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그런데 한글소설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이야말로 박물관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실제로는 병자호란의 전화를 피해 강화도로 탈출하던 배 위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모친 윤씨의 훈도로 공부를 시작하여, 진작부터 한문고전을 섭렵하였고, 결국 위대한 사상가이자 문필가로 성장하였다. 유배지에서 멀리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는 이 <구운몽>은 그의 글쓰기 기법을 한껏 과시한 소설이다. 그렇기에 한문고전의 지식이 없으면 한 구절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한문본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글본도 그렇다.

그런데도 <구운몽>하면 누구나 친근하게 여긴다. 고등학교 국어책에 실릴 만큼 널리 알려진 고전이라 그럴 것이다. 교실에서는 이 소설을 두고, 인생 일장춘몽이라는 관념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으며, 불교의 공() 사상을 주제로 하였다고 가르친다.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사상이 녹아 있고, 액자소설의 구조를 지닌다고도 들려준다. 하지만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더구나 국어책에 실린 부분은, 한문본을 기준으로 전체 16장 가운데 마지막 부분인 16장이다. 그 부분만 읽는다면 주인공 성진()이 양소유()가 되어서 현세적 욕망을 성취해 나가는 ‘발전적 구조’를 파악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머지 장을 교과서에 실을 수는 없을지 모른다. 제1장에는 성진이 용궁에 심부름갔다 오다가 돌다리에서 여덟 선녀를 만나 희롱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머지 14장에는 양소유가 여덟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그 여덟 여인을 아내와 첩으로 삼는 이야기가 나온다.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볼 때 양소유보다 더한 ‘공공의 적’이 또 있을까.

주인공 성진은 여덟 선녀와 희롱한 죄로 인간세계에 내쫓겨, 중국 수주현에서 양소유로 태어난다. 팔선녀도 중원이나 이민족 지역이나 용궁에 태어난다. 소설의 공간 배경이 참 넓다. 양소유는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고, 대원수로 외적 토벌의 공을 세우며, 천자의 부마가 되고 승상의 관직에 이른다. 그러는 사이에 여덟 선녀들을 차례로 만나 두 사람의 아내와 여섯 사람의 첩을 거느린다. 만년에야 인생무상을 느끼게 되는데,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

양소유는 욕망을 당당하게 성취해나가는 자다. 그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지녔던 내심의 욕망, 곧 대장군으로서 공을 세우고 조정에 들어와 재상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픈 욕망을 성취해나갔다. 그 뿐인가. 그는 그러는 동안에, 미모와 재능과 기예에 뛰어나고 여중군자의 기품을 지닌 여인들을 여덟 명이나 ‘사랑하였다.’ <구운몽>의 묘미는 우선, ‘욕망하는 주체’를 당당하게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 있다. 도학적인 리고리즘을 벗어던진 그 인물형상에는, 사상의 자유로움을 지향한 김만중의 의식세계가 투영되어 있다.


‘욕망하는 주체’ 주인공으로 내세워

여덟 여인의 삶은 어떤가, 일견 어처구니가 없다. 그들은 기생, 규수, 몸종, 여협, 용왕 딸, 공주로서 살아가던 ‘행복한’ 삶을 다 버리고 오직 한 사내의 아내나 첩으로 자신을 굴종시키고 말았다.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보면 남성중심적이고 봉건적이다. 하지만 여덟 여인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다시 보자. 여덟 여인은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보완적 관계다. 더구나 그들은 현실을 온전히 승인하지 않는다. 여자로 태어나 ‘총체적으로’ 억압받고 있는 현실을, 틈만 나면 고발한다. 양소유가 부마로 뽑히자 파혼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정경패는 불전에 소문()을 올려, “전생에 죄가 많아 여자로 태어난 데다가 형제도 없습니다”라고 탄식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종이되 자매와도 같은 가춘운의 처지를 진심으로 측은하게 여겨, “여러 부처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어 대대로 날 때마다 여자 몸이 되는 것을 면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발원한다. 난양공주는 정경패의 사람됨을 살피기 위해 이소저로 분장하고는 정경패를 찾아와 이렇게 하소한다. “혼자 한탄하기는, 남자는 천하에 친구를 구해 덕성을 도움받는데 여자는 종들 외에는 접촉이 없으니 잘못이 있어도 누가 있어서 바로 잡아주며 학문함에도 어디에다 질문하여 바로잡겠습니까?”

소설의 이야기 축은 양소유가 욕망을 성취하고 인간사의 허무를 깨달음에 있다. 그러나 팔선녀는 성진을 만날 때부터 이미 발랄한 인격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서로의 우정을 과시한다. 그리고 인간세계에 내려온 뒤 그들은 각기 스스로의 처지를 냉철하게 파악하되 그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사랑을 선택한다. 그리고 여성 동지로서의 행보는 양소유를 때때로 압도하기까지 한다.

