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술원 ‘우수도서’ 지원 잡음내며 흐르는 젖줄
|
우수도서 선정 4년째 끊임없는 뒷말
특정출판사 편중·이중지원 시비…
“많이 신청할수록 많이 받는 구조도 문제”
해법·대안제시도 잇따른다
커버스토리
올해로 학술원이 기초학문 분야 우수학술도서를 지원해온 지 4년째를 맞는다. 그동안 들어간 사업비는 해마다 50억씩 모두 150억원. 대학 및 공공도서관 등에 보급한 책은 2002년 373종 35만9577권, 2003년 365종 37만332권, 2004년 364종 34만7740권 등 모두 1102종 107만7649권에 이른다. 올해는 383종을 선정해 배포를 앞두고 도서관별로 신청을 받고 있다.
출판사나 저자한테는 우수도서로 선정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전국의 대학과 공공도서관에 일제히 배포되는 기회를 잡게 되니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1종당 평균 1300만원을 지원하는 것이어서 출판사한테는 적지 않은 경제적 도움이 되어왔다.
학술도서 출판이 시장성이 거의 없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 대부분 초판 500부를 찍어 2~3년에 걸쳐 소화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5년 이상 걸리고 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주문은 대개 ‘1종1권’식”이라면서 자사의 경우 “종수가 많아서 그나마 버틴다”고 말했다. 또다른 출판사 관계자는 “학술서적 자생력은 소멸했다”고 전했다. 이런 출판계에 학술원의 지원은 ‘연말 보너스’, ‘빈 집에 소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뒷말 또한 끊임없이 돌고 있다. 그만큼 출판동네가 좁으려니와 학술도서 출판사의 사정이 학술원의 지원에 목을 맬 만큼 절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뒷말의 핵심은 도서선정의 공정성과 특정출판사에 대한 호·불호. 우선 그동안 선정된 우수학술도서를 살펴보자.
우수 학술도서로 10권 이상 선정된 출판사는 2002년 서울대출판부(28), 아르케(18), 한울(15), 철학과현실사(14), 아카넷(14), 집문당(12), 월인(11), 민속원(10) 등 8곳, 2003년에는 서울대출판부(18), 아카넷(16), 철학과현실사(11), 아카넷(16), 한길사(11), 집문당(12), 박영사(12), 한국문화사(10) 한울(19) 태학사(12) 등 10곳, 2004년 서울대출판부(18), 민속원(12), 경인문화사(10) 등 3곳, 2005년 서울대출판부(23), 역락(11), 한울(12), 소명출판(12), 집문당(14) 등 5곳이다.
자생력 소멸한 학술출판계
해마다 서울대출판부가 부동의 수위다. ‘학맥과 인맥이 판치는 학계에서, 서울대 출신이 많은 학술원 심사위원들의 팔이 안으로 굽지 않았을까.’ 이런 의혹어린 시선에 대해 학술원과 서울대출판부 쪽은 모두 곤혹스러워한다. 학술원은 출판사를 따지지 않는다면서 공정하게 심사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심사위원들의 양심을 믿는다는 입장이다.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보지 말라. 공정을 기하기 위해 유엔에라도 맡겨야 하는가?” 서울대출판부 쪽의 항변이다. 선정된 도서에 대해서 썩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다는 축도 있다. 출판부에서는 양질의 원고를 엄선해 출판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원고가 많이 몰리는 가운데 1년에 4차례 부총장, 학처장 등 20명으로 된 출판위원회에서 계획서를 검토하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출판한다.” 관계자의 말이다.
서울대출판부에 대한 또다른 이견이 있다. “세금을 주수입원으로 하는 국립대에서 운영하는 만큼 국가 재정으로 이루어지는 학술도서 지원이 집중되는 것은 마땅치 않다.” 출판부에서는 “학교의 기금으로 설립된 것은 맞지만 산하기관도 아니고 영리를 추구하는 곳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해 학술도서 출판비용 등으로 1억~1억5천만원 지원이 있었지만 98년부터 폐지되어 이제는 대학의 보조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학술원 쪽도 “좋은 책을 선정해 지원하는 것이 원칙인 만큼 출판사 사정까지 간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서울대출판부 외에 상대적으로 많은 도서가 선정되는 출판사에 대한 뒷말도 없지 않다. 철학도서를 많이 내는 한 출판사는 철학계 원로인 ㄱ씨의 저서를 많이 출판하여 친분이 쌓인 터에 그 분이 학술원 회원으로 있어 알게모르게 우수도서 선정에 입김으로 작용하지 않았겠는가라는 지적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교수는 특정 출판사가 많게 드러난 것에 “어떤 배경이나 심사위원의 편향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그런 출판사들은 우수도서 선정을 목표로 출판해 응모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라는 견해를 보였다. 학술원 관계자는 “올해의 경우 몇몇 출판사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수효의 책을 지원신청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 출판사의 책이 많이 선정된 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술원의 우수도서 선정방식을 보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올해 접수된 도서는 4160종. 올해 383종이 선정되었으므로 경쟁률은 10대1이 넘는 셈이다. 문제는 접수된 도서의 숫자를 선정도서의 숫자로 나눠 비율을 구한 뒤 이를 분야별로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
“우연의 일치…입김은 없다”
