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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1 19:16 수정 : 2006.01.18 16:24

자전거 여행 중 한 교회 정문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영국에서 온 두 대학생 마크 칠드런(왼쪽)과 마크 미첼. 두 사람은 서로 안 맞는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한 팀을 이루고 있다.

켄터키주 시블리에서 만난 묘령의 요가 선생
그는 육체를 보리고 영혼의 문 열기 위해
견과류와 씨앗, 해초만 먹으면서
하루에 14시간씩 자전거 탄단다
명상을 위한 라이딩, 나와 수준이 다르다
운동이 사람을 신성으로 인도하는지는 잘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16

모텔에 투숙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바깥세계와 단절되기 때문이다. 반면 펼쳐진 공간에 텐트를 치면 사람들과의 통로가 열린다. 여러 사람들이 같은 방이나 공간을 쓰는 호스텔에서는 보다 쉽게 유대가 형성된다.

캔터키 주 시브리에 있는 제일 침례교회가 바로 그런 곳이다. 목사 밥과 부인 바이올렛은 1979년부터 교회를 바이크 라이더들에게 개방해왔다. 샤워 시설도 있고 주방도 있다. 침대만 없다. 이곳에서 서진하는 바이크 라이더 세 명과 함께 숙식할 기회를 갖게 됐다. 캔터키 주를 통과할 때까지 캠핑을 주로 해왔지만 다른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던 나로서는 마음이 들뜨는 일이다.

세 사람 중 두 명은 마크 칠드런과 마크 미첼. 칠드런은 런던대 킹스 칼리지 의대 3학년이고 같은 3학년인 미첼은 런던대의 물리학도. 그들을 시브리로 가는 도중 만나서 교회의 숙박정보를 가르쳐주며 먼저 가 있으라고 했다. 키가 삐쭉하게 크고 피부가 하얀 칠드런은 운동과는 관계 없는 약골처럼 보이고 키는 크지 않지만 검게 탄 미첼은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그는 헬멧도 안 쓰고 모든 짐을 배낭에 담아서 메고 자전거를 탈 만큼 다혈질이다. 보통은 어깨가 아파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 전혀 안 어울려 보이는 두 사람이 한 팀이 된 것은 같은 기숙 아파트에 사는 미첼이 미국 횡단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칠드런이 따라왔기 때문.

서진하는 동지들 만난 즐거움


미첼은 점심으로 피자 한판을 혼자 다 먹었다. 그런 뒤 바로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에 발을 얹고 출발 채비를 갖췄는데 뒤늦게 햄버거를 우적우적 먹은 칠드런은 온 몸 구석구석 선크림을 바르고 콜라 컵에서 남은 얼음 조각들을 물통에 하나씩 집어넣으면서 시간을 질질 끌었다. 미첼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출발해버렸다. 칠드런은 아랑곳하지 않고 섭씨 37도 무더위에 바로 녹아버릴 얼음조각들을 일일이 넣었다.

나머지 한 명은 제일 침례교회에 들어와서 만난 묘령의 여자 라이더 앨리슨. 노스 캐롤라이나 주에서 요가를 가르치는데 콜로라도 주 볼더까지 간다. 인도 남부까지 가서 하타 요가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말랐다. 베간(vegan)이다. 베간은 채식주의자 중에서 가장 극도로 음식을 절제하는 사람들이다. 고기는 물론 우유나 계란도 안 먹는다. 2002년 7월 <시엔엔(CNN)>과 <타임>의 여론조사에서 미국 응답자의 4%가 채식주의자라고 말했는데 그 적은 수의 채식주의자들 중에서 베간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불과 5%다. 그러니까 응답자 전체로 보면 1천명 중 2명꼴이다. 그의 주식은 견과류와 씨앗 그리고 말린 해초.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하려면 엄청난 칼로리가 필요하다. 하루에 8시간, 그것도 짐을 끌고 타면 최소한 3천~4천 칼로리를 소비한다. 그런데 탄수화물은 거의 없는 음식만 먹고 그가 어떻게 장시간 자전거를 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자연식품은 이 촌에서 구하기도 힘들다. 그는 지나가는 우체국마다 소포로 음식을 미리 부쳐놓고 사흘에 한번 꼴로 우체국에 들러 찾아서 먹고 간다. 의대생인 칠드런은 그의 설명이 이해가 안 된다고 나중에 말했다.

