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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이화여대 교수·수학 WISE거점센터소장 hsllee@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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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만난 사회
최근에 대학진학을 앞둔 딸이 과학자가 되고 싶은데 수학을 못해서 포기해야 할 것 같다며 수학을 원망하는 분을 만났다. 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과 과학을 연계하지 않고 따로 교육한 데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과학과 공학은 수학 지식 없이는 불가능한데 수학 때문에 과학자의 길을 일찍이 접어야 하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많은 사람들이 수학은 모든 것의 기본이라면서도 실생활에는 별로 쓸모가 없다는 등 상반된 견해를 나타낸다. 수학 얘기만 나와도 많은 사람들이 머리 아파하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단다. 과연 수학은 이렇게 사람을 괴롭힐 수밖에 없는 것인가? 지난주에 이화여대에서는 경기 안양시의 여중생들을 대상으로 여학생 친화적인 수학·과학캠프가 열렸다. 포물선의 초점을 이용해서 태양열 에너지 조리기구를 만들고 소시지를 구웠다. 또 라일락꽃처럼 자기 닮음을 끝없이 반복하는 패턴 곧 프랙탈 모양을 소개한 뒤 조별 활동으로 정사면체로 이루어진 삼차원의 프랙탈을 만들었다.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런 것도 수학인지 몰랐다. 아주 재미있다. 디자인으로 쓸 수 있겠다’는 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흥미로워했다. 앞으로 수학을 좋아할 것 같다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자연현상의 프랙탈 모양은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간단한 기본 모양에서 전체를 생성하는 ‘재생산 규칙’을 알아내기만 하면 눈깜짝할사이에 컴퓨터상에서 재현해 낼 수 있다. 또 상상의 나래를 펴면 수많은 아름다운 수학적 패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편, 과거에는 복잡한 자연생태계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수학과 컴퓨터의 발달로 자연생태계도 규칙을 찾아내면 컴퓨터상에 가상 인공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가상생태계상에서는 수천, 수만 년의 긴 세월 두고 서서히 일어나는 진화의 과정을 하루 밤 사이에 재현해내서 진화의 비밀을 얼마간 이해할 수도 있다. 또 마구잡이로 개발하고 있는 지구환경 상태를 미리 알아서 보호 조처를 강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초·중등 수학은 어려운 수식만 푸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의 연계 속에 실생활에 적용되고 자연을 이해하는 언어로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시도는 학생들의 수학적 학습동기를 유발해 일차적으로는 우수한 과학자를 기르는 데 기여할 것이고, 나아가 수학이 과학문화 확산에도 큰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데카르트가 “나에게 모든 것은 수학으로 귀결된다”고 말한 것을 좀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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