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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5 16:26 수정 : 2005.08.25 16:36

탈근대 군주론
존 산본마쓰 지음. 신기섭 옮김
갈무리 펴냄. 1만6000원

이상적인 ‘탈근대 군주’ 개념에서
다양한 저항운동 유기적 결합 가능하지만
현실선 차이만 주장…총체적 목표 사라져
“전지구 차원의 저항적 실천 가능성 봉쇄”
알튀세·푸코등 ‘프랑스산 이론’ 칼날 비판

 ‘탈근대 군주’(postmodern prince)라는 말은 기묘한 조합처럼 보인다. ‘탈근대’와 ‘군주’ 사이에는 가령 근대적 정치 주체가 빠져 있는 느낌이다. 양자를 매개해야 할 근대적 정치 주체를 생략해 버린 채 ‘탈근대’에서 ‘군주’로 퇴행했든지 ‘군주’에서 ‘탈근대’로 비약했든지. 그러나 미국의 현상학자 존 산본마쓰(43)에게는 이런 결합이 하등 이상할 게 없는 모양이다. 이상하기는커녕 이 조합은 차라리 필연적이기조차 하다. 그가 지난해에 내놓은 책 <탈근대 군주론>에 따르면 그렇다.

산본마쓰가 말하는 ‘탈근대 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연하게도, 15~16세기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출발해야 한다. 도덕도 양심도 내팽개친 냉혹한 권모술수라는 식의 단순한 이해를 넘어서면, 이 책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은 어쩔 수 없는 ‘운명’(포르투나)에 맞서기 위해 ‘능력’(비르투)을 축적하고 발휘하는 현실주의 정치인으로 다가온다. 다음은 마키아벨리보다 400년 뒤에 출현한 같은 이탈리아의 정치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차례. <옥중수고>로 잘 알려진 그람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마르크스주의 역사 이론과 결합시켜서, 집단적 주체인 인민 대중의 혁명론으로 발전시킨다. 20세기 초 자본주의 시대와 맞서 싸운 그에게 있어 ‘군주’란 특정 개인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정당인데, 그 정당은 핵심 지도부와 인민 대중, 그리고 양자를 이어 주는 고리 구실을 하는 유기적 지식인으로 이루어진다.

온갖 운동 포괄하는 통합적 개념

마키아벨리와 그람시를 거쳐서야 비로소 산본마쓰가 말하는 ‘탈근대 군주’ 개념에 접근하게 된다. 탈근대 군주란 마키아벨리 식의 특정 개인도 그람시가 생각한 주도적 혁명 정당도 아니다. 탈근대의 특성인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에서 출발하는, 다종다기한 저항운동들의 유기적 결합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고전적인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여성운동은 물론 환경운동, 동성애운동, 원주민권리운동, 반인종차별운동에 동물권익옹호운동까지 온갖 운동을 두루 포괄하는 통합적 개념인 것이다. 이런 다양한 운동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이상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지은이 자신의 말을 들어보자.

<탈근대 군주론>은 미국 주도의 21세기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부문운동들이 전체적 시야를 잃지 않고 연합할 것을 주문한다. 사진은 지난 2003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반세계화 시위 장면. AP/연합
 “사회주의자들은 여성의 대상화가 노동자의 대상화와 같다는 걸 보게 된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노동자의 굴욕과 불명예가 동성애자 폄훼와 같다는 걸 보게 된다. 유대인들과 유색인들은 동물을 노예처럼 다루고 때리고 학대하는 것이 바로 자신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행동의 논리적 지평이자 전형적인 실습행위임을 보게 된다.”(364쪽)

문제는 이런 진술이 당장의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떠한가. 서문과 맺음말을 빼고 모두 7개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제2장은 ‘방언으로 말하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산본마쓰가 목격하는 현실이 곧 ‘방언’의 현실이라 할 수 있다. 방언의 현실이란 무엇인가. 구약의 바벨탑 이야기를 상기해 보자. 바벨탑이 무너지기 전까지 한 가지 언어로 의사소통을 했던 인간들은 하느님의 진노로 바벨탑이 무너져 내린 뒤 각자의 방언을 쓰게 되면서 말이 통하지 않게 됐다. 산본마쓰는 부문운동이 각개약진하면서 서로의 차이만을 주장할 뿐 전체적 시야와 목표를 잃어버린 현실을 방언의 현실로 파악하는 것이다.

방언의 현실을 초래한 ‘범인’으로 지은이가 지목하는 것이 ‘프랑스 이데올로기’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 지점쯤에서 지은이가 말하는 ‘탈근대’(postmodern)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탈근대 군주’라고 할 때의 ‘탈근대’가 긍정적이거나 최소한 중립적인 어감을 지니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시종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미국적 맥락을 중심에 놓고 서술하는 이 책의 앞 3장은 1960년대 미국 신좌파 운동과 70년대 여성주의, 그리고 80~90년대 강단 좌파에 대한 비판에 할애된다. 공산당은 물론 노동조합운동조차 박약했던 미국에서 신좌파와 여성주의, 그리고 강단 좌파는 그나마 비판운동의 맥을 이어 온 셈인데, 산본마쓰에 따르면 그것은 매우 불충분하고 부적절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특히 80년대 이후 미국 학계를 강타한 루이 알튀세의 반인간·반주체 논리, 미셸 푸코의 주체 말살 및 차이와 분산 같은 프랑스산 이론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에서 의미있는 저항적 실천의 가능성을 봉쇄해 버렸다는 것이 지은이의 판단이다. “나는 모든 종류의 전략적 정치 사상을 폭넓게 비판한 이 포스트구조주의 비평가(=푸코)가 급진적 전통에 가장 큰 해악을 끼쳤다고 주장한다”(35쪽)고 쓸 정도로 그는 푸코에 대해 적대적이다.

다양한 차이 엮음 ‘고리’ 모호

5장에서 그는 ‘고고학자’ 푸코와 ‘군주’ 그람시를 ‘대항헤게모니 대 반헤게모니’라는 이름의 도표(236쪽)까지 그려 가며 비교한 뒤, 6장과 7장에서는 대중 대항권력의 복합구조라 할 ‘탈근대 군주’를 설명하고 나아가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서 동물의 고통에도 눈을 돌리는 ‘메타인문주의’를 주창하는 데로 나아간다. 논의의 핵심이라 할 6장에서 그는 “탈근대 군주는 단순히 관료적 또는 ‘행정적’ 조직 또는 대리인으로 축소될 수 없다. 그렇다고 단일한 정당의 관점에서 인식되어서도 안 된다”(341쪽)면서 <손자병법>까지 끌어들이는데, 다양한 차이들을 ‘총체성’의 차원에서 하나로 엮을 현실적 고리가 무엇일지에 대한 뚜렷한 답을 내놓고 있지 못한 점은 아쉬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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