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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의 낭비자들: 의회는 어떻게 미국안보를 망치는가
윈슬로 휠러 지음. 미국 해군연구소 출판부 펴냄. 2004년 10월 |
군사박물관·군주차장 지어 지역구 챙기고 체육관등 국방시설 추진해 보좌관들 챙기고…
바깥세상 책읽기 윈슬로 휠러는 미 의회의 국방 입법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이 분야 전문가다. 그는 워싱턴의 감시 시스템이 고장났고, 더이상 정책결정과 진행과정이 의미있는 감시의 눈길 아래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 중 하나다. 그는 <국방의 낭비자들>에서, 미 국방예산의 상당 부분이 미국을 방어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지 못할 뿐 아니라, 진정으로 중요한 방위사업들이 어떻게 무시되는지를 수많은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국방 본래의 목적에 부응하지 않고, 오히려 발의한 의원들에게 정치적 이익을 안겨주는 ‘이권사업’에 대해 휠러는 이렇게 말한다. “한때 부수적 일이었던 (이권 챙기기) 업무들이 지금은 의원들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일이 가져다 주는 이익은 대다수 의원과 보좌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덜한데도 그렇다.” 휠러는 상원의원 보좌관으로, 또 의회 산하 감사원의 감사요원으로 31년 동안 일했다. 국방 관련 입법과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그는, 상원 예산위원회 공화당 국방전문위원이던 2002년 ‘스파르타쿠스’란 필명으로 의회 입법과정을 비판하는 글들을 썼다. 그는 그 무렵 쓴 글에서 “2001년 9·11 동시다발테러 직후 상원의원들이 안보 예산을 대폭 증액하면서 자신의 지역구를 위해 40억달러나 되는 돈을 쓸데없는 사업들에 쏟아부었다”고 통탄했다. 한 예로, 로버트 비어드 상원의원은 그의 지역구인 웨스트버지니아에 군사박물관 건립을 요청했다. 테드 스티븐스 상원의원은 알래스카에 군용주차장 건립을 요구했다. 이런 사업들을 하느라 군사교육과 무기유지 비용에서 24억달러가 빠져나갔다고 그는 지적했다. 필자가 휠러임이 드러나자 상원은 그를 해고했다. 상원의원들이 국가위기의 순간에 이권이 섞인 많은 국방법안들을 통과시킨 건 까닭이 있다. 어장이나 체육관, 보육센터 등 수많은 국방 보조시설들에 국방예산을 투입하면 많은 의회 보좌관들에겐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를 위해서, 또 재정적 후원자들을 위해서 각종 개발계획들을 (법안에) 포함시키려 애를 쓴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엔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 국방예산이 의원들의 재선 캠페인을 위한 먹잇감이 되는데도 이를 견제하는 목소리를 찾기는 어렵다. 휠러는 단지 의원 지위 남용 사례를 들춰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국방예산 시스템 자체의 근본적 개편을 주장한다. 1980년대 국방예산에서 이권이 개입된 건수가 기껏해야 200~300건에 불과했다면, 요즘은 수천건에 이른다고 그는 주장한다. 행정부와 의회의 견제와 균형은 사라졌다. 요즘 상원의원들은 국방부의 장군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고, 이런 관계를 훼손하는 어떤 결정도 피하려 한다. 휠러는 1994년 이라크에서 F-15E 전투기가 미군 헬기를 적기로 오인해 격추한 사건을 대표적 사례로 든다. 이 사고로 26명이 숨졌다. 그러나 공군은 기기 자체의 심각한 결함은 덮어둔 채 헬기 격추의 책임을 조종사들에게 돌렸다. 테드 스티븐스 상원의원은 공군을 곤란하게 하지 않기 위해,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건 관련 청문회를 조기 종결해 버렸다.이런 문제점을 고치려는 움직임도 용두사미로 끝나기 일쑤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예산낭비를 더이상 두고볼 수 없다. 그건 미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다”라고 맹비난했으나 언론의 관심이 사그라들자 잘못된 법안을 고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예산낭비를 막기 위한 개선이 뭔가 이뤄졌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뤄진 것은 없다. 휠러는 1차 걸프전이 첨단무기의 승리라는 평가도 심각한 오류라고 지적한다. 의회 산하 감사원(휠러 자신도 이곳에서 일했다)이 말하는 ‘전쟁무기의 혁명’은 신화일 뿐이다. 많은 경우, 첨단무기의 기술과 실제운용 결과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관련 청문회에 참석한 대다수 상원의원들은 단 하나의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31년간의 의회 경험을 통해, 휠러는 매일매일의 입법과정과 국방 쟁점의 정치화를 매우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휠러의 책에도 약점은 있다. 정부나 의회의 비효율성이 미국 시민사회의 쇠퇴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걸 그는 지적하지 못한다. 정부재정의 무분별한 운용의 밑바닥엔 기업 이해관계가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거기까지 나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의회와 행정부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보기드문 경험을 제공해준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 펜실베이니아대학 동아시아연구센터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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