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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5 17:32 수정 : 2005.08.25 17:52

갈릴레오의 <대화>는 출판된 지 몇 달이 되지 않아 ‘불온서적’의 혐의를 받고 ‘금서’ 목록에 포함됐다. 이어 이듬해인 1633년 그는 종교재판에 회부돼 “심각한 이단의 혐의”라는 유죄 선고와 함께 종신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그림은 1633년 종교재판 장면.

지구의 공전과 자전 운동의 종합으로
밀물과 썰물을 설명하려 했던 갈릴레오
그러나 그의 ‘혁명적’ 업적은 조수 이론이 아니라
자연을 수학과하는 근대 물리학의 전통을
‘대화’를 통해 수립했다는 데 있다

고전 다시읽기/ 갈릴레오 ‘대화’

“갈릴레오의 저술에서 발견된 심각한 오류 때문에 우리 특별위원회는 이 문제를 성성(: 이단자 심문소)으로 가지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1632년 9월, 교황 우르반 8세의 조카 바르베리니 추기경은 플로렌스의 눈치오 주교에게 이렇게 썼다. 그의 편지의 목적은 플로렌스에 거주하는 갈릴레오가 <대화>를 다른 지역으로 반출하려고 시도할 때 이를 각 지역의 당국자에게 미리 알려 책의 유포를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갈릴레오의 <대화>는 출판된 지 몇 달이 되지 않아 이렇게 ‘불온서적’의 혐의를 받고 ‘금서’ 목록에 포함되었다. 다음 해인 1633년,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었고 “심각한 이단의 혐의”라는 유죄를 선고받은 뒤에 종신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갈릴레오는 오래 전인 1597년에 천문학자 케플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구를 움직이지 않는 우주의 중심이라고 본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바다의 조수 현상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은 오랫동안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신봉해왔다고 썼다. 1610년에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통해서 태양의 흑점, 달의 울퉁불퉁한 표면, 금성의 차고 기움, 목성의 4개의 위성을 관찰했고, 이러한 천체 현상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을 뒷받침한다는 책을 출판했다. 계속해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옹호하고 설파하던 갈릴레오는 이 이론이 이단이라는 벨라르민 추기경의 경고를 받고, 1616년에 더 이상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논의하거나 옹호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했다. 그렇지만 그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1623년에 교황 우르반 8세로 즉위한 뒤에 갈릴레오는 즉시 교황을 설득해서 코페르니쿠스 체계와 아리스토텔레스 체계의 장단점을 모두 비교하는 책을 쓸 수 있도록 허락을 얻어냈다.

갈릴레오는 이 책을 <조수에 관한 대화>라고 불렀고, 5년 동안의 집필 과정을 거쳐서 1630년에 원고를 완성했다. 갈릴레오가 검열을 위해 교황청에 제출한 원고의 제목도 <밀물과 썰물에 관한 대화>였다. 하지만 제목에 ‘조수’를 허용하면 이것이 마치 갈릴레오의 조수 이론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고 생각한 검열관은 제목에서 조수라는 단어를 삭제하라고 명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프톨레마이오스-코페르니쿠스 두 개의 주요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Dialogo di Galileo Galilei sopra i due Massimi Sistemi del Mondo Tolemaico e Copernicano)라는 긴 제목으로 1632년 2월에 플로렌스에서 출판되었다.

<대화>는 두 명의 철학자와 한 명의 지적인 시민이 코페르니쿠스의 체계와 프톨레마이오스(아리스토텔레스) 체계에 대해서 4일 동안 토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옹호하는 철학자는 살비아티이며,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자는 심플리치오, 사회를 보는 중립적인 입장의 시민은 사그레도였다. 살비아티와 사그레도라는 이름은 갈릴레오의 친구들의 이름을 따서 붙였으며, 심플리치오는 6세기에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자의 이름에서 연유했다.

