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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5 17:16 수정 : 2005.08.25 17:19

베일 속의 사나이, 오펜하이머
제레미 번스타인 지음. 유인선 옮김. 모티브 펴냄. 1만3500원

’핵무기 시대’ 열었지만 수소폭탄 반대·좌익경력 탓 매카시즘 제물 된 이력 통해 과학의 사회적 책임 화두 던져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67)는 그야말로 영광과 고뇌, 그리고 모욕의 개인사를 한몸에 겪었던 과학자다. 제2차 대전 시절에 미국의 핵무기 제조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1943~45)의 과학기술 총책임자로서 핵무기의 시대를 연 인물이면서, 더욱 가공할 위력의 수소폭탄 개발엔 반대하다가 과거의 좌익 경력이 뒤늦게 문제돼 기소되는 비극을 겪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유별난 이력은 여러 화두를 던져준다. 국가와 과학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정치는 순수한 과학의 발전에 얼마나 개입하는가, 그리고 과학의 사회적 책임은 어떤 것인가 등등.

오펜하이머가 프린스턴고등연구소장(1947~66)을 맡던 시절에 그곳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이론물리학자 제레미 번스타인이 쓴 <베일 속의 사나이, 오펜하이머>(모티브 펴냄)는 오펜하이머의 평전이면서 거기에서 이런 물음들을 건져올려 독자들한테 던진다.

책의 중심은 아무래도 3장 ‘로스앨러모스’와 4장 ‘청문회’다.

3장이 맨해튼 프로젝트의 중심축인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소장 오펜하이머와 핵물리학자들의 열정과 소명, 논쟁, 그리고 원폭 투하 이후의 공포와 고뇌를 담은 데 비해, 4장은 미국 상원의원 매커시가 주도한 1954년 안보 청문회 등에서 오펜하이머가 겪은 “인민재판”의 삭풍을 보여준다.

1938년 ‘핵분열’이 실험실에서 처음 성공한 이후 숨가쁘게 전개된 정보수집과 보안, 연구개발 움직임은 당시의 긴박감을 보여준다. 특히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슈퍼폭탄’의 개발에 나서면서 여러 핵물리학자들이 보였던 열정과 고민, 논쟁들은 역사적 순간에 선 과학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일부는 학문적 호기심에서, 일부는 모험심에서, 그리고 일부는 적들이 핵무기를 먼저 개발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또 일부는 파시즘 전쟁을 서둘러 끝내자는 소명에서 비롯한 원폭 개발의 동기들은 다양했다.

원폭 투하 직후 핵물리학자 베테가 했다는 말은 여러 울림을 던져준다. “폭탄이 투하된 후 폭탄 제조를 도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베테와 같은 생각을 했다. 처음에 베테는 자신들이 해낸 일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공헌했다는 점에 만족감을 느꼈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119쪽)

일본의 항복 직후에 오펜하이머가 절친한 친구 슈벨리에한테 보낸 편지에도 공황 상태의 마음이 담겼다. “일본이 항복하고 며칠 뒤 우리는 천천히 제정신을 되찾기 위해 얼마간의 고독 그리고 말과 함께 며칠을 보내려고 목장으로 왔습니다.…현 상황은 무거운 불안감, 그 이상입니다. 예상했던 어려움, 그 이상입니다.”(121쪽)


1950년대는 오펜하이머한테 악몽과도 같은 시절이었다. 1949년 소련이 첫번째 핵무기 실험을 성공시킨 이후 미국에선 더욱 강력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었다. ‘수소폭탄의 아버지’ 에드워드 텔러(1908~2003)는 수소폭탄 개발을 적극 주장했다. 오펜하이머는 원자력위원회 자문회의에서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하며 그 정반대 쪽에 서 있었다.

1954년 매커시 청문회는 한때 전쟁을 조기 종식시킨 영웅으로 떠올랐던 오펜하이머를 사상 검증하며 모욕하는 ‘마녀사냥’의 자리였다. 당시 청문회 기록을 되짚는 지은이는 “권모술수와 별것도 아닌 것 같은 일에 대한 끝없는 질문으로 채워진 청문회…자체는 비극이었다”라고 전한다. 오펜하이머는 당시 “그것은 비극이 아니라 오히려 익살스런 광대극”이었다고 말했다.

인류 문명을 위협하는 가공할 핵무기는 이렇게 이미 인류의 손에 쥐어졌고, 오펜하이머는 힌두경전의 한 구절을 인용해 “이제 나는 세계의 파괴자, 죽음의 신이 되었다”라는 독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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