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18 18:28
수정 : 2005.08.1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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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행의 ‘무위유학-왕기의 양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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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무위유학-왕기의 양명학’ 낸 이주행씨
“피의 실천철학인 유학은 동양철학을 공부하려던 젊은 시절의 제게 매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13세기부터 몇 백년 동안 유학은 지배이념으로 너무 굳어진 탓에 오늘날엔 이렇게 철저하게 추락하고 있어요. 유학이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의미로 생존할 수 있을지는 늘 제게 중요한 화두였지요. 오랜 고민에 대한 저 나름의 길 찾기가 아마도 이 책이 아닐까 합니다. 참되고 열린 마음을 강조했던 ‘무위()유학’의 정신에 다시 관심을 가질 때라고 생각해요.”
불교와 도교까지 감싸안으려 했던 중국 명나라 왕기(1498~1583)의 사상을 오늘의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무위유학- 왕기의 양명학>(소나무 펴냄)의 저자 이주행(47·다산학술문화재단 책임연구원)씨는 “주자학적 유학이 추구하는 형식적 선과 도덕을 반성하고 ‘참된 나’를 찾아나선 왕기의 무위유학은 21세기의 도덕과 만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일부의 분류를 따르면, 무()와 자연을 강조한 무위유학의 상댓말로서 당위()유학이 존재한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선과 도덕의 당위를 강조하는 당위유학은 유학의 주류인 주자학을 이른다. 당연히 양명학의 한 흐름이었던 무위유학은 비주류였다. 아무리 비주류였다 해도, 중국에서 풍미했던 무위유학과 양명학의 흔적을 조선과 오늘 우리의 유교에서 거의 찾기 힘든 것은 이상하다. “서구 르네상스처럼 16세기 이후 중국에선 반주자학의 흐름이 생기면서 다양한 사상들이 경쟁했지만, 조선에 양명학, 특히 무위유학은 거의 발을 붙이지 못했지요. 아마도 주자학이 그만큼 강력한 중앙정치의 통치이념으로 정착했다는 말이 되겠지요. 물론 반주자학의 흐름이 조선에선 실학으로 나타났지만….” 우리의 유교 전통엔 ‘주자학의 편식’이 심했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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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유학의 참되고 열린 마음서 21세기 ‘열린유학’ 가능성 찾아” 이주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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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전하는 ‘무위유학’은 불교와 노장 사상을 아우르는 실천철학이다. 당위유학이 불교와 도교에 대해 대결적 자세를 취하며 ‘수기치인(·자신을 수양하여 남을 다스린다)’을 으뜸으로 따른 데 비해, 무위유학은 불교와 노장 사상을 포용하며 ‘치양지(·양지에 이른다)’를 따랐다. 양지란 “자기 마음 속에 자리잡은 참된 자아”를 뜻한다. “사회가 만들어준 형식적 도덕과 사서삼경 문구 해석의 집착을 버리고 지나친 분별심과 욕심을 버리고 참된 자아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다시 바라보자는 것이죠. 불교·도교와 다르게, 양지는 가족과 사회 피 속에서 작동하는 실천적 지침의 빛입니다. 피 도피가 아니라 피 참여죠.”
양지는 그에게 ‘21세기 전지구적 도덕’의 가능성을 비쳐주었다고 한다. “사람을 중심으로 삼되, 무정부적 상대주의나 배타적 절대주의에 물들지 않으면서도 개인의 자발성과 자유에 기초한 새로운 도덕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개인들이 지닌 자연의 생명력과 자발적 에너지를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또 무위유학은 선과 악을 분별하며 선을 지키고 악을 대치하려는 의지적 노력으로는 결코 악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음을 보여줍니다.”
무위유학의 가능성을 좀더 확장하고 싶은 욕심 탓에, 그는 왕양명(왕수인·1472~1528)-왕기-이지(1527~1602)로 이어지는 스승과 제자의 양명학과 무위유학의 사상계보를 좇아, 앞으로는 이지 사상의 연구에 매달릴 계획이라고 말한다. ”이지는 여성의 인격적 존재를 인정했습니다. 사회가 만들어준 질서·도덕보다 개인의 개성과 자유로움을 더 강조했지요. 실현되지 못한 그의 사상은 ‘근대적 사유의 좌절’이었습니다. 유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위유학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고 싶습니다.” 그는 이런 연구들이 좁은 방에서 갇힌 유학의 지평을 좀더 넓히고 ‘열린 유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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