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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베냐민 지음. 조형준 옮김. 새물결 펴냄. 4만3000원(반양장 분권)/5만9000원(양장 합본) |
미완성으로 남은 베냐민 필생의 기획
“19세기 수도” 파리의 거리 · 상품 · 사람들
내밀히 들여다보며 미시적 역사읽기 시도
각종 사료와 꼼꼼한 메모로 몽타주 그리듯
물신숭배 대한 마르크스 해석에 깊이 · 넓이 확장
자본의 불빛이 화려하게 유혹하는 도시를 거닐며 보들레르를 찬양하는 ‘우울한 산책자’이고자 했던, 유대계 철학자 발터 베냐민(1892~1940)이 ‘필생의 기획’으로 삼았으되 불행하게도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 <아케이드 프로젝트>(새물결 펴냄)가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7권짜리 베냐민 전집 가운데 제5권, 그 절반 분량이 먼저 우리말로 나왔다. 1239쪽 분량.
이 프로젝트는 결론을 제시하지도 못한 미완성 작인데도 ‘자본주의를, 자본주의 안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으로서 그동안 사유의 자극과 관심의 대상이 됐다.
베냐민이 “19세기의 수도”로 부른 파리의 거리, 상품, 사람들 풍경을 내밀히 들여다보며 ‘미시적 역사 읽기’의 가능성을 시도했던 이 기획은 여러 비평·사상가들의 저술과 논문에 종종 인용돼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낳으면서, 그 전모와 정체에 관한 궁금증은 더욱 커져왔다. “20세기에 쓰여진 가장 위대한 서사시”나 “마르크스 <자본> 이후 가장 독창적인 사유”라는 격찬이 있었고, 베냐민의 기획 의도를 정확히 확인하기 힘든 미완성 자료의 한계에 대한 평가도 있었다.
프로젝트가 지닌 ‘기구한 운명’도 화제였다. 애초 베냐민은 도시의 아케이드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현상들의 뿌리를 좇는 기획을 구상해 1940년까지 중단과 계속을 거듭하며 그 준비 작업에 매달렸다. 그러나 1940년 그가 독일군의 프랑스 점령을 피해 급히 망명길에 오르며 조루주 바타이유한테 맡긴 자료는 1980년에야 뒤늦게 파리 국립도서관 문서고에서 발견돼 1982년 빛을 보게 됐다. 베냐민은 망명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했다. 미완성은 영원한 미완성이 되었다.
‘우울한 산책자’ 눈에 비친 도시
<아케이드 프로젝트>엔 수천 가지 인용문들이 ‘몽타주’처럼 지루하게 나열돼 있다.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와 관련한 사료들, 자료 목록, 만국박람회 카탈로그, 파리 여행 안내책자, 그리고 마르크스와 보들레르, 푸리에, 생시몽에 관한 인용문들이 그의 짧은 평과 함께 ‘노트와 메모’로서 담겼다. 마치 아케이드 상점처럼 나열된 노트와 메모들은 ‘몽타주’가 되어 그가 품었던 구상의 그림을 ‘흐릿하게’ 드러낸다.
“나의 투쟁, 나의 모든 사상의 무대”라며 베냐민이 부여잡았던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세계의 축소판이자 근대성의 이미지를 담은 꿈과 현실의 공간이었다. 1800년대 중반 파리에 등장하기 시작한 아케이드는, 철조물의 건축기술과 가스 조명기구의 등장과 함께 공간을 극적인 것으로 각색하는 자본주의와 근대성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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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 볼루아가의 입구인 갈레리 베로-도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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