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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모심과 살림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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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면부지 제주도에서 이십여년간 삶을 불태우고 쉰도 되기 전에 죽은 사진가 김영갑 뿌옇게 밝아오는 창밖 보며 이렇게 살아도 좋은가 반성과 탄식에 가슴쳤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그가 제주도로 간 1982년, 그 무렵 서울은 어땠나? 그냥 서울에서 살았다면 그의 삶은 어땠을까. 글 쓴 사람의 삶이 드러나 있는 산문집을 읽다보면 감정이 이입되는 순간이 있다 .사진가 김영갑. 그는 몇 달 전에 이미 죽었다. 죽기 얼마 전에야 비로소 그의 삶이 언론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탄식처럼, 필름과 인화지를 살 수 없는 가난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그의 몸은 병 때문에 근육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세상일이란 이런 것인가? 나는 책을 읽으며 절망감으로 되뇌었다. 제주도가 고향인 한 친구가 올 봄에 선물로 준 책을 몇 달 묵혀두다 지난 여름에 읽었다. 김영갑씨가 이미 두어 달 전에 죽고 난 뒤였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출근 준비에 바쁘던 아침에 라디오뉴스에서 들었나? 아니면 사무실 모니터 속을 스쳐지나간 자막 뉴스일 수도 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책을 제대로 읽기도 전이라 나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 뒤로도 두어 달이 지난 후, 잠자리에서 수면제 삼아 팔 베게를 하고 한손으로 치켜든 채 그의 책을 건성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불에 데기라도 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부윰하게 밝아오는 창밖을 보며 이렇게 살아도 좋은가, 반성과 탄식에 가슴을 쳤다. 습관처럼 그랬다. 그 책을 시큰둥하게 대했던 것은 김영갑이 도시를 떠난 ‘선각자’ 중 한 사람일 뿐이리라 예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란 말이지?’ 책날개에 붙어있는 그의 사진이나 단 몇 줄로 요약된 그의 삶을 읽고는 마치 그를 이해한 것처럼 굴었다. 누군들 서울살이가 좋아서 이러고 있겠는가. 당장 따라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외면하자. 남들이 그렇듯 일상사로 분주한 것이 제대로 사는 일이라고 믿고 싶은 나는 그랬다. 도시를 떠난 사람들은 그럴만한 조건이 되니까 그러는 것이다. 이런 자기연민과 합리화가 내게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어땠나. <월든>의 소로우가, 여행경비를 벌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람에게 지금 당장 그곳을 향해 걸어서 떠나는 게 훨씬 빠를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제주도를 찍고 싶어 했고 그렇게 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생면부지 제주도에서 이십여 년 동안 모든 것을 완전 연소시키고 쉰도 되기 전인 지난 5월에 죽었다. 그의 글에는 허기를 참지 못하고 주인집 밥통을 뒤지다 들켰다는 고백도 있다. 세 들어 살던 곳은 번듯한 방도 아니었다. 부엌 한쪽 구석을 합판으로 막고 침실 겸 암실로 쓰거나 중산간지대 초원에 버려진 버섯재배사의 한 귀퉁이에 전기나 수도도 없이 몇 년을 살았다. 말에게 먹이로 던져준 당근을 주워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버스가 끊기면 택시비를 구걸해서라도 잠은 꼭 방에 돌아와 잤다고 했다. 사진 때문이었다. 책에는 파노라마로 찍은 그의 사진들이 여러 장 실려 있다. 특이했다. 그냥 아름다운 풍경만은 아니었다. 그의 사진을 더 많이 보고 싶어서 여름휴가 때 제주도에 갔다. 그가 예전 섬사람들처럼 뭍 나들이에 뱃길을 고집했듯 나도 녹동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갔다. 표선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은 폐교터에 그의 갤러리가 남아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가 사진을 보고 그곳을 나서며 ‘이 아저씨 사진은 쓸쓸하다’고 했다. 외로움은 인화지를 벗어나 보는 사람의 눈과 가슴을 물리적으로 자극하는 것 같다. 내면의 요구에 따라 자유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외로움은 필연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였을 것이다. 사진은 기계가 찍는 것이라 운 좋게 그럴듯한 풍경을 만나면 누구나 좋은 그림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무식한 생각도 완전히 무너졌다. 우리를 스쳐가는 격동의 시간들 중에 목숨까지 걸고서라도 몰입했던 순간이 과연 몇 장면이나 될까. 외부의 의지에 떠밀려가는 스스로의 삶이 어쩐지 초점이 나간 사진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부쩍 많아졌다.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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