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9.01 18:58 수정 : 2005.09.01 18:58

최성각/소설가, 풀꽃평화연구소장

불소가 충치 예방한다지만 각종 골질환, IQ저하 등 위험성도 만만치 않다는데 백성들 구강 건강 위한다며 수돗물에 강제투입하려는 정부의 심보를 모르겠다

녹색 에세이/ 달려라 냇물아

‘풀꽃평화목소리’는 필자가 일하는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주간 웹진의 이름이다. 지난 주에는 ‘불소가 든 콩나물국, 싫다’라는 제목으로 불소 이야기를 꺼냈다. 이상하게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렇군요. 나도 사실 불소는 먹기 싫어요”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무반응이일까,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골치 아프고 왠지 전문적인 냄새가 나는 논쟁에는 지레 손사래를 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입장 표명을 하기에는 내용을 자세히 모르고, 한편 ‘훌륭한 전문가들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 해결하겠는가, 하는 주눅 든 의존심리도 작용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오래 전부터 정부에서 수돗물에 불소를 넣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산업폐기물인 불소가 매우 고약한 독성물질이라는 것은 머리로나 정서적으로 느끼곤 있었지만, 어리석은 백성의 마음으로 ‘지고지순한 나라에서 백성들이 마시는 수돗물에 불소를 넣는다 한들 설마 죽을 만큼 넣을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해왔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게 지레 불소문제와 거리를 둔 데에는 12년 전 필자가 어쩌다 상계동소각장 문제에 깊이 빠져 수년간 피투성이로 싸울 때, 자나깨나 다이옥신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던 악몽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이옥신 공포에 빠졌던 필자를 당시 주변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의 서역소설을 보면, 오랑캐를 치러 변방에 나갔다 수십 년만에 돌아온 장수의 얼굴에서 성(城)안 사람들은 바로 오랑캐의 얼굴을 느끼더라는 대목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 즈음 필자를 만나면 다이옥신을 만나는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 고약한 상처 때문에 나는 남몰래 중얼거렸다. “누가 뭐라 해도 불소문제에는 안 빠질 거야. 이 문제는 명석하고 윤리적으로 고결한 분들이 싸울 일이고, 지금 잘 하고 계시잖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필자는 어느 날 집에 거의 다 왔길래 갑갑하던 안전띠를 풀었다가 모퉁이에 잠복해 있던 교통경찰에게 딱지를 떼인 적이 있었다. 기분 참, ‘드럽게’ 나빴다. 국가가 무엇이관대, 국가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면 내 목숨을 위해 벌금까지 뜯어가며 이토록 극성을 피울까, 싶었다. 정말 국가는 내 안전을 나나 내 마누라보다 더 걱정하고, 그 우려 때문에 돈을 뜯어갈 정도로 사랑할까? 단연코 ‘아니다’라는 답이 나왔다. 국가의 지나친 친절 때문에 속이 상해 거의 떼굴떼굴 구르고 싶어졌다.

우리 경우, 20년 이상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수돗물불소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는 ‘어린이들의 충치예방’을 위해 수돗물 불소화를 확대하려 하고 있고, 청주 과천 포항 등 일부 도시의 시민들은 “내가 먹는 수돗물에 불소를 넣느냐 마느냐, 그건 우리가 알아서 결정하겠다”고 맞서 불소화를 사양하고 있다. 예산을 마련해 놓았건만 쓰지 않으려는 지자체가 늘어날까봐 정부가 노심초사하던 중, 얼마 전에는 몇 국회의원들이 주민의 자치적 결정권이 그나마 보장되어 있는 기존의 구강보건법을 주민 자치권 및 선택권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불소 강제투입으로 몰고 가려는 교묘한 개정안을 내놓고, 이번 9월 정기국회 때 입법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불소가 충치예방에 효험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처음 시행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1908년 콜로라도의 온천지역 사람들이 거의 충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 이래 불소와 충치예방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비교조사 후, 1939년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불소이용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후, 세계는 불소의 효력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불소의 위해성과 충치억제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연구 또한 두텁게 함께 축적해 왔다. 서유럽과 캐나다는 불소를 외면하고 있고, 미국은 여전히 논란중이고, 우리나라는 불소의 충치억제력을 눈꼽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20여년 동안 불소화사업을 확대하려 하고 있으나 몇 도시에서 무차별 강제투입을 사절하는 뜻깊은 주민자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불소화의 위험성이 이익을 능가한다는 성실한 연구결과가 밝혀지고 있고, 강제투입이 안고 있는 전체주의적, 윤리적 문제가 설득력을 얻고 있으나 보건복지부는 오로지 ‘니네들 어린 백성들의 구강건강을 위해 애쓰는데 왜 이리 말이 많냐’는 식의 시대착오적인 우격다짐의 기운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일부 순수한 치과의사들의 국민건강을 위한 경건한 배타적 신념은 그렇다손쳐도 불소화 강제법안을 어물쩍 통과시키려는 국회의원들은 왜 그러실까. 불소를 그 부산물로 대량배출하는 비료공장과 혹 무슨 관계가 있지나 않을까. 복지부의 불소화사업단이 해체될까봐 염려되어 그럴까. 필경 밝혀지겠지만, 지금으로선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토록 백성들의 구강건강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소화된 물을 마시고 싶지 않다는 정서를 존중할 수는 없을까.

불소가 설사 충치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그렇다. 어렵게 말할 것 없이 장삼이사의 정서로 풀어보자. 겨우 세 살에서 여섯 살까지만 도움이 되는 어린이 구강건강을 위해 다 큰 사람들이 수돗물에 넣어진 불소를 왜 평생 마셔야 할까. 아무리 기준농도가 1ppm 이하라 해도 물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어이해야 좋단 말인가. 그렇다고 생수로 해결될까. 수돗물로 끓인 된장국, 콩나물국, 짬뽕국물에서 이 세상의 누가 자유로울까. 특급호텔 주방에서는 수돗물을 안 쓸까. 불소의 장기섭취는 각종 골질환, IQ(아이큐) 저하, 송과선 호르몬 분비저해 등 뇌손상도 초래하고, 혈중 납농도 증가로 난폭한 성격이 형성될 수도 있다는데. 학군조정 이야기가 나오자 “강북의 공부 잘하는 애들은 사절한다”는 ‘대치동 아주머님’들이 만약 수돗물의 진실을 알아채면 어이하려고 이럴까. 긴 논란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해법이 있다. 불소를 수돗물에 안 넣으면 된다. 혹은 그 결정을 주민자치에 온전하게 넘기면 그만이다.


9월 정기국회 때, 선량들께서 수상한 개정안을 찬찬히 눈 부릅뜨고 살펴 불소를 강제로 먹이려드는 시대착오적인 구강보건법이 입법화되지 않도록 진력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물은 끝내 제대로 흐를 것이라 믿는다.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