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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1 16:23 수정 : 2005.09.01 16:23

규방철학
도나티앙 사드 지음. 이충훈 옮김. 도서출판 비(b) 펴냄. 1만4000원

잠깐독서

출판계에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규방철학>이 완역돼 나왔다. ‘새디즘’ ‘새디스트’ 등의 개념에 자신을 불멸의 존재로 아로새긴 사드가 지은이다.

사드에게 드리워진 ‘악명’의 실체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 사상의(혹은 퇴폐의) 절정이라는 <소돔 120일>(고도)이 지난 2000년 출간됐지만 곧바로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미성년자 독서 불가’의 딱지를 받았고, 오래지 않아 아예 절판됐다. 이 책의 번역자는 출판사 쪽에 자신의 이름을 책에 남길 것을 거부했다고 전해진다.

앞서 91년에는 이번에 나온 <규방철학>의 원전이 <안방철학>(새터)이란 제목으로 번역출간됐다. 이 또한 지금은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데, 그나마도 결말 부분을 ‘생략한’ 번역본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규방철학>에서 온전히 살아난 그 마지막 대목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여튼 이 <규방철학>은 적어도 당분간은 국내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사드 저술의 유일한 한국어 번역본이다. 게다가 18세기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프랑스 파리대학 박사과정의 전문 연구자가 공들여 번역했다. 여러 개념 및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 각주를 달아 이 저술을 ‘인문학적 텍스트’로 부활시켰다.

책의 줄기는 크게 두가지다. 어느 별장의 은밀한 공간에서 많게는 다섯 명까지 한데 엉키는 성의 향연이 첫번째다. 그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다소 뜬금없는) 정치 팜플렛이 두번째다. ‘규방’의 향연과 저항의 ‘철학’,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사드에 대한 평가가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 사내의 입을 빌어 사드는 일체의 권위와 관습에 맞서는 혁명의 토대로서의 ‘자연’을 역설하고 있다. “자유인은 결코 신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은 숙연하기까지 한데, 여성학대와 가학, 심지어 살인까지 옹호하는 부분에 이르러 독자들은 사드의 ‘악명’을 실감하게 된다.

너무도 적나라한 성 묘사는 200여년이 흐른 오늘에도 읽는 이를 긴장시키고, 파국에 가까운 마지막은 끝내 독자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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