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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8 17:42 수정 : 2005.08.18 20:16

악의 축의 발명
브루스 커밍스 외 지음. 차문석 외 옮김. 지식의 풍경 펴냄. 1만3000월

냉전정책 변화 따라 북핵 해법은 오락가락 이란 ‘호메이니 혁명’ 무효화 욕망 드러내고 이라크 침공 제 편 안 서 시리아 눈밖에 났다 ‘악의 축’은 미국의 이해관계 맞춰 발명됐다

브루스 커밍스를 읽는 것은 언제나 비참하고 고통스럽다. 그것은 지금의 이 세계, 특히 우리가 소속한 동아시아의 근현대가 그 출발부터 단추가 얼마나 잘못 끼워진 것인지, 그리고 지금 우리를 옭죄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부당하고 부조리한 것인지 자각하도록 끊임없이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핵심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들어앉아 있으며, 오늘날 흔히 말하는 ‘한국 문제’ 또는 ‘북한 문제, 북한핵 문제’가 실은 ‘미국 문제’라는 것, 그런 기초적인 사실마저도 이 땅에서는 은폐되거나 오히려 전도돼 있다는 것, 이런 이중삼중의 왜곡이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이 일부 오해와 타산적인 음해에도 불구하고 브루스 커밍스가 오히려 우리에게 희망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출구는 마취상태의 환각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진실쪽에 있는 법이다.

<악의 축의 발명: 미국의 북한, 이란, 시리아 때리기(원제는 북한, 이란, 시리아에 관한 진실)>의 첫번째 글 ‘역사에서 분리된 곳-악의 축에 놓인 북한’의 앞부분.

“…B-29가 나가사키를 초토화한 다음날 존 맥클로이, 딘 러스크 중령, 찰즈 본스틸 대령 등은 조선인들이나 동맹국들과 전혀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 오래된 나라를 분할했고, 미 점령군은 3주 뒤에 도착하자마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촉발돼 반도 전체로 확산된 폭발적인 진보운동들을 억압하는 일에 착수했다. 오히려 미국인들은 일본에 부역했던 사람들 가운데서 친미 엘리트 집단을 형성하려 했다.”

북한 문제 사실은 미국문제

“(점령군 사령관) 하지와 그의 참모진은 역시나 일본인들이 수립해 놓은 근대적이고 철저한 국가 관료기구로 통치했으며, 일본에서 군사정부를 위해 훈련된 민정담당 관료들로 행정부를 채웠다. 맥아더가 새로 만든 것은 하나도 없었으므로, 본질적으로 조선은 일본을 감안하여 구상된 점령정책 아래 놓이게 됐다. 이는 천 년 동안 통일돼 있던 이 나라가 분단에 처하게 됐다는 점과 거의 마찬가지로 난처한 역설이었다. 조선이 일본점령구상에 한데 묶였다는 점은 절대적으로 부당한 일이었는데, 그 까닭은 조선은 식민화되었을 때인 1910년에 일본 침략의 첫 번째 희생자였기 때문이다.” “용산기지는 현재 남한 인구 3분의 1의 안식처인 인구 1100만의 도시 중심부에 떡 버티고 있다.” “(오키나와에 있던 24군단의) 조선을 향한 출항 일정이 세 차례나 앞당겨졌는데, 그것은 소련의 팽창에 대한 두려움과 만주에서 물밀 듯 들어올 것으로 생각됐던 조선인 유격대원들에 대한 두려움이 꽤 컸던 데다가 ‘공산주의자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조선 내부의 권력공백을 이용하려 할 것이라는 일본의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는 일본의 이런 선전에 귀를 기울였으며…한국은 서기 668년 이래로 역사상 가장 변칙적인 시기, 즉 민족분단의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악의 축’은 제국주의 패권전략이 낳은 발명품인가? 지난 5월1일 뉴욕에서 열린 반전반핵 시위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 가면을 쓴 참가자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피묻은 손으로 지구를 거머쥐는 시늉을 해보이고 있다.  뉴욕/AFP 연합
이런 사실들을 커밍스가 다시 지적하는 이유는 이 책이 “자국 대통령(조지 부시)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나라들의 역사는 차치하고라도 자기 나라 역사에 대해서조차 무감각한 미국 시민들에게 자국이 얼마나 변덕스럽게도 역사를 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이란, 시리아가 ‘악의 축’으로 조작됐는지 그 배경과 가려진 진실을 보여주자는 의도로 기획됐기 때문이다. 2003년 가을에 3명의 필자들에게 원고청탁이 들어가고 2004년 2월에 출간된 이 책은 말하자면 미국인을 주독자로 겨냥한 것이다.


커밍스는 이후 한국전쟁 진행이 미국 냉전정책의 전환, 곧 조지 케난의 방어적 온건봉쇄정책에서 공격적인 정책으로 바뀐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전임 빌 클린턴 정권이 조명록 북한군 차수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상호방문을 성사시키고 정상회담까지 추진할 만큼 사실상 타결상태에 있던 ‘북한핵 문제’를 부시 정권이 완전히 원점으로 되돌려 놓은 것이 ‘북한핵 문제’의 본질이라는 점 등을 상술한다.

두번째 글인 ‘제국의 반격: 미국의 관점에서 본 이란’을 쓴 에브란드 아브라하미안 뉴욕 시립대 버룩 칼리지 교수는 1953년 석유자원 국유화를 선언했다가 미 중앙정보국 공작에 의해 쫓겨난 1953년 모하메드 모사데그 정권 때의 쿠데타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란이 악의 축으로 지목당한 결정적인 원인을 1979년 ‘호메이니 혁명’에서 찾는다. “이란은 페르시아만 지역의 ‘경찰’이자 미국의 하이테크 군사기술의 주요 고객이었고, 오일달러의 주된 환류기였으며,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값싼 석유의 두번째로 큰 공급자였고, 적대적인 무슬림 세계에서 이스라엘의 귀중한 동맹자였던 것이다. 혁명은 눈깜짝할 사이에 샤를 미국(이익)의 전략적 수호자로 임명했던 닉슨 독트린과 페르시아만 지역 석유이권을 박살냈던 것이다.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은 1979년 혁명을 무효화하려는 자신들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세번째 글인 ‘다마스쿠스 대 워싱턴: 악의 축과 팍스 아메리카나 사이에서’를 쓴 모셰 마오즈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터키, 이스라엘 등 인접국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소련쪽에 기댈 때부터 미국 눈밖에 난 시리아가 2003년 이라크 침공 때 미국편을 들지 않음으로써 결정적으로 찍히게 된 과정을 살핀다.

지구촌 곳곳서 재앙 일으켜

아브라하미안 교수가 지적하듯이 미국의 이란 적대정책의 주된 희생자는 결국 이란 민주주의와 국민이다. 부시의 정권의 압박정책 이후 온건하고 개혁적이던 무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체제는 설 자리를 잃게 됐고 국가의 위기를 강조하며 퇴행적 단결을 호소하는 강경보수파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지난 6월 대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보수파가 승리한 것이 이를 웅변한다.

이는 북한이나 시리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결국 오로지 자국 이해를 앞세워 지배하겠다는 게 미국의 속내다. 그런 제국주의 정책이 지구촌 곳곳에서 불러일으키고 있는 재앙은 심각하고 터무니없다. 미국인들이 과연 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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