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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30 17:10 수정 : 2005.08.30 17:19

일본 패전 직후 절망 속에 아타미 지역에서 칩거하고 있던 도쿠토미 소호.

정일성씨 ‘일본 군국주의의 괴벨스 도쿠토미 소호’

‘전후 총결산’을 내세웠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총리는 헌법개정을 통한 일본 재무장을 줄기차게 추구해왔으며 여전히 현실정치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원로정치인이다. 좀체 본심을 드러내진 않으나 일본 보수우익세력의 훈도 노릇도 하고 있는 그가 쓴 <일본의 총리학>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 1950년 무렵 도쿠토미 선생한테서 정치활동에 대단히 큰 영향을 받았다. 선생의 탁월한 역사관과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에 탄복했다. 당시 일본이 취해야 할 국가전략에 대해 ‘중국대륙에 손을 댈 떼는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대동아전쟁 모두 실패의 역사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일본은 당분간 아메리카(미국)와 손잡아야 한다. 다만 아메리카는 지혜가 없으므로 일본이 여러모로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해 주어 큰 참고가 됐다.”

일제 식민지배 일등공신
일 제국주의 신봉 선전가
A급 전범 기소당하기도
조선 지식인들 변절 기여
그를 알면 친일부역자들과
그 시대의 내면을 알 수 있다

‘론-야스’로 대표되는 돈독한 대미관계 속에 ‘일본열도 불침항모’론을 부르짖었던 나카소네가 큰 영향을 받았다며 ‘선생’으로 호칭하는 도쿠토미 소호(1863-1957)는 근대 일본제국주의 팽창정책의 열렬한 신봉자이며 중요한 이론가요 선전가였다.

춘원 이광수가 창씨개명을 한 직후 도쿠토미에게 보낸 친필 편지. 일제 황국신민화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쿠토미가 임진왜란(문록·경장의 역)과 대동아전쟁을 실패한 역사라고 한 것은 침략전쟁 자체에 대한 반성과는 전혀 무관한, 다 잡은 조선과 중국을 실책으로 그만 놓치고 말았다는 통한에 찬 얘기이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이라는 말은 다시 일어나 재도전할 때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경고와 같은 것이다.

일본 국민작가로 추앙받는 시바 료타로 등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그의 주장은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으로 대표되는 지금 일본 우익세력의 세계관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패전 뒤 A급 전범으로 지목당했으나 고령인 탓에 기소면제 처분을 받은 그가 남긴 <근세일본국민사> 100권 등 방대한 궤적들은 그가 왜 나치 독일의 국민계발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와 비견되는지 짐작케 한다. 그는 영어 네이션(nation)을 ‘고쿠민(국민)’이란 말로 번역해낸 인물이기도 하다.

1940년 2월12일 이 도쿠토미에게 춘원 이광수가 편지를 보냈다. “<도쿄니치니치신문>에서 자동차를 타고 <고쿠민신문> 앞을 지나갈 때 ‘내 자식이 되어다오’라는 선생의 말씀을 들은 지 5년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선생의 간곡한 부탁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문생은 외람되게도 텐노(천황) 이름의 독법을 본받아 가야마 미쓰로(향산광랑)라고 창씨개명하여 오늘 호적계에 신고하였습니다.”

이광수는 당시 일제가 조선 지식인들을 옭아넣기 위해 조작한 1937년의 ‘수양동우회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중병으로 출옥중 1심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검사 항소로 여전히 피고인 신세였다. 이광수가 말한 ‘5년 전’은 그가 <도쿄니치니치신문> 사옥으로 도쿠토미를 찾아간 1936년의 일로, 그때 도쿠토미는 말했다. “자네도 내 아들이 되어주게. 내 조선의 아들이 되어 주게. 일본과 조선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되네. 크게 되어 주게, 알겠나?”


“이광수 친일변절 뒤에 도쿠토미 있었다” 정일성씨 ‘일본 군국주의의 괴벨스 도쿠토미 소호’
지식산업사가 펴낸 <일본 군국주의의 괴벨스 도쿠토미 소호>(정일성 지음)는 일제 조선병탄과 식민지배의 일등공신이자, 이광수 등 숱한 조선 지식인들을 친일파로 변절케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일제 패전 뒤 일본 우익민족주의 재생의 토대를 닦았으나 지금은 거의 잊혀진 도쿠토미를 되살려 놓았다. 그를 알면 친일부역자들과 그 시대의 내면을 알 수 있다.

도쿠토미는 이광수의 석방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허영숙과의 애정 도피행각도 지원했다. 이광수와 그보다 29살이나 많은 도쿠토미의 인연은 일제강점 몇년 뒤인 1914년께부터 <매일신보> 연재 등을 매개로 시작됐다. 도쿠토미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인공 가쓰라 다로 총리의 정치고문이었으며, 일제 군부실세로 조선병탄조약에 서명한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의 정책고문이자 조선통치정책의 입안가 노릇도 했다. 그는 데라우치가 조선병탄 직후 서두른 조선 언론통폐합 및 총독부 기관지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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