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11 20:05
수정 : 2005.08.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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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첫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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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 백가흠(31)씨가 첫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문학동네)를 묶어 냈다. 숨막히도록 암담하고 우울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안간힘을 다해 매달리는 기묘한 사랑의 양상들을 그렸다.
표제작에서 ‘귀뚜라미’는 태풍의 이름이다. 태풍 귀뚜라미가 들이닥치게 되는 자그마한 연륙도()에 ‘한 지붕 두 가게’가 있다. 바람횟집과 달구분식. 바람횟집의 주인은 서른일곱 살 여자와 스물세 살 남자고, 달구분식의 주인은 약간 모자라는 노총각 달구와 그의 노모다. “바람횟집의 남자가 막 여자의 질 안에 삽입을 시작했을 때, 달구분식의 노모는 가지런히 쪽찐 머리가 일순 헝클어지도록 세차게 귀뺨 한 대를 아들에게 얻어맞았다”(35쪽)는 문장은 양쪽 집의 일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큰누나 뻘이 되는 여자와 결혼할 생각을 하는 바람횟집의 고아 출신 청년은 술만 마셨다 하면 제 어미를 구타하는 달구를 제 쪽에서 흠씬 두들겨 팬다. 바람횟집 여자는 주말 대목을 노리고 거금을 들여 전어를 구해 놓지만, 태풍 귀뚜라미가 몰고 온 해일이 횟집을 덮칠 때 물살에 휩쓸려 전어와 함께 떠밀려가고 만다. 같은 시각 옆집 달구분식에서는 아들의 뭇매를 피해 벽과 장롱 사이의 틈으로 숨어들었던 노모가 그 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수장되고 만다.
표제작과 같은 암울한 사랑은 등단작인 <광어>에서도 비슷하게 그려진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여자가 자신이 어렵게 모은 돈을 가지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 남자는 “어머니가 나를 버리던 날이 기억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남자는 아내를 죽이기로 결심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구두>는 어떤가. 아내의 ‘불륜’을 확인한 남자는 아내는 물론 노모와 아이까지 죽인 다음 자신도 죽으려다가 아내가 사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을 판 것임을 알게 된다. 죽기 전에 몸을 깨끗이 하고자 들어갔던 안마시술소의 맹인 안마사에게 성욕을 느낀 남자는 결국 맹인 안마사를 집까지 미행해서 강제로 범하고는 그 앞으로 유서를 쓰고 통장을 남겨 놓은 채 목을 매단다. 사랑을 가능케 하지 않는 불리한 여건에 맞서 뒤틀린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몸부림들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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