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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8 18:33 수정 : 2005.08.18 18:38

이병남/ (주)LG 부사장

종교로 제도화된 불교와 기독교는 다르지만 붓다와 그리스도의 가르침 그 본질은 자비요 사랑이니 각자 전통 속에서 자연스레 영적생활을 하면 되는거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 틱닛한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모처럼 먹구름을 뚫고 해가 비치면서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제 모습을 드러내니 산도 강도 비로소 다 제 색깔을 뽐낸다. 이를 보며 문득, “전심작악()은 구름이 해를 가린 것과 같고 후심기선()은 밝은 불이 어둠을 파함과 같나니라” 하신 경전의 말씀이 생각난다. 나의 본래 모습은 선도 악도 아닌데, 다만 그 본래 모습을 가리우는 탐(),진(),치()로 인하여 어두워진 것이 악이며,그 어두움을 몰아내고 본래의 밝음을 찾는 것이 선이라는 말씀인 듯 하다.

나의 본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인가? 기독교에서는 사랑이신 하느님이 자신의 모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하니 내 안에는 분명히 하느님과 같은 신성이 내재하여 있을 것이다. 또한 불교에서는 내 안의 불성을 말하고 있다. 나도 깨우치면 자성광명()을 발하여 볐가 될 수 있다는 것! 이다. 아마도 구름 걷힌 저 파란 하늘처럼 내 본래의 모습, 하느님과 하나이고 볐님과 하나인 그런 내가 되어야할 것 아닌가, 그렇게 되도록 수도하고 수행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여름날 오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할머니를 따라 천주교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 후, 나는 사춘기, 청년기를 거치면서 많은 경우 답답함을 느끼고 부자유함을 느꼈었다. 대학시절 여름방학 때에는 당시 천주교 신부님이 지도교수를 맡고 계셨던 불교학생회를 따라서 오대산 월정사에 수련을 가기도 했다. 그러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15년 간 외국생활을 하는 동안 줄곧 기독교의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고 숨쉬었다. 그러다가 11년 전 귀국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다시 자연스럽게 산중 사찰과 불교에 친숙해질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은 태어나면서 문화적으로 불교 유전자(DNA)를 타고나나 보다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착하게 만들려는 종교는 사람을 악하게 만들고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려는 종교는 사람을 착하게 만든다”는 천주교 주교인 드 멜로의 말을 접하게 되면서, 아, 이거구나! 하면서 뭔가 번쩍하는 느낌도 갖게 되었다. 자유로움, 진정한 자유는 내적 자유이고 그것은 곧 본질적으로 나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자유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 본질적인 나란 무엇인가? 영성보다는 종교성이 더 강했던 10대에서 30대를 지나 40대 중반부터는 제도로서의 종교보다는 바람같이 자유로운 영성의 영역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나 자신의 이런 변화는 남자들의 중년기의 변화를 과거와 같이 ‘위기’가 아니라 비옥한 신천지에 닿기 위해서는 반드시 잘 통과해야만 하는 ‘협로(passage)’라고 본 게일 쉬히의 말대로 지금까지는 몰랐던 새로운 영적 세계에 대한 갈망의 표출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과정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공통점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게 되었고 왜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종교가 다르다는 것만 강조하고 차이점만 부각시킬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던 차에 우연히 접하여 읽게 된 책이 바로 틱낫한 스님의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세상에 이렇게 나하고 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구나!“하는 감탄을 하지 않을수 없었고 그렇게 반갑고 또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다.

틱낫한 스님은 이 책에서 붓다와 그리스도가 그 삶과 가르침에서 얼마나 비슷한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참으로 해방감을 맛보게 해 주는 지적들이다. 그러면서 한편 붓다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각기 다른 문화 속에서 세워지고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불교와 기독교는 또 얼마나 다른가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본질적인 가르침은 공히 자비요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각자는 자신의 전통 속에서 자연스럽게 영적 생활을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나같이 기독교적 가르침과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해서 진리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과 수행에서 도움을 받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 같다. 결국 진리는 종교의 틀을 넘어서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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