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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8 20:01 수정 : 2005.08.18 20:11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의 주인은 생물 개체가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라는 주장을 펴 다윈주의자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도킨스의 코페르니쿠스적 도발은 사회현상까지 이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이라고 해석하는 데서 절정에 이른다.

대중 인기와 학술적 논쟁 결합시킨 과학자 진화에서 자연선택의 절대적 구실 주장하며 사회현상도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으로 파악 어려운 과학을 생생한 비유로 쉽게 설명했지만 진화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혼동 부추기는 느낌도

과학속 사상, 사상속 과학/ ⑭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과학자치고 리처드 도킨스만큼 대중적 인기와 학술적 논쟁을 결합시킨 사람도 흔치 않다. 이차대전 중 영국공군에 자원한 아버지가 케냐로 배속되는 바람에 도킨스는 1941년 나이로비에서 태어났고 압도할 정도로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자연에 큰 감명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영국으로 돌아와 옥스퍼드대학에 진학한 도킨스는 노벨상 수상자인 니코 틴버겐 교수에게 배운 뒤 촉망받는 젊은 동물행동학자로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 간결한 문체와 생생한 비유와 논리적인 전개를 갖춘 글로 엮어내는 능력을 인정받아, 현재는 옥스퍼드대에서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전담하는 찰스 시모니 석좌교수직을 맡고 있다. 이후 더욱 정력적으로 활동하면서 과학과 종교, 과학적 지식의 축적적 성격에 대한 매우 논쟁적인 주장을 과감하게 폄으로써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도킨스는 논쟁적인 저자가 흔히 그렇듯이 열렬한 지지자와 극단적 반대자 모두를 갖고 있다. 도대체 도킨스 사상의 어떤 점이 이런 논란의 핵심을 가져온 것일까?

도킨스는 일찍부터 자신의 동물행동학 연구를 유전자가 진화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에 대한 좀더 넓은 이론적 맥락과 연결시키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1976년에 출간된 <이기적 유전자>다. 이 책은 바로 전해 출간된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함께 유전자가 생물학적 수준과 사회적 수준에서 어떤 구실을 담당하는지에 대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회적 논쟁은 인간의 속성을 결정하는 것이 자연인가 양육인가에 대한 오래된 논쟁을 유전자 개념을 사용하여 재탕한 것이었다. 좀더 학술적인 논쟁은 진화의 역사에서 자연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집중되었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이 거의 절대적인 인과적 구실을 수행하므로 생물학자들이 생명체의 특정 속성에 대해 진화론적 설명을 시도할 때는 우선적으로 자연선택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행동학 연구를 진화와 연결

이에 비해 집단유전학자 르완틴과 고생물학자 굴드가 주축을 이룬 비판자들은 진화의 역사에서 우연적 요인이나 구조적 제한조건이 수행하는 구실이 매우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흔히 도킨스처럼 진화과정에서 자연선택의 절대적 힘을 강조한는 입장을 ‘적응주의’(어댑테이셔니즘)라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킨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연선택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비판의 핵심은 개체의 모든 속성이, 예를 들어 포식자를 잘 볼 수 있어서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는 눈이나 번식기회를 높여주는 숫 공작의 화려한 깃털처럼 분명한 진화적 이득을 얻기 위한 적응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식도를 통해 음식물도 넘기고 공기도 흡입한다. 그래서 종종 음식물을 먹다가 숨이 막혀 죽을 위험이 있다. 르완틴과 굴드는 이처럼 분명하게 비적응적인 속성도 진화의 역사에서 자주 생겨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기적 유전자 개념은 개체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전통적 생각을 복잡한 거대분자에 대응되는 유전자들 사이의 적극적 경쟁을 강조하는 것으로 대치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유전자만이 세대를 거쳐 전달되므로 결국 선택되는 것은 유전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주장으로 현대 유전학에서 신성시되는 ‘중심 원리’(센트럴 도그마)와 같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세대를 통해 전달되는 것은 유전자라 하더라도 실제 환경에서의 개체의 적합도를 결정하는 것은 그 유전자와 다양한 요인들이 결합해 만든 표현형이므로 진화의 역사를 유전자만으로 기술한다는 생각은 유전자 결정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유전자 중심 사고방식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도킨스는 1982년에 발표한 <확장된 표현형>에서 이러한 생각을 더욱 확장시켜 개체의 행동만이 아니라 그 개체의 행동이 다른 개체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포함하는 문화의 제반 특징도 확장된 의미에서의 유전자 효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생물체가 자신을 복제하기 위해 이용하는 유전자의 ‘복제기계’에 불과하다면, 마찬가지 논리로 그러한 생물체가 만들어 낸 모든 것, 비버의 댐이나 인간의 피라미드까지도 모두 이기적 유전자의 활동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도킨스는 생물학이 끝나는 지점에서 문화나 사회가 시작된다는 기존의 통념에 반대하여 사회현상이나 문화적 다양성도 결국에는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으로 파악하려 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윌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는 사회과학을 생물학의 하부 범주로 포섬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도킨스의 글을 읽을 때는 그가 은유를 사용하는 방식에 유의해야 한다. 흔히 도킨스를 잘못 읽은 사람들은 분자 덩어리에 불과한 유전자가 어떻게 이기적일 수 있느냐고 묻는다. 당연히 유전자 자체가 일상적인 의미로 이기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꿀벌을 여왕벌과 일벌 등으로 구별하고 이들 사이의 기능적 분업이 꿀벌 사회에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듯이, 우리는 생명현상의 여러 특징을 유전자가 자신을 최대한 많이 퍼뜨리려는 노력의 산물인 것‘처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유전자는 은유적으로 ‘이기적’이다.

