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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
임락경 지음. 삼인 펴냄. 9800원 |
강원도 화천 산골짜기 시골교회 목사 임락경씨 평생 농민·노동자와 살아온 그가
탁월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이승만 찬가 비롯한 관제가요 눈시울 적시는 구전·민중가요 등
옛 노래 72편 속에 각인된 전쟁과 독재, 가난과 기쁨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강원 화천 화악산 골짜기의 ‘시골교회’ 목사 임락경(60)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뜻’을 세워 평생을 농사꾼으로, 장애인·노인을 보살피며 농민·노동자와 어우러져 살아왔다. 그는 이젠 점점 잊혀지는 옛 노래들을 정확히 기억하는 재주꾼으로도 이름났다. 스스로 말하길 “잡다한 노래들”이다. 그가 갖가지 옛 노래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노래들에 그 시절 그 삶의 조각이 정지화면처럼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입이 노랫말을 흥얼거리면 기억 저편에서 농사꾼의 땀, 전쟁과 독재의 추억, 그리고 가난과 기쁨의 화면들이 질긴 빨랫줄에 걸린 것처럼 끊김없이 줄줄이 이어 나온다. 노래들은 그의 입에 머물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울고 웃는 이 땅 민초들이 함께 불렀던 노래들이다.
거기엔 ‘억지춘향’으로 학교 운동장에 정렬한 채 불러야 했던 엉터리 관제가요들도 있고─ “왔네 왔네 해방 왔네 망명 갔던 이 박사가/ 일제 탄압 물리치고 조국 광복 이룩코저/ 중국 미국 건너가서 해방 싣고 돌아왔네/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다”(‘이승만 박사 찬가’, 1957년 국민학교 보급 가요).
노래로 말하는 자서전
부르다 보면 고향 떠난 민초들의 촉촉한 눈시울을 떠올리게 하는 구전가요들도 있고─ “저 산 넘어 새파란 하늘 아래는/ 그리운 내 고향이 있으련마는/ 천리만리 먼 땅에 떠난 이 몸은/ 고향 생각 그리워 눈물짓는다/ 비들순 두던 데 모여 앉아서/ 풀피리 불며 놀던 그리운 동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나/ 생각사록 내 고향 그립습니다”(‘고향 생각’).
1980년대에 감옥 가는 운동권 연인들이 이별하며 불렀던 유행가들도 있으며─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었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가신 뒤에 제 갈 길은 님의 길이요/ 바람 불고 비 오는 어두운 밤길에도/ 홀로 섰는 이 발 길에 눈물을 감추었소”(’아내의 노래’).
가난과 노동의 절절한 아픔이 새겨진 민중가요들도 있더라─ “서방님의 손가락은 여섯 개고요 시퍼런 절단기에 뚝뚝 잘려서/ 한 끼에 오만 원씩 이십만 원을 술 퍼먹고 돌아오니 빈털터리래”(‘야근’). 그러고보면, 노래의 기억은 과거 사건의 기억인 셈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지금은 사라진 구전가요의 긴 노랫말을 또렷한 음질로 재생하는 탁월한 기억력을 발휘해, 임 목사가 쓴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삼인 펴냄)은 일제 때부터 1980년대까지 민초들이 자주 불렀던 72편의 창가, 동요, 관제가요, 군가, 유행가, 운동가요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노래 이야기는 곧 ‘노래로 말하는 임락경의 자서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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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이 불렀던 옛 노래들에는 어렴풋하고도 때로는 또렷한 그와 그 시대의 옛 추억들이 새겨져 있다고 시골교회 임락경 목사는 말한다. 민초들의 노래들은 그에게 가난과 땀, 전쟁과 독재, 고난과 기쁨의 옛 기억들을 담고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마을축제 때 사진의 맨앞쪽 상쇠잡이가 임 목사다. 사진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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