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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8 18:04 수정 : 2005.08.19 10:50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베냐민 지음. 조형준 옮김. 새물결 펴냄. 4만3000원(반양장 분권)/5만9000원(양장 합본)

미완성으로 남은 베냐민 필생의 기획
“19세기 수도” 파리의 거리 · 상품 · 사람들
내밀히 들여다보며 미시적 역사읽기 시도
각종 사료와 꼼꼼한 메모로 몽타주 그리듯
물신숭배 대한 마르크스 해석에 깊이 · 넓이 확장

자본의 불빛이 화려하게 유혹하는 도시를 거닐며 보들레르를 찬양하는 ‘우울한 산책자’이고자 했던, 유대계 철학자 발터 베냐민(1892~1940)이 ‘필생의 기획’으로 삼았으되 불행하게도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 <아케이드 프로젝트>(새물결 펴냄)가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7권짜리 베냐민 전집 가운데 제5권, 그 절반 분량이 먼저 우리말로 나왔다. 1239쪽 분량.

이 프로젝트는 결론을 제시하지도 못한 미완성 작인데도 ‘자본주의를, 자본주의 안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으로서 그동안 사유의 자극과 관심의 대상이 됐다.

베냐민이 “19세기의 수도”로 부른 파리의 거리, 상품, 사람들 풍경을 내밀히 들여다보며 ‘미시적 역사 읽기’의 가능성을 시도했던 이 기획은 여러 비평·사상가들의 저술과 논문에 종종 인용돼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낳으면서, 그 전모와 정체에 관한 궁금증은 더욱 커져왔다. “20세기에 쓰여진 가장 위대한 서사시”나 “마르크스 <자본> 이후 가장 독창적인 사유”라는 격찬이 있었고, 베냐민의 기획 의도를 정확히 확인하기 힘든 미완성 자료의 한계에 대한 평가도 있었다.

프로젝트가 지닌 ‘기구한 운명’도 화제였다. 애초 베냐민은 도시의 아케이드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현상들의 뿌리를 좇는 기획을 구상해 1940년까지 중단과 계속을 거듭하며 그 준비 작업에 매달렸다. 그러나 1940년 그가 독일군의 프랑스 점령을 피해 급히 망명길에 오르며 조루주 바타이유한테 맡긴 자료는 1980년에야 뒤늦게 파리 국립도서관 문서고에서 발견돼 1982년 빛을 보게 됐다. 베냐민은 망명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했다. 미완성은 영원한 미완성이 되었다.

‘우울한 산책자’ 눈에 비친 도시

<아케이드 프로젝트>엔 수천 가지 인용문들이 ‘몽타주’처럼 지루하게 나열돼 있다.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와 관련한 사료들, 자료 목록, 만국박람회 카탈로그, 파리 여행 안내책자, 그리고 마르크스와 보들레르, 푸리에, 생시몽에 관한 인용문들이 그의 짧은 평과 함께 ‘노트와 메모’로서 담겼다. 마치 아케이드 상점처럼 나열된 노트와 메모들은 ‘몽타주’가 되어 그가 품었던 구상의 그림을 ‘흐릿하게’ 드러낸다.

“나의 투쟁, 나의 모든 사상의 무대”라며 베냐민이 부여잡았던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세계의 축소판이자 근대성의 이미지를 담은 꿈과 현실의 공간이었다. 1800년대 중반 파리에 등장하기 시작한 아케이드는, 철조물의 건축기술과 가스 조명기구의 등장과 함께 공간을 극적인 것으로 각색하는 자본주의와 근대성의 흔적이었다.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 볼루아가의 입구인 갈레리 베로-도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그가 바라본 것은 아케이드만이 아니었다. 거리, 파노라마, 신유행품점, 패션, 권태, 오스만식 도시 개조, 바리케이드, 철골 건축, 만국박람회, 광고, 보들레르, 도시의 꿈, 산책자, 매춘·도박, 거울, 새로움, 조명, 생시몽, 마르크스, 철도, 음모, 사진 등이 그가 날카로운 펜으로 꼼꼼하게 기록한 “노트와 메모”의 세부 항목들이 됐다.

파리의 세부 항목들은 따로 또 함께, 상품의 물신숭배에 대한 마르크스의 해석에 깊이와 넓이를 확장한다. 물신숭배가 도시의 사물과 현상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소비를 통해 어떻게 순환하는지, 시장에서 어떻게 신비화되는지, 유혹하는 상품은 어떻게 장식되고 상점 유리창 안에서 어떻게 반짝이는지, 대규모의 광고 캠페인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유행이 되는지를 드러낸다(<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 150쪽).

이 모든 것을 베냐민은 ‘우울한 산책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보들레르는 그 영감을 제공한다. 산책자의 시선에 도시는 초현실주의의 환상과 꿈, 그리고 소외와 물신숭배의 ‘두 얼굴’을 드러내고야 만다. “산책자는 여전히 문턱 위에, 대도시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의 문턱 위에 서 있다. 아직 어느 쪽도 완전히 그를 수중에 넣지는 못하고 있다. 그는 어느 쪽에도 안주하지 못한다. 그는 군중 속에서 피신처를 찾는다.…군중이란 베일로서, 그것을 통해 보면 산책자에게 익숙한 도시는 환(등)상으로 비쳐진다. 군중 속에서 도시는 때로는 풍경이, 때로는 거실이 된다. 곧 이 두가지는 백화점의 요소가 되며, 백화점은 정처 없이 어슬렁거리는 것조차 상품 판매에 이용한다. 백화점은 산책자가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곳이다.”(105쪽)

책의 앞쪽에 실린 편집자와 옮긴이의 서문은 베냐민의 기획이, 이론적 마르크스주의를 시각적 마르크스주의로 이동시키려는 시도였으며, 생산력과 계급을 통해 바라본 마르크스의 하부구조가 아니라 자본주의 도시에 던져진 꿈과 현실의 상부구조에 ‘내시경’을 들이대며, 과정의 변증법이 아니라 정지 상태의 변증법에 주목한다고 평했다.

‘자본주의의 두 얼굴’ 드러나다

옮긴이 조형준(41·<세계의 문학> 편집위원)씨는 지난 2002년 이 책을 처음 접한 이후 ‘아케이드’ 속으로 빠져들어 지난 3년 동안 방대한 분량의 “고독한 번역”에 매달려왔다. 그는 “베냐민이 수행한 작업은 19세기의 자본주의를 완전히 분해한 다음 거기서 나온 부품들로 자본주의 자체를 새롭게 조립해보려는 시도”라고 평하면서 “천 개의 입구와 출구를 동시에 지닌 거대한 개미굴 같은 형태로 마치 멀티미디어처럼 누구나 각자의 입장과 위치에서 자유롭게 접속해도 좋을”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길잡이가 될만한 참고도서로는, 19세기 역사를 몽타주처럼 발언하는 베냐민의 ‘노트와 메모’를 대담하게 신화, 자연, 역사라는 세 가지 개념을 동원해 설명을 시도한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수잔 벅 모스 지음, 문학동네, 2004), 그리고 자본주의 도시의 두 얼굴을 바라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사상사를 되짚은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앤디 메리필드 지음, 시울, 2005) 등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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