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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5 16:55 수정 : 2005.08.25 17:08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
임락경 지음. 삼인 펴냄. 9800원

강원도 화천 산골짜기 시골교회 목사 임락경씨 평생 농민·노동자와 살아온 그가
탁월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이승만 찬가 비롯한 관제가요 눈시울 적시는 구전·민중가요 등
옛 노래 72편 속에 각인된 전쟁과 독재, 가난과 기쁨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강원 화천 화악산 골짜기의 ‘시골교회’ 목사 임락경(60)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뜻’을 세워 평생을 농사꾼으로, 장애인·노인을 보살피며 농민·노동자와 어우러져 살아왔다. 그는 이젠 점점 잊혀지는 옛 노래들을 정확히 기억하는 재주꾼으로도 이름났다. 스스로 말하길 “잡다한 노래들”이다. 그가 갖가지 옛 노래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노래들에 그 시절 그 삶의 조각이 정지화면처럼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입이 노랫말을 흥얼거리면 기억 저편에서 농사꾼의 땀, 전쟁과 독재의 추억, 그리고 가난과 기쁨의 화면들이 질긴 빨랫줄에 걸린 것처럼 끊김없이 줄줄이 이어 나온다. 노래들은 그의 입에 머물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울고 웃는 이 땅 민초들이 함께 불렀던 노래들이다.

거기엔 ‘억지춘향’으로 학교 운동장에 정렬한 채 불러야 했던 엉터리 관제가요들도 있고─ “왔네 왔네 해방 왔네 망명 갔던 이 박사가/ 일제 탄압 물리치고 조국 광복 이룩코저/ 중국 미국 건너가서 해방 싣고 돌아왔네/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다”(‘이승만 박사 찬가’, 1957년 국민학교 보급 가요).

노래로 말하는 자서전

부르다 보면 고향 떠난 민초들의 촉촉한 눈시울을 떠올리게 하는 구전가요들도 있고─ “저 산 넘어 새파란 하늘 아래는/ 그리운 내 고향이 있으련마는/ 천리만리 먼 땅에 떠난 이 몸은/ 고향 생각 그리워 눈물짓는다/ 비들순 두던 데 모여 앉아서/ 풀피리 불며 놀던 그리운 동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나/ 생각사록 내 고향 그립습니다”(‘고향 생각’).

1980년대에 감옥 가는 운동권 연인들이 이별하며 불렀던 유행가들도 있으며─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었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가신 뒤에 제 갈 길은 님의 길이요/ 바람 불고 비 오는 어두운 밤길에도/ 홀로 섰는 이 발 길에 눈물을 감추었소”(’아내의 노래’).

가난과 노동의 절절한 아픔이 새겨진 민중가요들도 있더라─ “서방님의 손가락은 여섯 개고요 시퍼런 절단기에 뚝뚝 잘려서/ 한 끼에 오만 원씩 이십만 원을 술 퍼먹고 돌아오니 빈털터리래”(‘야근’). 그러고보면, 노래의 기억은 과거 사건의 기억인 셈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지금은 사라진 구전가요의 긴 노랫말을 또렷한 음질로 재생하는 탁월한 기억력을 발휘해, 임 목사가 쓴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삼인 펴냄)은 일제 때부터 1980년대까지 민초들이 자주 불렀던 72편의 창가, 동요, 관제가요, 군가, 유행가, 운동가요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노래 이야기는 곧 ‘노래로 말하는 임락경의 자서전’이 되었다.

민초들이 불렀던 옛 노래들에는 어렴풋하고도 때로는 또렷한 그와 그 시대의 옛 추억들이 새겨져 있다고 시골교회 임락경 목사는 말한다. 민초들의 노래들은 그에게 가난과 땀, 전쟁과 독재, 고난과 기쁨의 옛 기억들을 담고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마을축제 때 사진의 맨앞쪽 상쇠잡이가 임 목사다. 사진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에서.
그가 머릿속 기억의 장소에다 채록한 노랫말의 출처는 그 삶의 궤적이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요상한 노래들(“고마우신 이 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내오리다” “그 이름 찬란하다 이기붕 선생/ 이 박사를 보필하실 애국자라네”)을 배웠고, 군인으로서 멸공의 노랫말(“쳐부수자 공산군 몇 천만이냐/ 우리 국군 진격에 섬멸뿐이다” “배낭 메고 구두끈을 굳이 메고서/ 힘 있게 일어서는 멸전의 행진”) 속에서 살았고, 농사꾼 목사로 살며 유행가의 노랫말을 바꿔 부르는 ‘노가바’(“비료 값 농약 값 모두 올라도 농민들의 쌀값은 오르지 않네”(‘고래사냥’))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암울한 시절엔, 간혹 노랫말이 ‘사람 잡는 사건’을 만들었다. 1979년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이 그렇다.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연수교육을 받던 참가자들이 당시의 유행가 ‘아 미운 사람’을 개작해 “농민들이 얼마나 농사를 더 져야 아 살 수 있나/ 우리 모두 지금까지 피땀 흘려 왔는데 아 슬픈 현실”이란 ‘노가바’를 만들어 부른 것이 뒤늦게 화근이 돼, ‘남한 체제 전복을 위한 6인 서클 구성’이란 사건으로 발전했다고 지은이는 회고했다. 이 노래는 그에게 남산 중앙정보부, “속칭 남산 탁구장”에서 받은 고문의 기억과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노래는 그의 삶 속에서 여러 삽화를 불러내며 계속된다.

즐겁게 사는 것과 기쁘게 사는 것

“상학종을 쳤는데 어떻게 할까/ 집으로 돌아갈까 들어가 볼까/ 월사금이 없어서 학교 문밖에/ 나 혼자 설움 아닌 눈물 나오네”라는 일제 시대 야학에서 불렸다는 이 노래는 지은이한테 어린 시절의 가난과 함께 진학을 하지 않겠노라 결정했던 초등학생 임락경의 야무진 생각을 또렷이 되살린다.

“펄펄펄 휘날리는 재건의 깃발 아래서/ 조국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겠느냐”는 ‘재건의 노래’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위원회장을 수장으로 한 군인문화 속에서 ‘재건합시다!’를 인삿말로 하라는 웃지 못할 공문까지 나돌던 시절을 말한다.

또 “양키 쪽발이 판치는 세상/ 매판과 파쇼에 지친 형제들”의 ‘우리 것 우리가 찾아서’에는 살기 힘들었던 1970년대 농촌의 임 목사 집을 안식처로 여겨 찾아들던 해고노동자들이 벌였던 한바탕 노래·춤판의 신나는 기억이 담겼다.

나이 예순에 접어든 그에게 지금 다시 불러보는 동요는 더욱 새롭다. 기름불조차 없어 밤이면 바느질도 못하는 순이네 엄마 방에다 달을 따다 달아드리자는 애틋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달따러 가자’, 올빼미족 세계 3위가 된 우리나라의 늦잠 버릇을 향해 호통을 치게 하는 ‘새나라의 어린이’, 산천초목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국토 개발 바람과 함께 학교에서 없어진 노래 ‘뚝딱뚝딱 해는 저문다’라는 동요들은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아쉬움이 담겼다.

‘노래하는 자서전’을 통해, 그는 이제 “즐겁게 사는 것보다 기쁘게 사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자기를 위해 살면 즐거움이 있고 자기 가족을 위해 살면 더욱 즐겁다. 그러나 타인을 위해 살면 기쁨이 있다. 즐거움은 육에 필요한 것이기에 잠깐이요, 기쁨은 영원하다.” 소개된 노랫말 72편 가운데 25편의 악보가 책의 말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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