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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8 15:21 수정 : 2005.09.01 15:29

중국에서 ‘포스트 6세대’ 감독 중 한명인 우스셴의 첫 영화 <홀로 기다리다>의 한 장면. 지난 4월 대학생영화제에서 받은 호평을 바탕으로 극장 진출에 성공했다.

자장커, 장위안 등 ‘6세대’ 감독들이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주변부 이야기 담아내 반체제 인사라는 딱지 받았다면 류하오, 우스셴, 장양 등 ‘포스트 6세대’ 들은 독립제작 방식을 선호하는 점에서 닮았지만 흥행시장과 관중 중시한다는 점에서 6세대 감독들과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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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6세대 영화감독의 대표주자인 자장커(35)가 2002년 칸영화제에 들고갔던 <소요에 맡기다>(任逍遙)란 작품에는 한 젊은이가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기 위해 무려 30여번 이상 ‘부르릉’ 거리는 고투의 장면이 나온다. 기초공사만 진행된 신흥 개발지구의 황량한 벌판에서 걸릴 듯 말 듯 한없이 울린 낡은 오토바이의 기계음은, 되는 것도 되지 않는 것도 없는 현실에 대한 중국 ‘펀칭’(憤靑, 분노한 젊은이)의 절절한 외침이었다.

오늘날 중국 영화계의 젊은 감독들은 자장커의 오토바이 시동 소리와는 다른, 새로운 고투를 시작했다. 이른바 ‘6세대’라 불리는 자장커, 장위안, 왕샤오슈아이 등의 감독들이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주변에 처한 이들의 분노를 담아냄으로써 ‘체제 비판적’이라는 딱지를 받았다면, 이들은 오히려 중국 영화시장의 진입을 위해 고투하고 있다. 6세대 감독들이 ‘지하영화’를 만든 뒤 칸, 베를린, 베니스 등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함으로써 국내 시장에 진입하는 우회로를 선택했다면, 이들은 굳이 국제영화제를 겨냥하지 않고 지금 현재의 중국 관중과 호흡하길 더 원한다. 6세대 감독들이 사회의 주변에 눈길을 돌리고 그에 대한 감독의 개성 있는 표현을 중시했다면, 이들은 “우리 할머니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대중 노선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중국신문주간> 최근호(7월18일 발행)는 이들을 ‘포스트 6세대’라는 이름으로 묶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을 꼽자면 류하오(劉浩·36), 우스셴(伍仕賢), 장양(張揚)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6세대 감독들과 나이나 경력에서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주류 영화계’에 편입해 들어가는 대신 제작자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독립제작 형식을 선호하는 점도 닮았다. 그러나 이들을 6세대 감독들과 구별시키는 건 이들이 영화를 만들 때 관객과 시장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오름으로써 중국 영화의 ‘국위’를 선양한 자장커의 최신작 <세계>와 왕샤오슈아이의 최신작 <청홍>은 각각 올해 초 중국 내에서 공식 상영의 기회를 얻었다. 당국의 탄압을 받아온 ‘지하영화’가 주류세계의 스크린에 걸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지만, 이들의 재림은 가령 한국에서 <파업전야> 같은 ‘지하영화’가 누린 후광을 거의 누리지 못했다. <세계>와 <청홍>은 흥행에서도 모두 참패했다. ‘포스트 6세대’가 지향하는 방향은 이들 영화의 참패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할머니가 봐도 이해할 수 있어야”


6세대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반성은 이들의 영화가 개인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데 그쳤을 뿐 관중과 호흡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6세대와 가장 먼저 ‘분리 선언’을 한 감독은 류하오다. 그의 경력을 보면 6세대와 거의 닮았다. 1995년 당시 26살이던 류는 베이징영화대학 감독과에 진학하려 했으나 나이 제한에 걸려 야간대학을 다니며 3년 동안 청강생 생활을 했다. 그는 자신이 독립제작한 이른바 ‘지하영화’인 <천모와 메이팅>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수상했으며 그 덕분에 지난해 두 번째 작품 <양 모시기>는, 아직 극장을 잡지 못해 상영이 지연되고 있지만, 당국의 심사는 순조롭게 통과했다. 자장커와 거의 닮은 행보를 보인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 대해 ‘지하 감독’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며 자신은 6세대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찍으려 하는 영화란 “예술성과 통속성이 함께 있어야 하고, 우리 할머니가 보시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이어야 하며, 그러나 반드시 개성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자기 세계에 함몰된 6세대’와 자신을 차별화한다. 실제로 그가 찍은 ‘지하영화’ <천모와 메이팅>은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청년 천모와 이발소에서 머리 감겨주는 일을 하는 아가씨 메이팅 사이의 순진한 사랑 이야기다. 가난하고 주변적인 삶을 다뤘지만, 감독은 무엇보다 ‘관객과의 교감’을 중시했다고 말한다. 그가 두 번째 만든 영화 <양 모시기>는 영화제작사인 베이다싱광공사의 ‘청년감독 새 영화 프로젝트’ 첫 번째 작품이다. 가난한 농촌 남자가 뜻밖에 외국으로 수출되는 고급 양을 얻게 돼 이 ‘보물’을 돌보느라 실제 자신의 생활이 엉망진창에 빠진다는 블랙 코미디다. 비전문 연기자를 이용해 제작비 220만위안(2억8600만원)을 투자한 저예산 영화인 이 작품 또한 관객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다.