사회과학을 생물학 밑으로 포섭

이렇게 이해하면 ‘이기적 유전자’나 ‘확장된 표현형’ 모두 자연현상,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대안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킨스의 주장을 섣불리 유전자 결정론이나 유전자 환원론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킨스가 이러한 혼동을 부추긴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이기적 유전자’라는 개념이 유전자가 마치 이기적인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효과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책의 중반에서야 언급된다. 이런 식으로 독자에게 의도적으로 강한 유전자 중심의 관점을 전달려는 도킨스의 노력을 보면 그가 실제로는 일상적인 의미의 이기성이나 현상적 수준의 이기성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믿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우리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에 낯설지 않다. 한때 심리학계를 풍미했던 행동주의 연구모형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도킨스의 이론적 배경이 동물 행동학이라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어려운 과학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데 있어 탁월한 도킨스의 은유들은 실제로 꼼꼼하게 따져보면 진화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부추긴다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이라는 멋진 은유로 얼핏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복잡한 기관이 어떻게 의도적 계획 없이도 나타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비밀은 축적적 진화와 오랜 시간에 있다. 진화의 단계마다 직전 단계에서 얻어진 유용한 장치들을 고정시킨 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면 아무리 복잡한 기관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일찍이 유명한 천체물리학자 프레드 호일은 진화를 믿는 것은 점보 제트기처럼 복잡한 물체가 순식간에 광풍에 의해 조립될 수 있음을 믿는 것과 같다고 논평한 적이 있다. 이에 대힌 도킨스의 답은 진화는 그런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더 정확한 비유는 부품이 가득 쌓여 있는 벌판에 허리케인이 한 번이 아니라 수십억번을 부는 것이다. 그리고 단계마다 점보 제트기의 설계도와 비교하여 올바르게 결합된 부분은 다음 광풍에서는 흐트러지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상욱/한양대 교수·철학 dappled@hanyang.ac.kr
그러나 도킨스의 오랜 비판자인 굴드의 지적처럼 진화에서 주어진 설계도란 없다. 곧, 설계도를 미리 가정하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서 각 개체가 최대한 적응하기 위한 형태나 형질이 미리 결정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런 일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진화론 연구에서 분명해진 점은 개체는 단순히 주어진 환경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지속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며 다른 개체들과 함께 진화해나간다. 그러므로 좀더 정확한 비유는 점보제트기 부품이 쌓인 벌판에 바람이 불면서 부품들이 하나 둘씩 조립되는 데, 이 과정에서 어떤 부품이 조립될지가 바람의 세기나 방향에 영향을 미쳐서 결국 각 단계마다 설계도가 조금씩 변경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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