앨리슨은 자전거여행을 ‘우주로의 유영’으로 비유했다. 그는 “물리적인 육체를 버리면 영혼의 문이 열린다”면서 특히 “자전거의 순환운동은 당신을 당신의 사고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줄여서 말해 그는 명상의 방법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 것. 나는 지금까지 자전거혁명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는 라이딩를 통한 영혼의 열림을 얘기하고 있는 것. 차원이 다르다.

그는 라이딩 속도는 느리지만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14시간을 탄다고 한다. 그렇게 사흘만 타고 나면 몸의 저항이 무너지면서 끊임없이 페달을 밟을 수 있다는 것. 그는 내일 라이딩을 위해 준비운동을 한다면서 물구나무서기를 비롯, 연체동물 수준의 다양한 동작을 선보였다. 그리고 밤 10시께 잠자리에 드는데 목사 밥이 여성이라고 해서 특별히 매트리스까지 배려해줬지만 그냥 딱딱한 바닥에 슬리핑백을 덮고 베개도 없이 잤다. 너무 신기한 존재여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는 아침에 먼저 출발할 테니 나중에 매리온에 있는 도서관에서 만나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미 가고 없다.

그처럼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 영혼의 고양을 설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스리 친모이. 자기 초월적 운동을 통한 마음의 평화를 얘기한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조직한 스리 친모이 마라톤 팀은 매년 경주를 주최하는데 그 경주 길이가 좀 길다. 4960㎞다. 풀코스 마라톤을 100번 이상 뛰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길이면 캘리포니아 주에서 플로리다 주까지 미국 남쪽을 횡단할 수 있다. 하지만 선수들은 미국을 실제로 횡단하지는 않는다. 뉴욕 시내의 길 하나를 정해놓고(기억엔 84번가였던 것 같다) 그 콘크리트 길을 왕복한다. 그 길의 길이가 878m니까 같은 길을 5649번 달려야 하는 고행이다.

명상의 방법으로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는 앨리슨이 밤에 몸을 풀고 있다. 그는 물구나무서기를 비롯, 연체동물 수준의 다채로운 동작을 선보였다.
878m를 5649번 달리는 고행

나는 이 경주가 대륙을 뛰어서 가로지르는 것보다 더 힘들 거라고 단언한다. 같은 길을 한두 번도 아니고 수천 번 왕복하면 머리가 핑핑 돌 것 같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열 명 남짓한 레이서들에게는 경주가 아니라 자기 안으로의 여행이다. 같은 길을 왕복할수록 자기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결승선의 끝에는 마음의 평화가 있다고 하는데 그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달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천국에 도착한 기분일 것이다. 스리 친모이 마라톤 팀은 이 대회 외에도 열흘 달리기, 엿새 달리기, 닷새 달리기 등으로 다양하게 몸을 괴롭히는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스리 친모이는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가 세운 아쉬람에서 명상을 배워 운동에 적용했다. 극단적인 자기초월적 운동이야말로 사람의 신성을 깨우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몸에 대한 생각이 기독교와 다르다. 성경의 고린도전서 7장 19절을 보면, 바울 역시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몸은 음욕과 같은 얼룩이 묻지 않도록 항상 깨끗이 닦고 문질러야 하는 제기와 같은 그릇이라고 하면 스리 친모이가 주장하는 몸은 바다와 같은 영성이라는 물을 담기 위해 끝없이 퍼 나르는 바가지 같은 것이다. 스리 친모이는 ‘바가지를 닦는 방법’으로 금욕의 독신생활과 채식, 명상, 봉사를 강조한다.

그 자신도 풀 코스 마라톤 21번, 울트라 마라톤을 5번 완주한 장거리 주자였다. 그러나 어느 날 무릎을 다친 뒤 그는 제자리에서 하는 운동으로 전환하는데 그게 들어올리기다. 처음엔 40파운드짜리 바벨로 시작해서 7063과 3/4 파운드까지 들어올렸다고 한다. 7063파운드라면 3199㎏이다. 3t이 넘는 무게를 들어올렸으니 이런 세계 기록이 없다.

