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18 19:32
수정 : 2005.08.1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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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여섯번째 시집 <진흙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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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시인 송재학(50)씨가 여섯 번째 시집 <진흙 얼굴>(랜덤하우스중앙)을 묶어 냈다.
시집 해설을 쓴 박수연씨나 뒷표지에 추천의 말을 보탠 동료 시인 이문재·장석남씨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대로 송재학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내면의 정황을 바깥 풍경을 매개로 드러내(는가 하면 감추)는 이미지의 운용에 있다. 송재학씨의 시들은 가히 이미지의 잔치라고나 할 정도로 풍성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자랑하는데, 보통의 독자들에게 그 이미지들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분명하게 다가오지는 않는 모호성의 베일 아래 흐릿하게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는 아무래도 그 나름의 상징의 메커니즘 또는 이미지 운용의 독자적인 문법이 있는 모양이어서, 그의 시들을 명료한 산문적 진술로 ‘번역’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이처럼 독자적이어서 불명료한 비유법의 세계가 송재학 시의 까다로운 매력으로 작용한다.
“다행이지 않은가 모든 삶을 알지 못하는 것이,/시선이 닿지 못하는 첩첩 산 뒤가 후생인 것처럼,/의심투성이 고비 사막에서 티베트까지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이 좌우로 나누는 것도 생이다/먼지로 상징되는 건 전생이고 신기루로 나타나는 건 후생,/다음 생이 후생이기 전, 이미 그 생들은 서로 어루만지고 위로하고 있다란 느낌은 길 없는 사막에선 흔하디흔하다”(<다행이다>)
인용된 시는 시인 스스로 자신의 난해한 시를 변호하며 쓴 듯한 느낌도 든다. 송재학 시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느끼도록 하라고 평론가들은 권유하곤 한다. 마치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처럼 말이다. 우리가 인생과 세계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하는 것처럼, 시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시집에서는 몇 가지 공통된 심상과 지향을 포착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모래의 이미지, 그리고 닿거나 맺어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섬까지 떠밀려간 내 하루를/파도인 양 모른 척 받아준 섬이/오래전부터 어루만지던 짐승이 있습니다/마치 끊어진 팔이나 다리를 억지로 봉합한 자국 같은/섬과 섬 사이의 모래밭,/작은 섬이 큰 섬과 안간힘으로 닿아보려는/저 창백한 겨울 백사장의 어리고 유순한 팔을 보면/무르팍 걸음으로 기어가는 내가/당신의 입술에 닿을 때면/몸은 모래로 흩어져버리지 않겠습니까”(<겨울섬> 전문)
<겨울섬>은 시집 수록작 중에서는 비교적 쉽사리 이해되는 작품이다. 상대방에게 가 닿으려는 안간힘이 장애와 곤경에 부닥칠 때 안간힘 쓰던 존재 자체가 모래처럼 흩어져 버릴 것이라는 두려운 깨달음이 이 시의 주제라 할 수 있다. “내 얼굴도 흩어지는 모래를 감싸고 여민 흔하디흔한 비닐봉지인 셈”(<진흙 얼굴>)이라는 표제작의 대목 역시 존재의 취약한 기반에 대한 위기의식을 담고 있음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다>의 인용된 대목에 이어지는 “저 희박한 산소라면 내 몸의 일부는 아가미일 것”이라든가 “담쟁이 초록 잎새들은/죄다 담수어의 주둥이를 가졌기에/(…)/고요의 지느러미가 생겼던 것이다”(<민물고기 주둥이>), 또는 “눈매 죽이고 납작해진 잎새들의 지느러미처럼”(<스위치 - 백양나무 터널>)에서 보는 물고기의 이미지, 그리고 “내 몸에도 한없이 개울이 있다”(<사물 A와 B>)거나 “개울의 수면을 통해 자신의 그림자와 맺어졌다는 이 고목”(<평생>)에서 보이는 개울의 이미지는 존재의 사막화에 맞서 버티려는 주체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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