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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1 16:00 수정 : 2005.09.01 16:00

역사로 보는 한주

1951년 9월8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등 연합국 49개국과 일본국간에 전쟁상태를 종결시키기 위한 평화조약(샌프란시스코 조약,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또는 강화조약이라고도 함)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하우스에서 체결됐다. 또 이날 일본 전권단대표 가운데 수석 전권이었던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단독으로 미국 대표와 따로 만나 ‘일본국과 미국 2간의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조약’(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그 뒤 비준절차를 거쳐 1952년 4월28일부터 발효됐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태평양전쟁은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포츠담선언 수락 표명이나 같은해 9월2일의 미주리호 함상의 항복문서 서명 이후에도 전쟁상태가 계속되다가 52년 4월28일에야 끝났다고 할 수 있다. 형식상 이 조약에 따라 일본은 ‘조선’에 대한 권한을 포기하고 독립을 승인했으며, 재일조선인들은 일본국적을 잃게 됐다.

조약 체결을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는, 미국 영국이 51년 7월20일 공동으로 일본 등 50개국을 초청했으며, 그해 8월22일 프랑스쪽 요구에 따라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3국에게도 초청장이 발송됐다. 이들 나라 중 인도, 버마(미얀마), 유고슬라비아는 초청에 응하지 않았으며, 소련과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3국은 조약내용에 반대해 서명하지 않았다.

한국도 조약 초안에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표기돼 있었으나 일본의 강경한 반대로 나중에 미국이 빼버렸다. 그리하여 의병운동과 3·1운동, 상해 임시정부, 중국쪽 항일전투부대 참가를 비롯한 중국 및 한-중 국경지역 항일무장투쟁 등 끝없이 피의 항쟁을 벌여온 한국은 제외돼 어이없게도 연합국 미군의 피점령지가 됐고, 별 관련도 없는 도미니카공화국,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이란, 이라크, 과테말라,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아이티,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연합국의 일원이 됐다. 오늘날의 뒤틀린 한-일관계의 또 다른 출발점이었다. 미, 일 대표가 같은 날 장소를 옮겨 따로 체결한 양국 안보조약은 60년에 개정돼 냉전의 한 축이 됐으며, 96년 이후 재해석과 관련법률 제정 등을 거치면서 중국을 겨냥한 군사동맹 성격을 축으로 적용범위를 동아시아 및 전세계 차원으로 확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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