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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민족대축전 개막일인 지난 14일, 북쪽 대표단이 남쪽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 호텔로 들어서는 모습. 한국이 민주주의와 평화로 한걸음 내딛는 동안, 일본은 군국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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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태 교수 비대칭의 아이러니 분석 논문
일본 우경화는 한국 민주화의 결과다? 한국의 평화주의가 일본의 군국주의를 부추긴다? 권혁태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의 ‘혜안’을 거칠게 집약하자면 이렇다. 일본의 우경화를 막기 위해 한국의 민주화를 반대하자는 논리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 변동이 서로에게 ‘비대칭적 적대’를 이루는 역설에 대한 설명이다. 한국 군사독재정권시절 일본은 평화주의 지탱하고80년대 한국 민주화되니 일 우파 위기감 확산 한·일간 여러 쟁점에 대해 실천적 발언을 해온 권 교수는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한국 민주화와 일본 우경화의 관계를 새롭게 분석했다. “(60~70년대) 한국의 반공 군사독재정권이 일본의 평화주의를 지탱하고,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민주화가 일본의 우경화를 촉진시킨 것은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평화와 적대의 동력을 서로 ‘비대칭적’으로 떠넘겨온 한-일 관계의 구조다. 권 교수가 보기에 ‘전후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일본 평화헌법 체제는 주변 지역, 특히 한국의 ‘희생’에 크게 기댄 것이었다. 군사대결을 전제로 한 냉전체제 아래서도 일본은 미·일 안보조약의 우산 아래 한국을 반공 전투기지로 삼아, “평화·민주주의·인권이라는 전후 민주주의”가 생동하는 정치·사회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냉전형 발전의 길을 걸었던 한국이 민주화의 영향으로 그동안의 (반공기지) 역할을 거부하”면서, 지금까지 한국이 감당했던 “(동아시아 냉전체제 관리의) 위험부담이 일본으로 회귀”하게 됐다. 그 결과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두 나라의 시선은 반전된다. “한국의 민주화가 일본 우파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비대칭적 관계”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일본의 군사주의화를 촉진하는 새로운 구도”까지 탄생한 것이다. 길게 보자면, 한국과 일본은 이렇게 “한 쪽의 평화가 다른 쪽의 불(不)평화를 지탱하는 상호 비대칭적 관계를 적어도 지난 100년 동안 형성”해왔다.
특히 지난 반세기에 걸친 ‘비대칭의 아이러니’ 한가운데는 미국이 있다. 한국과 일본은 “공통의 지역적 기반에 있으면서도 공통의 질서를 만들지 못했다.” 대신 “두 사회간의 비대칭성을 미국이라는 조정자를 통해 ‘의제(擬製) 동맹’의 형태로 해소”해왔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을 통한 ‘한-미-일 삼각 동맹’의 길에서 에둘러 만나왔다는 것이다. 미국 통한 ‘의제동맹’ 으로 양국 평화-불평화 번갈아
동아시아 주체적으로 “공통의 질서 조성“ 제시 미국을 사이에 둔 이 기묘한 삼각관계의 결과, 대립과 갈등의 폭탄이 한국과 일본 사이를 오가고 있는 셈이다. 이를 다시 미국의 관점에서 보자면, 적대의 폭탄을 한국과 일본에 번갈아 맡기고 있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해법은 “동아시아에서 주체적으로 ‘공통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권 교수는 “일본 평화헌법이 유지된 조건의 하나가 주변 지역의 ‘희생’이었다면, 이제는 한쪽의 평화가 다른 쪽의 평화를 촉진시키는 ‘운명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동의 군축 프로그램이나 동아시아 비핵화지대 선언 등은 그 지름길이다. 한 세기에 걸친 ‘폭탄 떠넘기기’가 ‘민주주의와 평화의 상호침투’로 변화될 수 있을지는 결국 한·일 평화세력의 역량에 온전히 달려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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