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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5 17:53 수정 : 2005.08.25 17:57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그 길은 달랐으나 벽초, 죽음앞 춘원 외면치 않고 뱀범, 일지 풀이 춘원에 맡겼소 광복 60년 통큰 이 그리워…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

2005년 7월 하순 민족문학작가회의 주도로 60년 만에 남북작가의 만남이 이루어졌소. 사람과 역사를 관찰함에 고도의 감수성의 훈련을 쌓은 작가들인지라 비록 5일간이지만 필시 유별남이 있었을 것이오. 그러한 사례 중의 하나로 재북 인사(납북 및 월북 인사) 묘역 체험을 들 수 있소. 보도에 의하면, 남쪽 작가들의 요청사항이었다 하오. 62명의 재북 인사 속엔 춘원 이광수(1892. 3. 4~1950. 10. 25)도 들어 있었다 하오. 친일·반공 인사도 수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항일투쟁이 북한 국가 이념의 뼈대로 인식되어 있기에 이런 물음이 던져질 수밖에. 안내인의 대답은 이러했다 하오. ‘통큰 정치의 일환’이라고.

<무정>(1917)의 작가 춘원은 언제 어떻게 죽었을까. 한동안 이런저런 풍문이 있었소. 그 풍문을 깡그리 물리칠 수 있는 계기가 찾아왔소. 부친의 생존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북한측 초청을 받아 춘원의 삼남 이영근(존스 홉킨스 대학 물리학 교수)씨가 방북한 것은,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1991년이었소. 씨가 알아낸 것은 이러했소. 춘원의 사망일자는 1950년 10월25일이었다는 것. 납북 도중 심한 동상에 시달리던 춘원은 인민군 병원에서 치료 도중 사망했다는 것. 그곳이 자강도 강계 만포면 고개동이었다는 것. 1970년에 김약수, 정인보, 원세훈 제씨와 함께 평양 근교 공동묘지에 이장되었다는 것. <고려일보>(알마타) 주필 정상인, 박성진 양씨의 증언에 따르면, 춘원의 마지막 장면이 좀더 생생하오. 강계에서 30㎞ 떨어진 개고개에 이르러 심한 동상으로 사경을 헤매던 춘원은 옛 친구 벽초 홍명희(당시 노동당 군사위원회 위원. 훗날 부수상. 1968년 사망)에게 구원을 요청했다는 것. 벽초는 주석 김일성의 재가를 얻어 강계에서 15㎞ 떨어진 자기 숙소에 데려갔다가 인민군 병원으로 옮겼으나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어 사망했다는 것.(졸저, <이광수와 그의 시대> 2, 솔, p. 466)

이상의 증언에서 확인되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춘원 무덤이 평양에 있음을 아들이 직접 확인했음이 그 하나. 다른 하나는, 벽초에게 구원을 요청했던 바, 벽초가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

 구한말에 나서 경술국치 이전에 이미 철든 세대에 속하는 춘원과 벽초는 함께 일본에 유학했소. 나라가 망해가는 판에 졸업을 해서 뭣하랴, 라는 말을 남기고 귀국한 쪽이 벽초였다면, 그래도 춘원은 졸업해서 오산학교 교사에 나아갔지요. 춘원의 기록에 기대면 자기보다 네 살 위인 벽초는 한문 실력은 물론이고 서양문학에도 한 수 위였다 하오. 당시 악마주의로 불린 바이런의 <카인>에 매료되어 호를 ‘가인()’이라 하기도 했다 하오. 도쿄에서 어울렸던 이들이 다시 만난 것은 1914년의 망명지 상하이에서였소. 러시아의 치타로 가기까지 춘원은 조소앙, 문일평, 벽초 등과 궁핍하기 짝이 없는 상하이의 한 방에서 머물기도 했소. 그 뒤로 벽초와 춘원은 각각 자기의 갈 길을 갔소. 길은 달랐으나 둘이 옛 친구임에는 변함이 없었소. 이를 두고 통큰 사람들의 우정이라 하면 어떠할까.

내친 김에 또 하나 통큰 사례를 들어보고 싶소. 우리 겨레의 필독서로 꼽히는 것들 중에 저 유명한 <백범일지>가 있소.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는, 실로 알기 쉬운 순수 우리말로 되어 있소. 한문에 토를 단 <백범일지> 원본을 누가 이토록 쉽게 윤문을 했을까. 춘원이 윤문을 자청했다 하오. 속죄하는 심정으로 맡겠다니 시켜보라고 주위에서 백범께 말했다 하오. 백범께선 그의 행실 때문에 망설였다 하오.

 “아버님은 그의 행실 때문에 망설였는데 누군가가 글솜씨도 있는 사람이고 속죄하는 기분으로 맡겠다니 시켜보라고 했대요. 그가 윤문을 한 건 사실이나 아버님이 그걸 알고 맡기셨는지는 의문입니다.”(김신 씨의 대담, <신동아>, 1986. 8, p. 347)


백범께선 얼마나 통이 컸을까. 광복 60년을 맞는 이 마당에 통큰 인물들이 새삼 그립소. 아, 어떻게 해야 우리 범부들도 통이 조금은 커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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