그가 드는 것들은 특이하다. 송아지, 소형 항공기, 픽업트럭…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하나된 가슴으로 세계를 들어올리기(Lift Up The World With a One-Ness Heart)’로 명명하고 지금까지 7천명을 들어올렸다. <뉴욕타임스> 코리 킬거넌의 2004년 7월1일자 기사에 따르면 넬슨 만델라, 데스몬드 투투 추기경,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제시 잭슨 목사를 비롯, 에디 머피, 수전 서랜던, 오노 요코, 리처드 기어도 그의 바벨이 됐다. 심지어는 일본 씨름인 스모 선수들도 그의 괴력 앞에서는 갓난 아기처럼 번쩍 들어올려졌다고 한다.

그 기사에 따르면 그는 “신의 은총 앞에서 불가능한 건 없다”고 말했는데 내게는 어릴 적 동네에서 트럭을 이빨로 끌던 차력사가 왜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키 168㎝ 몸무게 77㎏의 72살 노인이 몇 t을 들어올린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사기극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그는 “나는 그런 기록을 만들어내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고 초연하게 말했다.

그가 말한 것을 다 믿는다면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물이다. 그는 하루에 1시간30분밖에 안 잔다고 말했다. 평화와 자유의 상징으로 새를 그려왔는데 지금까지 1400만 점을 그렸다고 한다. 안 자고 그리지 않은 이상 그렇게 많이 그릴 수 없다. 더구나 1400권의 책을 썼고 8만 편의 시를 썼고 20만 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100가지의 악기도 연주할 수 있다고 하니 질을 떠나서 양만으로도 범접이 불가능한 경지다. 그는 세계에 7천명의 제자를 두고 있으며 뉴욕시 퀸즈에 사는 그의 집 주변으로 제자들이 하나 둘씩 둥지를 틀어 공동체를 이뤄가는 중이다. 킬거넌 기자는 스리 친모이가 직접 배우 제프 골드블럼을 특수제작한 들것에 담아 들어올리는 것을 목격했다. 기자 자신도 들어올려지는 ‘은총’을 입었다. 스리 친모이는 아마 이래도 안 믿겠느냐는 뜻으로 기자를 든 것 같다.

나는 스리 친모이를 신봉할 만큼은 알지 못한다. 그에 대해서는 몇 년 전 아르코산티라는,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의 생태공동체 마을에서 만난 데니스에게서 들은 뒤 관심을 가져왔지만 그의 명상 센터로 찾아간 적은 없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만큼은 내 몸으로 공감한다. 운동이 신성까지 인도하는지는 몰라도 몸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퍼내는 펌프질은 맞다. 두뇌 세포의 10%도 못 쓰고 죽는 것처럼 우리가 얼마나 많은 몸의 가능성을 사장하고 사는지를 운동은, 그리고 그의 삶은 일깨워준다.

1928년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 달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체로키부족 출신의 앤드류 페인은 3월4일 로스앤젤레스를 출발, 5475㎞를 뛰어 5월26일 뉴욕 시에 골인했다. 83일 만이다. 스리 친모이의 4960㎞ 달리기에서 최고 기록은 42일 13시간24분03초다. 지금은 페인에 비해 두 배 빨리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그렇게 진화해왔다. 한국 최초의 마라톤이 열린 1927년 조선신궁체육대회에서 마봉옥은 3시간29분37초에 결승선을 통과해 우승했다. 지금은 웬만한 아마추어 마라토너라도 능히 넘을 수 있는 기록이다.

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앨리슨은 영혼의 문을 열어 제치기 위해 페달을 밟는다. 나는 라이딩 끝의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그리며 달린다. 자세가 다르다. 점심 같이 먹기로 했지만 점심 무렵을 훨씬 넘겨 매리온 도서관에 도착했다. 앨리슨이 안 보였다. 도서관 직원이 쪽지를 건네줬다. 20분 전 한 여성이 이 쪽지를 남기고 떠났다면서.

“택,

나는 서쪽을 향해 신성한 길을 계속 가려 해. 우리 길이 언젠가 다시 교차할 날이 있으리라고 믿어. 너는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영적 존재야… 그럼 성스러운 여정을 누리길 바라며.

앨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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