일단 출판사에서 인문학, 사회과학, 한국학, 자연과학 등 분야별로 접수하면 학술원에서는 이를 분야별로 취합하여 다시 ‘소분류’ 한다. 인문학의 경우 동양철학, 서양철학 및 논리학 등 8개로 부문(제1 심사위), 동양사, 서양사, 현대문학, 고전문학 등 11개 부문(제2심사위)로 나누어 분류한다. 여기서 ‘현대문학’ 접수도서가 111종이라면 우수도서를 10% 11종을 선정하는 식이다. 출판사에서 많이 접수할수록 많이 선정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심사위원이었던 ㅂ 교수는 “학술원으로부터 선정 종수를 미리 통보받았다”면서 “경우에 따라 그 이하도 무방하다는 단서가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소분류 안에서의 선정 과정은 엄격하게 진행되었다”고 말했다. 소분류에는 각각 2~4명의 심사위원이 배정되어 4차에 걸쳐 심사하고 이견이 있을 경우 토론을 거쳐 합의를 이끌어냈다. 기준은 엄격하여, 박사논문이나 교재류는 제외하고 단독저작으로 내용의 충실성과 균형성 등을 따졌다. 각각 점수로 매기게 되어 있으며 선택 또는 탈락의 사유를 기록하고 심사위원이 서명하도록 하고 있다. ㅂ 교수는 “심사위원 개인의 호오가 작용할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어떠한 외부의 압력이나 암시가 없었고 소그룹에서 선정된 것이 최종심사에서 바뀌거나 추가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중지원 시비도 있다. “학술진흥재단(학진)의 지원을 받은 책을 학술원에서 다시 우수도서로 선정하여 지원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는 견해다. 한길사에서 출간되는 ‘한국학술진흥재단 고전명저번역’(서양편) 시리즈와 소명출판에서 출간되는 같은 시리즈의 ‘동양편’이 여기에 해당한다. 학술원은 사업공고문에 ‘다른 국가기관에서 이미 우수도서로 선정지원된 도서’는 선정대상이 아니라고 못박고 있다. 학술원 관계자는 “여기서 ‘다른 국가기관’은 문광부를 의미한다”면서 “학진의 출판 지원은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소명출판 쪽은 억울해한다. “학진의 책을 내면서 1종에 450만원씩을 받지만 학진에서 책 300권을 가져가 출판사로서는 득이 없다.” 그리고 “학진에서 배포하는 대상과 출판사의 판매처가 겹치면서 사실상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다.” 소명은 올해 초에 학진에 대해 순수지원으로 계약조건을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판권을 반납할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밖에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출판사별 종수 제한을 두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있다. 특히 대형출판사는 굳이 지원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것. 학술원은 우수학술 도서 선정이 출판사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우수도서 자체에 대한 지원이라는 일관된 입장이다. “출판사의 사정을 일일이 고려하면서 선정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을 잘랐다.
‘기계적 배포’ 낭비요인도 많아
올해 다수가 선정된 한 출판사의 사장은 “오히려 객관성이 담보된다는 조건에서 종수의 제한을 두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심사위원으로부터 종수가 많아 역차별을 받았다는 말을 전해들었다”면서 “출판사별 종수 제한을 두는 문화관광부의 우수도서 선정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도서의 배포와 활용도는 문제점이 비교적 뚜렷하다. 2004년의 경우 학술원은 국공립대 49곳, 사립대 155곳, 국공립전문대 12곳, 사립전문대 128곳 등 392곳에 34만7740권의 책을 보급했다. 19곳을 빼고 1종당 3권 꼴이다. 학술원에서는 “올해 40여곳을 뽑아 조사한 결과 배포한 책이 도서관에 모두 등록돼 활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도서관의 도서 보유 또는 학교별 특성과 무관하게 일괄 배포하면서 복본이 발생하고 활용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한 대학의 직원은 “학술서라 내용이 딱딱하지만 한권씩은 무조건 등록했다”고 전하고 “나머지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학의 사서였던 ㄱ씨는 “학생들의 전공과 판이하게 달라 장서로 구비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교수나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그래도 남은 것은 버렸다”고 증언했다. 비치의무 조건이 붙었다면 애초 도서를 수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입장은 모든 도서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학술원에서는 올해부터는 방식을 바꿔 도서관별로 수요를 파악해 배포할 예정으로 신청을 받고 있다.
이러저러한 뒷말과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들은 “이 제도는 학술도서 출판의 진작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지금의 제도가 학술도서 출판의 동기부여로 미흡하다는 견해다. 모든 도서관에서 학술도서를 의무적으로 구입하도록 해야 한다의 주장도 있다. 한 출판사 사장은 “학술원에서는 공정하게 심사해 선정만 해주고 그 책을 구입하는 도서관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일년 한차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액수나 종수가 적더라도 분기별로 나눠서 집행하여 구매의 흐름을 타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을 비쳤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