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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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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 여자 아이의 성기를 도려내고 실로 묶는 할례 ‘007시리즈’에도 등장했던 아프리카 출신 와리스 다리는 이 야만적인 짓을 고발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할례로부터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읽었다/ 와리스 디리·캐틀린 밀러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그동안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봐왔다. 그들은 모두 스승이었다. 단 한번 스쳤을 뿐이지만 어떤 여자의 모습에서 결단코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입술을 깨물기도 했고 또 닮고 싶었지만 내 속에 깊이 뿌리박힌 관습과 여건 때문에 좇아갈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내 바로 가까이에 여러 유형의 여자들이 있다. 제일 위로는 나를 낳아준 엄마이고 제일 밑으로는 내가 낳은 딸아이다. 어느 날 밤이면 나는 내가 만나지 못한 엄마를 낳은 엄마와 그 엄마와 그 엄마들을 떠올린다. 또 내가 만나지 못할 내 딸의 딸의 딸과 그 딸들을 생각한다. 몇 대 위의 성질이 내게 발현해 나는 후두가 좋지 않고 나는 내 몇 대 아래의 딸에게 양미간의 주름을 물려줄지도 모른다. 와리스 디리의 모습을 기억한다. 007시리즈 중의 한편에서 그는 제임스 본드의 수많은 ‘걸’들 중의 한 명으로 등장했다.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 피부의 여자가 짧게 자른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고 나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남자이면서도 여자인, 여자이면서도 남자 같은 그 모습에서 강인한 여전사의 모습을 쉽사리 떠올릴 수 있었다. 그의 피부는 태양이 지글거리는 아프리카 사막을 연상시키고 날렵한 몸매는 맹수들이 뛰어다니는 아프리카 대륙의 생명력을 느끼게 했다. 그 전사의 한 부분이 관습이라는 이름하에 훼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서였다. 그뿐 아니라 그는 그의 작은 입(그의 어머니는 그를 아브도홀, 작은 입이라고 불렀다)으로 아무도 발설하지 않았던 여성 할례에 대해 세상에 널리 알렸다. 여성 할례로 불리는 여성의 성기 절제가 얼마나 남성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야만적인 짓에 몸서리쳤다. 불결하기 짝이 없는 도구로 다섯 살 어린 여자아이의 몸 한 부분을 도려내고 실로 묶어 봉한다. 순결 때문이다. 봉한 것을 풀 수 있는 것은 남편뿐이다. 할례를 하지 않은 여자는 좋은 신붓감이 될 수 없다. 어머니들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 아픔을 그대로 딸에게 대물림시킨다. 아버지들은 딸들을 좀더 좋은 곳에 시집보내고 싶어한다. 운이 좋은 여자아이들만 살아남는다. 소독되지 않은 도구에서 옮겨진 온갖 합병증들로 와리스 디리는 언니와 사촌 둘을 잃었다. 소말리아 유목민들에게 낙타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와리스 디리는 낙타 다섯 마리에 늙은 남자와 결혼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깊은 새벽 그는 운명으로부터 도망친다. 모가디슈로 가는 길은 멀고 멀었다. 사자에게 먹힐 뻔하고 남자들에게 폭행당할 위기도 맞는다. 어느 상황에서든 이 소녀는 쉽게 포기하는 법이 없다. 소녀는 유유히 남자들을 따돌리고 도망치며 여권을 얻기 위해 두 차례나 위장결혼을 하기도 한다. 소녀는 자신 앞에 펼쳐진 길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거침없이 발을 들여놓았고 나아갔다. 와리스 디리에 의해 아직도 여러 나라의 소녀들이 할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지구상의 여성 가운데 1억5천만 명 가량이 할례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와리스 디리는 “여자들은 발정난 짐승이 아니어서 미개한 풍습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여자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야 한다”고 남자들에게, 관습을 향해 외쳤다.그럼 우리는 할례로부터 자유로웠나. 몸 대신 정신의 한 부분에 할례를 받은 것은 아닐까. 우리는 끊임없이 순결을 강요당했다. 여자들조차 순결하지 않은 여자를 멸시했다. 왜 우리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는 건강한 성()이 없는가? 한 여자가 말했다. 그런 당사자도 자신에게 물어보라. 지금까지 우리에게 건강한 성이란 없었다. 자신의 일생을 한 권의 책으로 갖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와리스 디리는 이미 한 권의 책을 가졌다. 나는 이 책을 딸에게 읽힐 생각이다. 그래서 딸아이가 소심한 제 가계의 사슬 속에서 용감한 돌연변이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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