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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근대 군주론
존 산본마쓰 지음. 신기섭 옮김 갈무리 펴냄. 1만6000원 |
이상적인 ‘탈근대 군주’ 개념에서
다양한 저항운동 유기적 결합 가능하지만
현실선 차이만 주장…총체적 목표 사라져
“전지구 차원의 저항적 실천 가능성 봉쇄”
알튀세·푸코등 ‘프랑스산 이론’ 칼날 비판
‘탈근대 군주’(postmodern prince)라는 말은 기묘한 조합처럼 보인다. ‘탈근대’와 ‘군주’ 사이에는 가령 근대적 정치 주체가 빠져 있는 느낌이다. 양자를 매개해야 할 근대적 정치 주체를 생략해 버린 채 ‘탈근대’에서 ‘군주’로 퇴행했든지 ‘군주’에서 ‘탈근대’로 비약했든지. 그러나 미국의 현상학자 존 산본마쓰(43)에게는 이런 결합이 하등 이상할 게 없는 모양이다. 이상하기는커녕 이 조합은 차라리 필연적이기조차 하다. 그가 지난해에 내놓은 책 <탈근대 군주론>에 따르면 그렇다.
산본마쓰가 말하는 ‘탈근대 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연하게도, 15~16세기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출발해야 한다. 도덕도 양심도 내팽개친 냉혹한 권모술수라는 식의 단순한 이해를 넘어서면, 이 책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은 어쩔 수 없는 ‘운명’(포르투나)에 맞서기 위해 ‘능력’(비르투)을 축적하고 발휘하는 현실주의 정치인으로 다가온다. 다음은 마키아벨리보다 400년 뒤에 출현한 같은 이탈리아의 정치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차례. <옥중수고>로 잘 알려진 그람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마르크스주의 역사 이론과 결합시켜서, 집단적 주체인 인민 대중의 혁명론으로 발전시킨다. 20세기 초 자본주의 시대와 맞서 싸운 그에게 있어 ‘군주’란 특정 개인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정당인데, 그 정당은 핵심 지도부와 인민 대중, 그리고 양자를 이어 주는 고리 구실을 하는 유기적 지식인으로 이루어진다.
온갖 운동 포괄하는 통합적 개념
마키아벨리와 그람시를 거쳐서야 비로소 산본마쓰가 말하는 ‘탈근대 군주’ 개념에 접근하게 된다. 탈근대 군주란 마키아벨리 식의 특정 개인도 그람시가 생각한 주도적 혁명 정당도 아니다. 탈근대의 특성인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에서 출발하는, 다종다기한 저항운동들의 유기적 결합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고전적인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여성운동은 물론 환경운동, 동성애운동, 원주민권리운동, 반인종차별운동에 동물권익옹호운동까지 온갖 운동을 두루 포괄하는 통합적 개념인 것이다. 이런 다양한 운동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이상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지은이 자신의 말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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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근대 군주론>은 미국 주도의 21세기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부문운동들이 전체적 시야를 잃지 않고 연합할 것을 주문한다. 사진은 지난 2003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반세계화 시위 장면.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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