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1 17:41
수정 : 2005.09.0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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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숲의 연대기
데이비드 스즈키·웨인 그레이디 지음. 이한중 옮김. 김영사 펴냄. 9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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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협력과 나눔의 공간이다. 숱한 동·식물과 미생물들이 그 속에서 저마다 생존경쟁을 벌이면서도 서로 소통하고 부비고 기대며 살아간다. 숲의 공간은 연대의 삶터이며 숲의 소리는 생명의 합창이다. 이런 자연주의자의 눈으로 바라보자면, 한 자리에 뿌리를 박고 수백년을 묵묵히 사는 나무는 숲의 연대와 합창을 그 세월 동안 묵묵히 지켜보며 간직한 연대의 기록 자체일 터이다.
캐나다의 동물·유전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데이비드 스즈키와 작가 웨인 그레이드가 함께 지은 <나무와 숲의 연대기>(김영사 펴냄)는 북미 서해안 일대에서 자라는 소나무과 식물인 ‘더글라스-퍼’ 나무의 일생을 담은 책이다. 스즈키의 오두막 집 근처 오솔길 주변에 사는 50m 키에 수령 400년의 더글러스-퍼 나무 한 그루가 이 책의 주인공인 셈이다.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에 생을 시작”해 우리가 매단 그물침대와 그네의 무게를 견뎌왔고 그늘을 내주었고 다람쥐를 먹여 살렸고, 독수리와 큰까마귀의 집이 돼 주었으면서도, 늘 우리의 관심 밖에 있던 이 나무의 일생을 ‘숲 속 과학’의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나무의 탄생과 뿌리 내리기, 성장, 성숙 그리고 죽음의 다섯 장으로 이뤄진 책은, 산불로 황폐화한 잿더미에서 생명의 씨앗이 움터 진균류와 공생관계를 이루며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할 때 한창 자라기 시작해 300년 동안 한 곳에 서서 바람에 씨앗을 날려 종을 번식하고 숲 속 다람쥐들에 먹이를 나눠주며 점차 성숙한다. 나무는 수십 년에 한번씩 벌이는 새들의 주도권 다툼을 지켜보며 그 때마다 살 곳을 제공하고 140여종 곤충들의 아파트 구실을 하며 지의류·양치류·진균류 식물들의 삶을 독려한다. 노령기에 접어든 나무는 여전히 너그러운 숲의 삶터로 남아있다가 수령 700년에 마침내 쓰러진 뒤에도 숲의 생명과 어우러지며 서서히 숲으로 되돌아간다.
지은이들이 나무의 일생을 재구성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나무의 곁가지처럼 이야기는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 찰스 다윈이 어떻게 동식물을 연구했는지를 살피기도 하고, 땅 속에서 벌어지는 미생물과 뿌리의 미시계를 들여다보며, 디엔에이, 유전자, 세포와 광합성 작용 등을 아우르는 생물학의 여러 지식을 불러내기도 한다. 책에 실린 화가 로버트 베이트먼이 그린 여러 세밀화들은 정감 어린 자연주의를 드러내며 그 자체로도 감상할 만한 좋은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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