류하오는 베이징영화대학 청강생 시절 지하실에서 살면서 3년 동안 온갖 할리우드영화와 홍콩영화를 ‘탐독’했다고 고백한다. “내가 특히 좋아한 영화는 <세븐>과 <미션 임파서블>이다. 이 영화들은 이야기를 멋지게 풀어갔다는 점에서 좋았다.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작품은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다. 간단한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영원한 주제를 다뤘다.” 이런 경험이 그로 하여금 ‘시장’과 ‘성적’을 돌아보지 않고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작가’가 할 일이라는 기존의 관념과 다른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포스트 6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대체로 제작자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독립제작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들의 ‘시장’ 진입이 쉽지만은 않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우스셴은 누구보다 더 힘들게 노력했다. 그는 지난해 첫 영화 <홀로 기다리다>를 찍으면서 아무런 간섭도 받기 싫어 독립제작 방식을 선택했다. 영화를 찍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남은 문제는 이걸 어떻게 극장 스크린에 내거느냐 하는 문제였다. “배급사와 협상을 거듭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이들은 국산 영화에 대해서도 신뢰가 없을 뿐 아니라 관객도 믿지 못한다. 더군다나 국내 영화 배급사들은 관행에 따라 움직일 뿐 아무런 객관적인 규범이 없다.”

체제 외적인 제작은 고려 안해

그는 자신의 영화 <홀로 기다리다>가 ‘젊은 세대의 영화’라고 말한다. “나는 어떤 영화든 8살에서 88살까지 모두 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영화를 15~35살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찍었다.” 베이징에서 연극배우, 로큰롤 밴드 등 문화권 주변의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온 그는 이런 체험을 바탕으로 디스코텍과 술집을 오가는 젊은이들의 일상과 감정을 영화에 담았다. 홍콩 대중가수 에스에이치이 등 배경음악도 주로 대중음악을 썼다. 자신이 볼 때 상업성이나 흥행성이 풍부함에도, 그가 배급사와 협상을 할 때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이런 국산영화를 누가 보겠는가” “이런 건 홍콩영화만큼 인기가 없다”는 말이었다.

지난 4월16일 <홀로 기다리다>가 베이징의 대학생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젊은 관중들 사이에선 폭소와 박수소리가 잇따랐다. 대학생들의 열렬한 반응을 보며 우스셴은 “배급사는 관중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비판했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데 힘입어 이 영화는 다음달 8일 전국적으로 상영될 기회를 얻었다.

장양은 비교적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경우에 해당한다. 1988년 중앙희극학원(연극대학) 감독과에 진학한 장은 4년 동안 최건의 락음악에 심취했다. 락음악은 그를 착한 학생에서 ‘반역의 펀칭’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정통 학교교육에 불만을 터뜨렸고 실험연극에 몰두했으며 장발에 록음악을 연주하고 다녔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반체체 감독’의 성장기처럼 읽히지만,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관객과의 교감에 대한 시각을 다잡았다. “나의 영화는 반드시 국내의 관중과 교감을 나눠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체제 외적인 제작은 전혀 고려한 적이 없다.”

처녀작 <애정 마라탕>과 두 번째 작품 <목욕>은 모두 저자본으로 제작됐지만 극장에 걸렸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어제>는 조금 민감했지만 심사도 통과했고 “시장과 예술 사이에서 자신의 공간을 찾았다”는 평을 들었다. <어제>는 주변적인 베이징 청년의 삶을 찍었지만, 6세대의 <베이징 잡종> <극도 한랭> <주말 애인> 등에 비하면 전혀 다르다. 감독은 “인성 가운데 비교적 선량하고 따뜻한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금 마무리 작업에 한창인 그의 네 번째 작품 <해바라기>는 1200만위안(15억6000만원)의 적지 않은 투자를 받아 제작을 진행했다. 그는 ‘포스트 6세대’ 가운데 비교적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경우에 속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순전히 관중의 박수를 받기 위해서만 영화를 찍는 건 아니다”며 “<애정 마라탕>처럼 비교적 유행조류를 따라잡은 영화에서도 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안에 넣었다”고 말한다.

불황속 시장진입 위해 고군분투

‘포스트 6세대’가 6세대 감독들과 차별화를 선언하고 있음에도 이들은 여전히 시장 진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중국영화계가 불경기에 휩싸이면서 212편의 낮은 제작편수를 기록했고 그 가운데 그나마 극장에 걸린 건 20편에 그쳤다. ‘포스트 6세대’의 독립제작 영화의 경우 극장에 일단 내걸리기만 해도 ‘승리’라고 말하는 분위기다.

중국의 젊은 감독들은 여전히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낡은 오토바이 위에 앉아 몇 번이고 점화 플러그를 때리고 있다. 이들이 시장과 체제와 작품 사이에서 어떤 공간을 찾아낼지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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