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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1 16:26 수정 : 2005.09.02 15:03

역사적 파시즘,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
권명아 지음. 책세상 펴냄. 2만5000원

‘대동아공영’ ‘태평양성전’ 구호 아래 여성은 남편과 자식 공출 ‘총후부인’으로 남성은 천황 위해 몸 바칠 애국전사로… ‘제국의 중심’ 미끼로 교묘한 편가르기 주어진 상황 열심히 산 게 체제유지 도운 건 아닌가

일제 말기, 1930~1945년을 우리는 암흑기라 불렀다. 전쟁에 미쳐 날뛰는 일본은 전 사회를 전쟁국면으로 몰아쳤고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였다. 일본 제국주의는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 파시즘과 조금씩 편차를 보일 터이나 그냥 파시즘이라 통칭할 수 있겠다.

<역사적 파시즘>(권명아 지음, 책세상 펴냄)은 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을 다뤘다. 유행처럼 당시의 신문기사, 광고문, 잡지 등을 소재로 하였으나 지은이의 눈길이 멎은 곳은 상당히 다르다. 기존의 책들이 파시즘 체제를 작동시키는 주체와 객체로서 남성에 주목하고 여성쪽은 기껏해야 위안부 문제에 머무는 것과는 달리 여성한테도 파시즘 체제를 유지 강화하는 역할이 강제되었다는 것. 그래서 부제가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다.

태평양전쟁에서 조선은 후방에 속했다. 전쟁 막바지 웬만한 남자들은 모두 징병, 징용된 식민지 조선에서는 여성 곧 가정이 관리대상으로 떠올랐다. 가정이 전시 동원체제의 정치단위로 재구성된 것. 이는 천황제 파시즘의 가족국가주의적 특성에 기인한다.

일본여성(혹은 가정)은 ‘전사’를 낳고 기르는 노릇에 무게가 놓였다면 조선여성은 징발에 반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총후부인’의 역할이 주어졌다. ‘군국의 어머니-독자를 격려하여 지원, 채소상으로 일가 생활’(1940년 10월28일치 <매일신보>) 류의 신문기사가 무수하게 생산됐다. 대개의 내용은, 주인공 여성의 남편과 아들이 불리한 상황에서 영웅적으로 싸우다 죽는다, 그러나 ‘군국의 어머니’는 의연하게 가족의 생계와 가문을 이어간다는 것. 일제는 이를 여성의 권리신장으로 호도했다. ‘안해의 결심’(김상덕 지음) 등 소설을 통한 역할 고취도 잇따랐다.

이에 반해 가정 밖의 신여성은 사회체를 오염시킬 염려가 있는 퇴폐와 몰락의 상징으로 포장되었다. 나혜석, 윤심덕 등이 죽거나 미친 것은 이런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안성마춤이었다. 신여성 가운데 비난을 면한 사람은 최승희 한 명뿐이다. 스스로 누이이자 아내로서 규정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어머니들은 남편 또는 자식을 일제의 병사 또는 노무자로 빼앗겼다. 그러나 이들은 ‘총후부인’ 또는 ‘군국의 어머니’란 허울로, 눈물을 보이기는 커녕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신여성은 퇴폐·몰락의 상징


개인주의적 신여성에 대한 단죄는 여자 스파이 담론으로 나타났다. ‘스커트 밑에 총을 감춘 여 스파이’ 또는 ‘그대 곁에 스파이가 있다’는 식이다. 신여성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기고, 일반인의 흥미거리로도 작용하였다. 이 담론은 외부세력이 밀려옴으로써 사회의 경계가 문란해지고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반영된 것으로 본다. 조선의 경우 중국·소련인과 연계된 인종화·젠더화한 형태로 드러났다. 지역적, 계급적 차이, 엘리트여성과 비엘리트여성 사이의 위계의식을 부추기는 면이 있다. 이는 일본지식인 여성과 한국의 지식인 여성사이에서도 마찬가지.

여성에게 부여된 위상이 ‘총후부인’이라면 남성한테는 ‘청년’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청년일본, 청년조선, 신체제론이나 전시동원 체제와 관련되는 이 담론은 황민화 문제와 직결되는데, 기존 엘리트 계급에 대한 평가절하 작업을 수반한다. 따라서 조선에서의 황민화는 일본인으로의 변화일 뿐 아니라 새로운 권력집단을 창출하는, 식민지 내부에서의 헤게모니 재배치의 과정이기도 하다. ‘모던 보이’로 지칭되는 지식인 엘리트의 삶을 퇴폐, 허영, 비생산적인 삶의 전형으로 규정하고 생산, 방첩, 실리에 입각한 새로운 청년상을 만들어냈다. 청년담론은 전선의 안팎의 경계와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를 설정한다. 최전선의 청년이 신일본의 이상을 갖고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정예부대로서 ‘국민’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반면 전선 바깥의 존재들은 식민지 토인이나 기생충 집단, 저급한 인종으로서 ‘비국민’으로 분류된다.

“식민지 토인의 비열한 근성을 벗어 팽개치고 대사일번(大死一蕃)하여 폐하의 적자로서 새로 태어나고자 크게 분발해 주십시오.”(향산광랑, <동포에 고함> 박문서관, 1942) 춘원 등이 나팔수로 나섰다.

1938년을 전후하여 남방담론이 급증한다. 가장 흔한 방식은 ‘무진장의 고장’. 미지의 땅으로서 자원이 무궁하며 일확천금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표상된다. 남방 정복은 ‘대륙의 아들과 대양의 아들의 혼혈’, ‘아시아에 대한 동양의 권리회복’으로 기술된다.

‘저 남반구의 여왕 오스트레일리아도/그 곁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뉴우질랜드도/거기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하와이도/그곳은 모두 아시아 대륙의 자녀들이다.’(이광수, ‘전망’ 1943년 1월) 남방정복과 대동아공영권의 확대를 가족국가주의적 관점에서 재현한 시다. 남방담론 역시 대동아 성전과 학병권유라는 맥락에서 생산되었다.

아시아국은 여성의 이미지로 표상된 바, 젠더화한 식민주의의 시선은 인종주의적 시선을 동반하고 있다. 이러한 담론들이 겉보기에는 제국의 시선과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제국의 중심 위치를 차지하려는 욕망이 공존하는 것으로 본다. 도달할 수 없는 제국의 중심에 대한 욕망과 식민지 주체의 불안을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것.

경쟁체제 자본주의와 연관

남방은 조선의 위치와 정체성의 문제로 실감되었으며 불안과 열망으로 얼룩진 정체성에 대한 위기감이 남방을 정글 탐험의 종족지로 재현하는 내적요인을 이룬다. 그렇게 생산된 남방담론은 종족지와 시 등을 통해 남방을 원주민, 야만인, 야자수 그늘 아래의 깜둥이로 이미지화한다. 결국 제국 판타지, 인종적 시선, 자신의 위치에 대한 불안감은 식민지 조선인을 체제에 길들이는 기제였다.

지은이는 그동안의 파시즘 연구가 집단주의의 일환으로만 논의되었다면서 파시즘이 경쟁체제, 증오심, 박탈된 자의 원한 같은 자본주의의 면모와 관련된다고 본다. 구제금융 이후 한국사회의 증오범죄의 증가는 파시즘화의 한 단면이다. 지은이는 파시즘 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 폭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며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았느냐가 문제라고 본다. 주어진 상황에서 그냥 열심히 사는 것이 혹 파시즘 체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것은 아닌가. 피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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