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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8 18:14 수정 : 2005.08.19 14:28

이권우/도서평론가

이권우의 찬찬히 읽기

중국에 바친 나의 청춘/ 님 웨일즈 지음/ 한기찬 옮김 /지리산(1994)

에드거 스노 자서전/ 에드거 스노 지음/ 최재봉 옮김/ 김영사(2005)

대화/ 리영희·임헌영 대담/ 한길사(2005)

세 사람의 자서전을 잇따라 읽으며 폭염의 계절을 견뎌냈다. 그들이 걸어간 길이야말로 폭염속의 황톳길이었으나, 그 삶이 전해주는 감동은 읽는이의 정신을 서늘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으니, 인류사를 뒤흔든 혁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참으로 살아있는 지성의 표본이라 할 그들의 자서전은, 에드거 스노의 <에드거 스노 자서전>, 님 웨일즈의 <중국에 바친 나의 청춘>, 리영희의 <대화>다.

나는 이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한낱 기자가 한 시대를 상징하는 사상가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어디에 있는지 눈여겨 보았다. 에드거 스노의 말대로 기자란 “모든 것을 보(고 그 십분의 일을 쓰)는 것”에 불과한 직업이 아니던가. 그러나, 예리한 관찰력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비판정신은 전환시대를 맞이해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실체를 밝혀내는 데 이르렀다. 님 웨일즈의 표현대로, 그들은 “외견에 현혹되지 않고 현실과의 관계를 유지”했고, “해를 거듭하여 관찰한 사실에 바탕을 둔 판단”에 기초했다. 그러자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던 모든 허위와 의혹은 신문기사라는 진리의 나팔소리에 마치 여리고 성벽처럼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사실 성벽처럼 무너져 버린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세계여행을 하며 모험을 즐기려던 청년이나, 작가가 되고 싶어했던 걸스카웃 풍의 순진한 처녀나, 썩어빠진 군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자가 되었던 이나 본디부터 진보적인 인물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받는 민중의 삶에 눈감지 아니했고, 이를 고치기 위해 떨쳐난 세력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역사의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가게 되었다. 에드거 스노 부부는 12·9 운동의 실질적 후원자 역할을 했고, 리영희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다시 님 웨일즈의 말을 빌리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회오리바람을 타고 다른 세계로 들어갔던 것이며, 역사가 마치 포도에서 포도주를 짜내듯이 그들을 쥐어짰던 것이다.

세 권의 책을 님 웨일즈, 에드거 스노, 리영희 순으로 읽어나가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지적 과제가 무엇인지 짐작하게 된다. 님 웨일즈가 목숨을 걸고 잠입해 만났던 청교도적이며 스파르타적인 홍군은 역사의 암흑을 잘라먹을 횃불이었다. 혁명의 순도가 최고치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2차대전 말기 소련을 찾아간 에드가 스노는 이렇게 적고 있다. “혁명의 위대한 도덕적 창조적 힘이 관료주의의 낡고 완고한 틀 속으로 들어감에 따라 점차 소멸돼간다는 인상을 더욱더 깊이 갖게 되었다”. 리영희가 현실적 대안으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내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법하다. 자본주의가 이룩한 물질적 생산력을 인정하되, 사회주의의 인간중시적 가치를 받아들이자는 뜻이다. “달갑지 않은 민족적 유전자론”과 더불어 논쟁의 대상이 될만한 주장이다.


리영희에 따르면,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미·일의 지식인들 사이에 님 웨일즈에게 대한민국 건국포상을 수여하자는 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장지락이 공산주의자였던 데다 님 웨일즈도 용공인사라는 이유로 기각시켰다고 한다. 이번 광복절에 장지락이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님 웨일즈는 잃어버렸던 우리 역사를 되찾게 한 공이 있으니, 국가 차원에서 적절한 예를 다하는 것이 도리이리라. 그리고 절판된 그녀의 자서전이 다시 세상에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적어 놓는다.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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