세상에 가장 완벽한 남성은 절대의 존재로서 유일할 수밖에 없다. ‘절대’는 ‘상대’가 끊어졌다는 말이다. 양소유와 같은 절대의 전형을 제시한 이 소설이야말로, 현실 속의 불완전하고도 추할 수밖에 없는 남성들을 지독하게 폄하한 소설이 아닐까. 이 소설의 또 하나의 매력은 바로 여성 캐릭터들이 나누는 짙은 우정에 있다. 여덟 여성이 양소유를 공유한다는 이야기는 실은 알레고리의 성격이 짙다. 그것은 권력 지향의 남성들 사이에서 우정이 사라진 사실을 아프게 고발한 것이리라. 소설에서 천자 및 월왕과 양소유의 사이는 평등한 우정 관계가 아니다. 그들의 관계는 명량제우(, 현명한 군주와 어진 신하가 만남)의 이상을 가탁한 것으로 보아야 하리라. 여덟 여성으로 하여금 한 남성만 바라보도록 이야기를 구성한 것은 이 소설이 지닌 한계라면 한계다. 하지만 좋은 독자라면, 김만중이 여성들의 우정을 그려냄으로써, 당시의 남성중심 사회가 관용을 잃어버린 실정을 비판하였음을 읽어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불교의 가치 인정한 ‘개방성’

여성들이 구원받는 이야기는 <묘법연화경> 이래 불교의 중요한 구원 사상이다. 소설의 처음에 ‘노존사가 남악에서 묘법을 강론하다’라고 하였을 때의 ‘묘법’은 일반적인 불법을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조선조의 여성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던 <묘법연화경>을 가리키는 듯하다. 주자학의 이념은 평등을 주장하지만, 역사적 현실은 그 구현을 방해하였다. 따라서 이 소설이 남녀무차별의 구원의 이상을 다룬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똘레랑스의 이념을 추구하고 주장하였다. 노론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누구보다도 주자학을 깊이 연구했던 그였지만, 놀랍게도, 불교의 계몽적 가치를 인정하였다. 게다가 그는 속류 학자들이 불경의 일언반구도 읽지 않은 채 불교를 무조건 배척하는 작태를 비판하고, 모든 사상의 맥을 자기 스스로 짚어보라고() 하였다. 그뿐인가. 병자호란 때 최명길이 화의를 주장한 것도 김상헌이 척화를 주장한 것만큼이나 민족을 위한 방편이었다고 말하였다. 그만큼 <서포만필>은 우리 지성사에서 유례가 드물 정도로 사상의 개방성과 정치 이념의 포용성을 강조하였다.

심경호/고려대 교수·한문학
이 소설에는 양소유와 군졸들이 집단으로 동일한 꿈을 꾸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세상을 환몽의 메트릭스 세계로 보는 상상력이 이 소설에는 담겨 있다. 그리고 한문본은 한시들을 많이 삽입해 두고,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감상법을 자세히 분석해 보였다. 흡사 김만중이, 어머니 윤씨에게서 받은 초기 교육의 은공을 어머니를 비롯한 여성 전체에게 갚으려고 한 것처럼 여겨진다. 지면 관계상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50자 서평

◇ 박경주(53·수필가) “육관대사의 불제자 성진이 하룻밤 꿈속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깨어나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불법에 귀의하게 된다는 내용. 무척 흥미있게 단숨에 읽었다. 세속적 쾌락을 좇아 방황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권하고 싶다.”

◇ 재미있당(알라딘 마이리뷰에서) “책을 읽으며 법정 스님의 무소유란 말이 떠올랐다. 인간이란 정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존재인데 왜이리 현세에서 집착하는 것이 많을까?”

◇ 책하고나쌤쌤(알라딘 마이리뷰에서) “한번 꿈꿔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은 소유의 삶.. 그러나 구운몽의 거의 모든 페이지를 차지하고있는 소유의 삶보다 겨우 몇장의 페이지 속에 그려진 성진의 삶이 더 길게 여운에 남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 다음주 이후 고전 <성>(카프카), <대화>(갈릴레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마틴 루터 킹)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cheolwoo@hani.co.kr

서평자 추천도서

 구운몽

 김만중 지음, 송성욱 옮김

민음사 펴냄(2004), 7000원

(현대어로 알기 쉽게 풀이)

 구운몽

정규복·진경환 풀어옮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펴냄(1996)

(여러 한문·국문본들을 조사해 충실한 주석, 절판)

서포 김만중의 생애와 문학

 김병국 지음

서울대출판부 펴냄(2001), 1만1000원

(김만중의 삶과 문학을 깊이 있게 고찰)

서포연보

 김만중 지음, 김병국·최재남·정운채 공역

서울대출판부 펴냄(1992), 1만2000원

(김만중 일생을 조망하는 새로운 연보 발굴해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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