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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1 15:33 수정 : 2005.09.01 15:33

지난해 4월 방한한 딕 체니 부동령이 서울 용산미군기지를 방문해 장병들에게 격려 연설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달8일은 미군이 주둔한 지 60년 되는 날
주한미군 주둔이냐 철수냐는 논란 속에서
주둔론은 안보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테러리즘, 중국을
21세기 주된 위협으로 상정하고
주한미군 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
한국은 뜻하지 않게 안보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포커스

2005년 9월8일은 주한미군이 한국 땅에 주둔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60년 전 인천항에 첫발을 디딘 주한미군을 해방군으로 봐야 할지, 점령군으로 봐야 할지는 한-미관계의 역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프리즘이기도 했다. 정서적 거부감을 뒤로하고 역사적 사실을 들여다보면, 당시 주한미군은 분명 점령군이었다. 당시 태평양 사령관이었던 맥아더는 ‘포고령 제1호’를 통해 미군의 성격을 한반도의 남쪽을 ‘점령’하고 모든 행정권을 장악해 군정을 실시하는 주체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이후 60년간 주한미군은 지독하리 만큼 역설적인 존재로 한국에 다가왔다. 미국이 1949년 6월29일 500명의 군사고문단만 남기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지 1년만에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한반도는 전화에 휩싸였다. 전쟁 발발 직후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소집해 개입을 선언했고, 주한미군은 다시 한국에 주둔하게 되었다. 당시 미군 공백이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사례는 ‘주한미군 철수=북한의 남침’이라는 등식을 가져왔고, 이는 맹목적 친미주의의 원천이기도 했다.

주한미군은 분명 점령군이었다

1945년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까지의 8년간, 미국은 그 의도와 관계없이 한반도 역사의 설계자나 다름없었다. 8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분단과 점령, 철수와 재개입, 현상타파(북진통일)와 현상유지(정전협정)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사이에 한국인들에게 미국은 일제를 패망시킨 해방자이자 한반도를 두 동강 낸 분단의 원흉,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아준 구원의 나라이자 무차별적인 인명살상을 저지른 학살자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었고, 주한미군은 이러한 미국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수십년 동안 주한미군은 해방자와 구원자라는 이미지만을 가지고 ‘냉전의 성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민중의 힘’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주한미군도 더 이상 ‘냉전의 성역’에서 머물 수만은 없게 되었다. 적어도 담론 수준에서는 주한미군에 대해 어떠한 얘기도 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주한미군을 둘러싼 담론의 가장 큰 한계는 주한미군 그 자체를 ‘목적’시 하는 경향이다. 이는 친미는 물론 반미진영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즉, 주한미군 주둔론자는 미군 주둔에 따른 ‘득’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미군철수시 야기될 수 있는 문제를 부풀림으로써 영구 주둔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반면에 미군철수론자는 주한미군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대화하면서, 미군철수시 야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을 둘러싼 담론을 한 단계 성숙시키고 바람직한 문제해결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을 ‘목적’이 아닌 ‘수단’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주둔이다, 철수다라는 식의 선험적인 결론에 앞서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이고,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주한미군을 비롯한 한미동맹을 어떻게 자리매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실 현재는 물론 미래의 주한미군을 생각하면, 선뜻 정답을 내리기가 힘들다.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 이상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딜레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가령 미군철수시 발생하는 군사력의 공백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막대한 국방비 증액을 감수하고서라도 군사력 공백을 메워야 할지, 아니면 군사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정부의 외교적 역량 강화와 시민사회의 신외교를 통해 군사력의 공백을 메워야 할지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병력 감축과 전력 증강을 동시에 꾀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변화에 대해 노무현 정부가 자주국방을 내세우면서 대폭적인 국방비 증액을 추진해오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군 철수가 대대적인 군비증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수단’의 관점서 봐야

남북관계가 좋아진 만큼, 미군 철수에 따른 군사적 공백을 메울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미군에 의존해온 한국군의 구조 자체가 대단히 기형적인 데다가, 한국의 안보문제는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에서도 발생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한미군 철수시 한-미관계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을 원하는 상태에서 한국 여론에 따라 강제적으로 철수될 경우 한-미관계가 결코 온전치 못할 것이라는 점 역시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한-미관계가 지고지순의 가치는 아니더라도, 미국과의 관계 훼손시 직면하게 될 여러 가지 문제들 역시 외면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주한미군 딜레마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한민족이 21세기 최고의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통일을 생각하면, 주한미군이라는 존재가 안겨줄 딜레마는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통일 코리아와 주한미군의 상관관계를 생각할 때, 핵심적인 딜레마는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유추할 수 있다. 즉, 미국이 대중국 봉쇄전략을 21세기 핵심적인 외교안보전략으로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이후의 한반도에 주한미군이 주둔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면, 중국은 한반도에서의 통일을 의미하는 현상 변경보다는 분단을 의미하는 현상 유지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미국이 통일이후에도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기를 원하는 상태에서 한반도 통일이후에 주한미군이 철수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면, 이번에는 미국이 한반도의 분단 유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는 주한미군과 관련해 가장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주한미군 문제는 쉽게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성격을 안고 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도 더 이상 늦출 수도 없다. 특히 미국은 중장기적인 전략하에 주한미군을 어떻게 유지·강화할지에 대한 세밀한 검토에 들어간 상황에서, 우리가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해법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한반도 역시 미국의 밑그림 아래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위력적인 단어는 역시 ‘안보’다. 미군 주둔에 따라 많은 문제점이 있더라도 안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논리가 지금까지도 맹위를 떨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혹시 주한미군이 우리에게 감당하기 힘든 안보 딜레마를 안겨주지는 않을까?

이는 기우도 아니고, 미군 철수를 주장하기 위해 억지로 꾸며낸 것도 아니다. 실제로 미국이 말하는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는 방향으로 한미동맹이 재편되면, 한국은 감당하기 힘든 안보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이나 인권 문제의 해결을 명분으로 군사적인 조처를 취하면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북-미간의 군사적 긴장이나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위협 만들지 말아야

또한 이라크 파병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테러 위협이 점증하고 있는 것이 보여주듯, 한미동맹이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나설수록 한국 역시 테러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즈음해 한국이 미국, 영국과 같은 1등급의 테러위협 국가로 분류된 것이나 이슬람 무장조직 알카에다가 주요 공격 대상에 한국을 포함시킨 것은 이러한 우려가 지나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이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초기지가 될 경우, 한국은 중국의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한국이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초기지화한다는 것은 한국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제에 편입되고 미국에게 기지 사용권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미국은 오산·평택 등 한국의 서남부에 군사력을 집중시키면서 ‘MD 벨트’를 만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요체이기도 하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이처럼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국제테러리즘, 중국 등을 21세기의 주된 위협으로 상정하고 동맹관계 및 주한미군 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한국은 사실상 이러한 구상에 편입되고 있다. 이는 한국이 뜻하지 않는 안보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보전략에 있어서 가장 지혜로운 방법, 특히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처하고 있고,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요구되는 지혜는 불필요한 위협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미동맹이 ‘위협 대응형’에서 ‘위협 초래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되물어봐야 한다. 이는 안보를 위해서는 다른 가치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한미군 주둔론의 근본 전제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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