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경 장편 <외출>
|
‘외출’ 시나리오 소설화 영화·소설 발맞춰 ‘개봉’ ‘사랑으로 본성 말하기’ 김형경표 독자성 작품 관통 ‘문학의 성채’ 내준 문학과 지성사 “작품 좋다면 유래 따지는 건 불필요”
김형경(45)씨의 새 장편소설 <외출>(문학과지성사)은 징후적이다. 알려진 대로 이 소설은 허진호 감독의 영화 <외출>과 동일한 이야기 틀을 지니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시나리오가 먼저 완성되었고, 소설은 그 시나리오를 바탕 삼아 쓰여졌다. 작가가 시나리오를 건네받은 것은 지난 2월 말이었고, 소설을 탈고한 것은 7월 말이었다. 그 사이 허 감독은 영화 촬영을 진행했고, 작가는 중간중간 촬영된 필름을 참조했다. 영화는 다음달 8일 개봉 예정이다. 소설 <외출>이 징후적인 것은 우선 작가가 김형경씨라는 사실에서 말미암는다. 그동안 영화나 시나리오를 ‘원작’삼은 소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본격문학’ 작가가 ‘영화의 소설화’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작가는 이 소설이 단순한 ‘영화 소설’이 아니라 영화와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작품임을 강조한다. “기본적인 골격은 시나리오에서 가져왔지만, 영화에 없는 장면과 에피소드를 많이 첨가했다. 서술의 순서를 뒤바꾸기도 하고, 영화에서는 길게 묘사한 대목을 소설에서는 한 줄로 압축하거나 반대로 영화에서 서너 컷으로 처리된 장면에 소설에서는 한 장() 전체를 할애하기도 했다. 소설 <외출>이 영화와는 구분되는 별도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영화와 구분되는 소설 나름의 ‘언어’를 위해 고민한 흔적은 작품 곳곳에서 보인다. 우선 첫 장면부터가 다르다. 시나리오와 영화가, 주인공인 조명기사 인수(배용준)가 아내 수진(임상효)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무대 작업을 하다가 중단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반면, 소설은 인수가 병원에서 여주인공 서영(=영화에서는 손예진)의 모습을 처음 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인수가 서영을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긴 나무 의자 왼쪽 끝으로 치우쳐 앉아 있었다. 두 손을 맞잡은 채 상체를 한껏 구부린 자세였다.(…)그녀는 콘크리트나 진흙으로 만든 조형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직 콘크리트나 진흙이 제대로 마르지 않아 잘못 건드리면 많은 것이 망가질지도 모르는 모습 같았다.”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관계였음을 확인한 뒤 괴로워하던 인수가 술에 취한 채 서영의 모텔 방에 ‘침입’하는 장면은 시나리오에도 있지만, 서영의 방에서 잠에 떨어졌다가 깬 인수가 ‘냉장고에 물 있습니다’라는 서영의 메모를 발견하는 장면은 작가의 순전한 창안이다. 서영의 이 메모는 소설 속에서 여러 번 등장해 인수와 서영이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데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인수는 “그 문장을 읽을 때면 진짜로 시원한 물을 마시는 듯한 청량감이 들기도 했”(86쪽)으며, 나중에 서영이 인수의 방 테이블에서 자신이 쓴 메모를 발견했을 때 “그 메모지는 인수가 건넨 수천 마디의 말보다 더 강렬하게 서영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인수가 문득 사랑스러웠다.”(144쪽) 한바탕 강렬한 사랑을 나누고 헤어졌던 두 사람이 재결합하는 데에도 인수 후배의 “팀장님, 냉장고에 물 있어요?”(209쪽)라는 말은 큰 기여를 한다.
|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