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
"자기 위치에 자긍심 가지면 '도청 사건' 안 생겨"
"자기 위치에 자긍심을 가지고, 잔머리만 굴리지 않으면 '도청 사건'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 거여. 사람들은 자기가 자신을 속인 줄도 모르고 남들에게 속았다고만 하지."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에 자리잡은 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조계총림 송광사. 신라 말 길상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사찰은 보조국사 지눌 등 15명의 국사를 배출한 수선의 근본 도량이자 승보종찰이다.
19일(음력 7월15일) 하안거 해제일을 맞아 송광사의 수행 가풍을 듣기 위해 방장(총림의 최고 어른) 보성(ㆍ77) 스님을 찾았다. 대웅보전 윗편에 있는 스님의 처소인 상사당 미소실로 들어서자 벽에 걸린 '(목우가풍)'이라는 붓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뜻을 여쭙자 스님은 "소를 길들일 때 어떻게 하나"라는 질문으로 설명을 시작한다.
"코뚜레를 꿰지. 사람도 마찬가지여. 자기 코에 코뚜레를 하듯 자기 성격을 길들여 나가야 하는 것이여. 소가 길들여지면 풀을 베어 먹더라도 논이나 밭으로는 안 들어가지. 소를 길들이듯 내가 나를 길들이는 것, 이것이 참 공부인 것이지. 보조국사는 이미 800년 전에 소 길들이는 방법을 제시하셨어."
송광사는 엄격한 율법의 수행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안거 때는 선원인 수선사와 문수전에 모두 35명의 스님이 방부를 들였는데(입방 신청을 냄), 수행자들이 행여 산문 밖을 벗어나기라도 하면 곧바로 퇴방 조치하고, 다른 일반 사찰과 달리 국수나 상추쌈을 먹을 때도 발우공양을 한다.
사찰 안에는 에어컨은 물론 그 흔한 선풍기 한 대 찾아보기 힘들다. 텔레비전을 말할 것도 없고 휴대폰도 잘 터지지 않는다. 방장 스님은 "수행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수행자들은 우선 부지런해야 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말아야 돼. '그저 이번 생애에는 인간 노릇 안 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하고 사흘만 버티면 모든 것이 제대로 보이는 거여. 노력은 하되 (욕심 부려) 바라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스님은 요새 수행자들도 예전 선지식들처럼 열심히 노력하지만 환경이 너무 풍족해져서 수행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너무 잘 입고 잘 먹고 잘 쓰는 것이 탈이여. 종교가 돈이 귀한 줄을 알아야지, 요즘 제일 썩은 것이 종교여. 문경에 있는 봉암사를 봐. 신도들이 드나드는 것은 물론이고 보시도 제대로 못하게 막아. 그래도 다 잘돼. 수행웩 선방치고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많은 90명 정도야. 해인사가 30명 정도인데 말이여." 스님의 일갈은 정치인과 기업인 등에게로 이어진다. 스님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안기부 불법 도청 사건'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괴롭다고 말한다. "누구든 땅에 자빠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서라는 말이 있어. 요즘은 사람들이 땅도 안 짚고 일어나려고 해. 기업이 그렇게(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으면 다 뱉어내야 해. 패배웩 되더라도 정당한 패배웩 돼야 다음에 기회가 다시 생기는 법이여. 또 주변 열강들이 눈을 부릅뜨고 노리고 있는데 안에서는 케케묵은 것들만 밝혀내려고 하고 있어."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계율은 인간의 가장 차원 높은 행동을 이끄는 것이고, 가장 조심성 있는 행동이 곧 계율"이라며 "남을 해치려는 생각이 전혀 없어 짐승들조차 친구처럼 생각했던 근대의 뛰어난 선지식 수월 스님의 수행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순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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