출판 몇달 만에 금서 목록에

그런데 심플리치오라는 이름은 “바보”라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고, 실제로 이 책이 나온 뒤에 이런 오해가 태반이었다. 여기에 심플리치오가 교황 우르반 8세를 모델로 해서 창작된 인물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런 상황은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개신교의 공격으로 가뜩이나 심기가 사나왔던 교황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대화>는 네 장으로 구성되었다. 첫 장인 “첫날”에서는 지구와 천체들, 망원경으로 관측한 달의 생김새와 같이 천문학적 현상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으며, “둘째 날”에서는 지구의 자전을, “셋째 날”에서는 지구의 공전을 논의하며, 마지막인 “네째 날”은 갈릴레오가 가장 핵심적이라고 보았던 조수 현상을 다루었다. 이 책은 대놓고 코페르니쿠스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수학적인 가설로서 취급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서문에서 이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또 주인공 세 사람은 각각 코페르니쿠스, 프톨레마이오스, 중립의 입장을 취하면서 균형을 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책 내용의 전개는 이런 겉모습과 판이하게 달랐다. 책을 읽은 독자들은 <대화>가 코페르니쿠스주의를 옹호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주장에 고개가 끄떡여질 정도로 갈릴레오는 확실히 한 쪽 편을 들고 있었다. 살비아티는 매우 설득력있게 심플리치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중립을 지켜야 하는 사그레도도 시간이 갈수록 살비아티에 가세하는 경향을 보였다. 게다가 당시의 보통 학술서가 라틴어로 집필된 데에 반해 <대화>는 이탈리아어로 집필되었으며, 쉽고 재미있게 서술되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대화>는 널리 읽혔고 이 글을 읽은 많은 이들을 코페르니쿠스주의로 전향시키는 데 성공적이었지만, 모든 과학자를 설득한 것은 아니었다. 갈릴레오가 가장 정교한 물리적 논변을 통해서 설명한 현상은 “왜 지구가 자전을 하는데 쏘아올린 화살은 제 자리에 떨어지는가?” “왜 지구가 운동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가”라는 것이었다. 갈릴레오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해서 운동하려 한다는 관성의 법칙과 운동은 운동의 상대적 차이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는 상대성이론을 도입했다. 근대 역학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이렇게 해서 놓여졌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를 설명했다고 지동설을 입증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런 문제들은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할 때 훨씬 더 쉽게 설명이 되는, 아니 설명조차 필요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금성의 위상변화와 같은 천문학적 증거들도 설득력이 충분치 않았다. 예를 들어, 수학과 천문학을 깊게 공부했던 예수회 소속 천문학자들은 갈릴레오의 <대화>를 맹공했는데, 이들은 <대화>가 단순히 교리에 어긋나는 사상을 전파해서가 아니라, 갈릴레오가 의도적으로 티코 브라헤의 천문학 이론을 무시하고 코페르니쿠스를 이미 용도 폐기된 프톨레마이오스와 싸우게 했다는 점에 분노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오고 수십 년 뒤에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는,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는 지구의 주위를 태양이 돌고, 다시 그 태양의 주위를 행성들이 회전한다는 지동설-천동설의 ‘퓨전’ 이론을 제창했다. 티코 브라헤의 우주구조는 금성의 위상변화와 같은 천문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으며, 신학적 교리와도 부합한다는 점에서 가톨릭 천문학자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졌다. 반면에 갈릴레오는 <대화>에서 티코 브라헤의 체계를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지구가 정지해 있는 티코의 체계는 어쨌든 조수를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쉽고 재밌게 서술 일반인에 인기

지구의 공전과 자전 운동의 중합으로 밀물과 썰물을 설명하려했던 갈릴레오의 조수 이론은 그가 <대화>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독창적이라고 생각한 부분이다. 갈릴레오에게 이것은 지구의 운동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렇지만 갈릴레오의 조수 이론은 12시간마다 밀물과 썰물이 반복된다고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이 주기가 6시간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교회측의 벨라르민 추기경도 이 문제를 이미 지적한 적이 있었다. 갈릴레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조수 이론은 이후에 뉴턴의 중력이론으로 대치되었다.

<대화>의 ‘혁명성’은 조수 이론이 아니라 자연을 수학화하는 전통을 수립했다는 데에 있었다. 갈릴레오는 기하학을 사용해서 경사면 운동을 기술했고, 저항이 없는 표면에서의 운동과 같은 이상적·수학적 공간을 상정해서 관성의 운동을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설명을 토대로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이 던졌던 역학적 문제들을 하나씩 설명했는데, 자연을 추상화하고 수학화하는 근대 물리학의 전통은 이 <대화>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에서 종신 가택연금을 선고받는다. 그가 1616년의 서약을 어겼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유죄의 근거였다. 갈릴레오의 재판은 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간주되었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이 사건은 갈릴레오와 교황의 성격, 예수회 천문학자들의 분노, 당시 카톨릭 교회가 처한 악조건 등의 요소가 결합해서 빚어낸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를 두고 과학과 종교는 아무런 갈등이 없었다고 결론지어서도 안 된다. 갈릴레오의 <대화>가 보여주는 것은, 과학적 발견을 종교적 믿음으로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소박한 신념은 과학과 쉽게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50자 서평

◇ 김봉국(31·서울대 과학사 박사과정)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어떻게 촉발되었을까. 기독교적 우주관에 대항해 코페르니쿠스 우주 구조의 우수함을 설파하며, 당대 가장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문제작.”

◇ 글렌 베커(아마존 독자서평에서) “몇 세기 동안의 퀴퀴한 어둠 뒤에 빛과 맑은 공기를 맞은 서구 정신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의 기념비적 저작을 냉대하기보다 그 저작들이 그토록 오래 교리처럼 집착됐다는 사실을 비탄한다.”

◇ 꺼벙이(알라딘 마이리뷰에서) “그 시대의 과학자들은 논쟁하길 즐겼으며 갈릴레오도 달변으로 인기 높았다니 정반대라 생각했던 과학과 철학이 실은 한 맥락이 아닌지 의문스럽다.”(<갈릴레오의 딸>을 읽고)

▽ 다음주 이후 고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마틴 루터 킹), <논어>, <프로타고라스>(플라톤)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cheolwoo@hani.co.kr

서평자 추천 도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 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관한 대화 (상·하)

갈릴레오 갈릴레이 지음. 이무현 옮김

교우사 펴냄(1997). 1만원(상)·7천원(하)

(<대화>의 번역본. 새로운 번역본이 필요하다)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 갈릴레이의 천문노트

갈릴레오 갈릴레이 지음. 앨버트 반 헬덴 역해, 장헌영 옮김

승산 펴냄(2004). 9500원.

(갈릴레오의 1610년 의 번역본)

갈릴레오의 딸

데이바 소벨 지음. 홍현숙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2001). 1만4500원

(딸의 편지를 통해 갈릴레오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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