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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주 래드포드에 있는 의사 태드 리의 집에 이틀 간 기식할 때 그의 집에 있던 애완견 샘슨과 올리브. 방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송아지만한 이 개 두 마리가 머리로 문을 받고 들어와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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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납기고 악명높은 켄터키 개들과 전쟁
검둥이는 진로, 흰둥이는 퇴로를 차단했다
새로 구입한 ‘신병기’ 스프레이 꺼내 들었지만
맞바람이 불면 되레 나한테 향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개들은 혼절한 나를
스테이크 썰듯 편안하게 물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14
내게 경적을 울리거나 욕을 퍼붓는 자동차족을 개라고 부른다.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들 외에는 개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를 가족처럼 돌보는 미국에서 개들이 이렇게 사납게 돌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캔터키 개들이 그렇다. 같은 길을 가도 바이크 라이더들은 각기 다른 경험을 한다. 출발한 시간과 요일, 계절, 날씨 등에 따라 느끼는 게 달라진다. 하지만 바이크 라이더들이 예외없이 경험하는 것은 캔터키 개들로부터 당한 봉변이다. 개들은 자전거 혁명의 적이다.
캔터키 주 해로드스버그에서 바드스타운으로 가는 좁은 편도 1차선 도로인 1131번 길. 드디어 개들과 대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개들의 공격을 피하는 방법들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빨리 달려서 추격을 벗어나는 것이다. 개들은 보통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짖거나 공격하는 것이어서 영역을 벗어나면 더 이상 추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르막길을 오르려는데 개 두 마리가 길 가 집에서 뛰쳐나왔다. 그 중 흰둥이가 길을 가로막고 달려들었다. 할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가는데 이제는 뒤로 달라붙어서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검둥이는 앞 길을 차단했다.
캔터키의 개들은 마치 군사훈련을 받는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목표를 공략한다. 버리아로 가는 길에서는 개들이 나한테 직접 달려들지 않고 내가 가는 방향으로 대각선으로 달려와 요격했다. 그리고 개 세 마리가 있으면 전위 중위 후위를 각각 맡아 한 마리는 진로를, 다른 한 마리는 퇴로를 차단하고 그리고 가운데 개는 정면으로 공격한다. 개의 공격이 위험한 것은 물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개를 피하려고 빨리 달리다가 균형을 잃어 자전거에서 넘어질 수 있고 또 길 안쪽으로 피하려다 뒤에서 오는 차에 받힐 위험도 커진다. 때로는 개를 피하기 위해 중앙선을 넘어야 할 때도 있었다.
1131번 길에서 개들과의 대치는 오래 갔다. 개들의 공격을 피하는 방법으로 전문가들은 자전거에서 내려 개와 본인 사이에 자전거를 두고 있으라고 권한다. 그러면 개주인이 나타나 개들을 데리고 들어간다는 얘기다. 역시 개 짖는 소리를 듣고 집주인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 집주인 여자는 흰둥이 개 이름이 ‘버디’인지 “버디, 집으로 와”하고 소리치기만 하고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 아줌마는 개를 풀어놓아 행인을 위협하게 된 상황에 대해 항의를 받을까봐 집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개의 이름만 불렀다. 하지만 버디는 집주인의 출현을 마치 원군의 도착으로 여기는 듯 용기백배해서 사납게 으르렁대면서 달려들었다.
나는 집주인한테 개 데리고 들어가라고 고함 질렀지만 집주인은 기둥 뒤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드디어 내가 개 스프레이를 꺼냈다. ‘홀트!’라는 이 스프레이는 캔터키 주 렉싱턴에서 장비 보충할 때 구입한 신 병기. 원래는 호루라기를 준비해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됐다. 개들이 단지 짖을 뿐 아니라 물어뜯으려고 하는데 호루라기만 불고 있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했다. 개는 자전거 여행의 최대 복병 바이크 라이더들은 개들의 공격에 맞서 다양한 무기들을 사용해왔다. 과거에는 공기 펌프를 휘두르거나 헬멧으로 내리치거나 손도끼의 손잡이로 찍기도 했다. 그러다 주둥이에 맞아 펌프가 부러지기도 하고 헬멧이 우그러지기도 해서 이쪽도 적잖은 물적 피해를 입었다. 최근에는 스프레이 사용이 일반적인 추세다. 내가 산 스프레이는 누르면 3.6m까지 독한 액체를 쏠 수 있고 무엇보다 미 우편집배원들이 30년 동안 사용, 효능이 입증된 제품이라는 선전이 맘에 들었다. 이걸 쏘면 몇 분간은 개들을 정신 못 차리게 할 수 있고 그 동안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다는 것. 맘에 걸리는 대목은 눈과 코에 쏴야 한다는 건데 그렇게 사납게 덤비는 개들이 가만히 눈과 코를 대주고 있을지…. 더구나 맞바람이 불면 그 액체가 나한테로 향할 수도 있다. 그래서 몇 분간 혼절하고 있는 사이 개들은 마치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썰듯이 편안하게 나를 물어뜯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집주인에게 “개들을 집에 데려가지 않으면 스프레이를 발사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하지만 집주인은 여전히 무반응. 약이 오른 나는 개처럼 씩씩대면서 스프레이를 쥐고 버디한테 “이리 와봐” 소리지르면서 돌진했다. 그러자 개는 몸을 낮추더니 잽싸게 꼬리를 내리고 집 안으로 달아났고 검둥이도 그 뒤를 따랐다. 시브리로 가는 길에서는 개들이 잠든 시각일 새벽 5시에 출발해 79번 길을 따라가고 있는데 놀랍게도 고동색 털이 있는 흰둥이가 주유소 앞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것 아닌가. 손에 스프레이를 쥐고 슬쩍 그 개를 지나치려고 하는데 그 개가 갑자기 앞 발을 세게 내디디면서 좇아왔다. 이 개는 1백m 개 달리기 육상대회가 있으면 출전해도 될 만큼 빨랐다. 다행히 내리막이 시작돼 겨우 따돌린 뒤 뒤돌아 보니 개는 멈추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다. 안전한 거리였다. 은근히 장난치고 싶은 생각이 들어 따라붙을 수 있도록 속도를 늦췄다가 따라올 만하면 다시 내리막길을 질주해서 멀찌감치 달아났다. 이 개는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따라왔는데 처음엔 아스팔트 옆 풀섶을 달리다 나중엔 아스팔트로 바로 뛰어왔다. 핸들에 붙은 계시기를 보니 그가 따라온 지 6.4㎞가 넘었다. 켄터키 동부 사람들은 석탄이 발견되면서 광부가 됐다
탄광사고, 진폐증으로 수많은 사람 죽었지만 이득은 외지인이 가져갔다
그래서 개들을 풀어 외부인 위협하는 것으로 낙을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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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키는 옥수수로 만드는 술 버본으로도 유명한데 버본은 캔터키 주 버본 카운티의 이름에서 따왔고 버본 카운티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을 도와준 프랑스 부르봉 왕가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사진은 렉싱턴에서 쉬는 동안 돌아본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인 우드포드의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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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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