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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사라진 것들
프란츠 M. 부케티츠 지음. 두행숙 옮김. 들녘 펴냄. 9000원 |
인간의 무한증식이 초래한 생물종의 급속한 소멸은 여섯번째 대멸종이라 부를 만큼 무시무시한 속도로 진행중이다 인류의 이런 이기적 본성, 특히 유럽문명은 다른 문명들에도 재앙 가져와 종족, 민족, 언어의 다양성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근래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이 농작물을 파헤치고 훼손해 농민들을 울리고 있다는 소식이 종종 보도됐다. 지리산에 방사한 북한산 곰들 가운데 한마리도 농작물 훼손을 막으려던 농민이 설치한 올무에 희생됐다는 뉴스도 있었다. 보도들은 대체로 농민들에게 동정을 표시하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쪽으로 목청을 높였다. 대책으로는 흔히 사냥 규제 완화를 들먹였다.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친 농민들을 동정하고 대책을 세우는 건 당연하지만, 따지고 보면 피해는 예고된 것이었고 사냥 규제 완화는 악수 중의 악수요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야생동물의 농작물 훼손 사태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 환경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야생동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생긴 일이라기보다는 최근 일부 증가한 그들의 서식공간을 인간이 야금야금 개발해 들어가 잠식한 결과다. 말하자면 그들이 살아갈 공간과 먹거리를 인간이 끝없이 빼앗아온 결과로 보는 게 오히려 상식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 150여년새 6배 늘어나 제대로 말하면 끝없는 영역확장으로 손해를 보고 생존위기에 처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야생동물들이다. 해결책은 야생동물 씨앗을 아주 말리기로 작정하지 않은 다음에야 갈데없는 그들의 서식공간을 적절하게 보호해주고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훼손을 막아, 그로 말미암아 농지를 잃게 되는 등의 피해를 보는 농민에게는 따로 보상해주면서 대안을 모색하게 하는 식의 대책을 세우는 일일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현생인류)는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증가하고 있다. 1850년까지만 해도 지구상의 인구는 10억 남짓했으나 1950년에는 20억으로 불과 1세기 만에 2배로 늘었고, 20년 만인 1970년에는 40억으로 늘었으며, 지금은 다시 60억을 넘어섰다. <우리 안의 원숭이> 등의 저서로 알려진 프란츠 부케티츠 빈 공과대 교수는 2003년 작 <멸종 사라진 것들>에서 이런 인류의 폭증이 초래한 지구환경의 파괴와 약탈, 이로 인한 생물종의 급속한 소멸을 지구 생물역사상 여섯번째의 대멸종으로 본다. 지난 5억년간 선캄브리아기와 고생대, 중생대, 그리고 공룡이 사라진 6500만년 전의 신생대 등 다섯 시기에 주요 동식물들이 비교적 단기간에 대량 멸종한 사실이 화석과 지질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부케티츠는 지금 진행중인 생물종 소멸은 운석의 충돌이 야기한 것으로 보이는 신생대 공룡 소멸 때의 대멸종보다 그 속도가 훨씬 더 빠른 것으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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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에 처한 팬더.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인간의 서식지 파괴로 절멸 위기에 처한 그들을 그나마 완전멸종에서 구해낼 수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만든 동물원이라는 울타리일지도 모른다. 들녘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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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지능의 발달로 이루어진 기술은 그 어떤 생물도 따라갈 수가 없다. 불도저, 회전톱, 그리고 자동화기 따위에 저항할 수 있는 식물은 물론 그 어떤 동물도 없다. 그러는 사이에 인간은 수백만년 동안 지속되어온 역사, 수백만 년에 걸쳐서 생성되어온 고유한 생물체의 형태들을 파괴하고 있다.” 제6의 대멸종은 달리 말하면 인간의 무제한적이고 효율적인 타생물종 약탈과 자기 무한증식이다. 저자는 한때 찬란한 거석문화를 이룩했던 이스트섬 문명이 삼림 등 섬의 자연자원을 소진한 뒤 자멸한 것처럼, 지금과 같은 무제한·무분별한 인류의 증식이 결국 지구자원 소진 뒤 인류 자신의 절멸로 귀결될 것이라 우려한다. 다양성 확보기 대멸종 막는 길 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종에 대한 인류의 이런 자기중심적·이기적 본성은 인류 내부의 민족들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우리 내면에는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이나 부족 또는 민족, 자신의 문화전통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려는 경향이 깊이 뿌리박고 있다. 반면, 어떤 민족이나 자기들에게 낯선 것들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는다.”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마야·잉카, 오스트레일리아 아보리진, 아프리카 피그미, 시베리아 원주민, 이누이트(에스키모), 일본 아이누 등의 문명은 같은 인류내의 다른 종족, 다른 민족, 다른 문명들에 의해 소멸했거나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 민족의 소멸과 함께 수천 수만의 토속 언어들도 사라지고 있다. 생물종의 다양성 뿐만 아니라 인류내 문화·문명의 다양성도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현세의 이 무자비한 생물 및 문명 파괴·대멸종의 책임에서 모든 인종들이 자유로울 순 없으나 그 핵심 담당자는 신무기를 지니고 타민족 타생물종에 대한 약탈과 살륙을 일삼으면서 자신들의 가치와 종교 문화 생활양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온 유럽과 유럽문명이다. 부케티츠는 말한다. “이제 우리(서구) 문화에 남은 것은, 수많은 유기체의 종들과 다른 문화가 사멸한 데 대한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인식하는 일이다.” 인류의 성공은 다른 생물들에겐 재앙이었으며, 유럽의 성공은 다른 민족과 문명에게 재앙이었다. 그는 문명간, 민족간 우열은 존재하지 않으며, 타자를 멸시하거나 소멸시킬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다양성의 확보야 말로 인류 자신까지를 포함한 생물종의 급속한 대멸종을 막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주요국들이 미친듯이 쏟아붓고 있는 엄청난 군사비나 부도덕한 투기자본의 극히 일부만이라도 이를 위해 왜 투자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저자의 지적대로 “(이제까지의 책들에서) 부족한 점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멸에 대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전체적으로 고찰하고 여러 사례를 풍부하게 담은 책이 없다는 사실”이었는데, <멸종 사라진 것들>은 그 점을 잘 보완하고 있다. 큰 주제지만 쉽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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