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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5 18:04 수정 : 2005.08.25 18:11

김형경 장편 <외출>

‘외출’ 시나리오 소설화 영화·소설 발맞춰 ‘개봉’ ‘사랑으로 본성 말하기’ 김형경표 독자성 작품 관통 ‘문학의 성채’ 내준 문학과 지성사 “작품 좋다면 유래 따지는 건 불필요”

 김형경(45)씨의 새 장편소설 <외출>(문학과지성사)은 징후적이다.

알려진 대로 이 소설은 허진호 감독의 영화 <외출>과 동일한 이야기 틀을 지니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시나리오가 먼저 완성되었고, 소설은 그 시나리오를 바탕 삼아 쓰여졌다. 작가가 시나리오를 건네받은 것은 지난 2월 말이었고, 소설을 탈고한 것은 7월 말이었다. 그 사이 허 감독은 영화 촬영을 진행했고, 작가는 중간중간 촬영된 필름을 참조했다. 영화는 다음달 8일 개봉 예정이다.

소설 <외출>이 징후적인 것은 우선 작가가 김형경씨라는 사실에서 말미암는다. 그동안 영화나 시나리오를 ‘원작’삼은 소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본격문학’ 작가가 ‘영화의 소설화’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작가는 이 소설이 단순한 ‘영화 소설’이 아니라 영화와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작품임을 강조한다.

 “기본적인 골격은 시나리오에서 가져왔지만, 영화에 없는 장면과 에피소드를 많이 첨가했다. 서술의 순서를 뒤바꾸기도 하고, 영화에서는 길게 묘사한 대목을 소설에서는 한 줄로 압축하거나 반대로 영화에서 서너 컷으로 처리된 장면에 소설에서는 한 장() 전체를 할애하기도 했다. 소설 <외출>이 영화와는 구분되는 별도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영화와 구분되는 소설 나름의 ‘언어’를 위해 고민한 흔적은 작품 곳곳에서 보인다. 우선 첫 장면부터가 다르다. 시나리오와 영화가, 주인공인 조명기사 인수(배용준)가 아내 수진(임상효)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무대 작업을 하다가 중단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반면, 소설은 인수가 병원에서 여주인공 서영(=영화에서는 손예진)의 모습을 처음 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인수가 서영을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긴 나무 의자 왼쪽 끝으로 치우쳐 앉아 있었다. 두 손을 맞잡은 채 상체를 한껏 구부린 자세였다.(…)그녀는 콘크리트나 진흙으로 만든 조형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직 콘크리트나 진흙이 제대로 마르지 않아 잘못 건드리면 많은 것이 망가질지도 모르는 모습 같았다.”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관계였음을 확인한 뒤 괴로워하던 인수가 술에 취한 채 서영의 모텔 방에 ‘침입’하는 장면은 시나리오에도 있지만, 서영의 방에서 잠에 떨어졌다가 깬 인수가 ‘냉장고에 물 있습니다’라는 서영의 메모를 발견하는 장면은 작가의 순전한 창안이다. 서영의 이 메모는 소설 속에서 여러 번 등장해 인수와 서영이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데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인수는 “그 문장을 읽을 때면 진짜로 시원한 물을 마시는 듯한 청량감이 들기도 했”(86쪽)으며, 나중에 서영이 인수의 방 테이블에서 자신이 쓴 메모를 발견했을 때 “그 메모지는 인수가 건넨 수천 마디의 말보다 더 강렬하게 서영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인수가 문득 사랑스러웠다.”(144쪽) 한바탕 강렬한 사랑을 나누고 헤어졌던 두 사람이 재결합하는 데에도 인수 후배의 “팀장님, 냉장고에 물 있어요?”(209쪽)라는 말은 큰 기여를 한다.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변화하는 문화에 몸을 맞춘것”

이밖에도 서영이 병원 근처 공원을 산책하면서 확인하는 나무들의 나이(“향나무 60년, 느티나무 150년, 박태기나무 120년, 배롱나무 250년, 멀구슬나무 45년…”-58쪽)와 5천 년 된 암각화, 5억 3천만 년 된 동굴 같은 ‘큰 규모의 시간’ 이야기, 그리고 병원 앞 모텔에 머무는 두 주인공이 절망감과 배신감 속에서 배회하는 동안 서로 스치고 마주치며 일상을 공유하는 세목 등에 작가의 공력은 많이 쏟아부어졌다. 영화와 소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라 해도 양쪽의 접근 방식과 강조점이 다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이 작품이 시나리오를 근거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두 주인공이 배우자들의 불륜을 확인하고 처음에는 분노에 사로잡혔다가 서서히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고 결국은 그들 역시 ‘불륜’에 빠져들면서 배우자를 이해하게 된다는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이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내 소설이 무언가 무거운 주제의식에 눌려 있었던 데 비해, 이 작품은 그냥 단순한 사랑 이야기이고 사랑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는 점 때문에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덕분에 아주 잘 쓰여졌고, ‘김형경 소설’로서 내보이는 데에 자신감이 있다.”

어쨌든 ‘영화가 아무리 득세해도 서사의 근원은 역시 문학’이라는 식의, 문학계쪽에서 애써 품어 왔던 자부심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작가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문화란 자생력을 가진 독립 생명체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이번 일을 문화가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의 하나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다. 문화의 커다란 변화·발전에 맞추어 유연하게 대처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패러다임을 고수할 것인가의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나는 무슨 대단한 것을 고집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변화에 몸을 맞춘 것이다.”

소설 <외출>이 징후적인 까닭은 이 작품이 다른 데서도 아니고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되었다는 사실에도 있다. 한때는 수필과 동화, 번역소설조차 내지 않을 정도로 ‘문학적 염결성’을 과시하던 문학의 성채가 문학과지성사였다. 허진호 감독의 대학 동기로서 <외출> 출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김수영 문학과지성사 주간은 이렇게 말한다.

다음달 일본어판…‘한류’ 가세

 “이번 소설이 기존의 영화소설들과 구분되지 않는다면 문제겠지만, 작품이 좋다면 발상의 근거나 유래를 따지는 일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소설 <외출>은 골격을 시나리오에 기대고는 있지만, 영화와는 많이 다른, 독자적인 작품이다. 출판사 쪽에서도 여러 논의와 고민을 거쳐 출간을 결정한 만큼 문학적으로도 자신이 있다.”

 ‘욘사마’ 배용준의 일본 내 인기를 겨냥해 소설 <외출> 역시 다음달 중순쯤 일본어판이 나올 예정이다. 와니북스라는 출판사에서 초판을 무려 10만부 찍는다고 김 주간은 밝혔다. “이번 일은 소설과 영화의 관계에서만 볼 게 아니라, 한국 문학의 일본 진출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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