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25 16:24
수정 : 2005.08.2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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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과 매혹
레이첼 에드워즈, 키스 리더 지음. 이경현 옮김. 이제이비 펴냄.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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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독서
1933년 2월,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 도시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하녀 자매가 주인 모녀에게 달려들어 맨손으로 (살아있는 그들의!)눈알을 뽑아냈다. 두 하녀, 크리스틴 파팽과 레아 파팽은 망치로 모녀의 머리를 때리고 부엌칼로 몸통과 다리를 베었다. 자매는 서로의 칼과 망치를 바꿔가며 “오븐에 들어갈 준비가 된 고기처럼” 될 때까지 그들의 몸을 난자했다. 일을 마친 자매는 범행을 숨기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몸을 씻은 뒤 잠옷을 입고 자신들의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경찰에 체포당할 때까지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던 그들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 제대로 됐어”라고 중얼거렸다.
이 살인 사건은 단 한순간에 프랑스를 충격으로 몰고 갔다. 수많은 소설과 연극, 영화로 재탄생했고, 이런 ‘2차 텍스트’는 지금까지도 계속 생산되고 있다. 동시에 숱한 지성인들이 이 사건에 몰입했다. 초현실주의 시인 엘뤼아르,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여성학자 시몬느 드 보봐르, 철학자 사르트르 등이 이 사건의 잔혹에 매혹당한 대표적 지식인들이다.
파팽 자매 살인사건이 다른 엽기적 살인 사건에 비해 ‘섬뜩한 불멸성’을 획득한 것은 이 ‘텍스트’가 가진 유례없는 풍부함때문이다. 자매는 살아있는 사람의 눈알을 뽑았다. 살인 당시 두 자매가 생리중이었고 범죄 이후엔 생리를 다시 하지 못했다. 전생에 부부였다고 믿었던 두 자매는 동성애 근친관계로 맺어져 있었다. 감옥에서 두 자매가 재회했을 때 언니는 황홀경에 빠져 “나를 원한다고 말해줘”라고 외쳤다. 살인의 이유에 대해선 “여주인들의 피부를 갖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 책은 크게 정신분석학, 문학, 영화 등의 영역에서 파팽 자매 살인 사건에 대한 다양한 ‘독해’와 ‘재생산’의 결과를 짚는다. 이는 파팽 자매에 투영된 현대 프랑스 담론을 살피는 과정이기도 하다. 흥미진진한 지적 모험으로 독자들을 이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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