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8 15:27
수정 : 2005.09.09 14:26
지구촌은 지금
“2005년 허리케인 때 생사를 가른 것은 빈곤, 나이, 피부색이었다고 나중에 평가돼서는 안된다.” 메릴랜드 주의 연방 국회(하원)의원이 한 얘기는 여러가지 사실을 암시한다. 5-8일로 예정됐던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미국방문이 취소됐다. 늑장에다 부적절하고 무성의한 정부 대응에 비난이 쏟아지면서 내년 중간선거에서 의회의 공화당 우위가 1990년대 중반의 ‘깅그리치 혁명’ 이래 10여년만에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성급한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 정도로 문제가 계속 꼬이면 ‘북핵’문제 대응을 비롯한 미국의 한반도정책 구상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고 남북한 관계도 예상외의 흐름을 타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뉴올리언스 시내 인구의 3분의 2가 흑인이라지만 피재지의 난민들 거의 모두가 흑인이었다. 인구 50만 중 무려 10만이 자동차 등 탈출수단과 의지조차 갖지 못한 빈곤층이었다. 다수의 노약자들이 희생당했다. 저습지에까지 과도하고 무분별한 도시화가 진행됐다. 지하수와 석유·가스 등 자원의 무절제한 약탈과 난개발로 뉴올리언즈 시내는 지난 100년간 1m 가까이 지반이 내려앉았다.
초대국 미국의 공공조직은 사라졌으며 사람들은 갈갈이 찢어져 제각기 살기에 바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무정부 상태에 다름 아니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식 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결국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미리 맛보기로 보여준 셈인가. 그것도 매우 극적으로. 세계화란 미명하에 펼쳐지고 있는 시장주의, 정부개입 축소, 개인끼리의 무한경쟁, 자연자원의 무제한 약탈을 토대로 한 미국 자본주의는 약육강식의 또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소개를 기다리는 수천명의 교도소 수감자들 모습이라니. 사회질서 유지 자체가 사람간의 연대나 양식이 아니라 물리적 폭력에 주로 의존해왔음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지표로 보였다.
신자유주의란 결국 뉴올리언스 사태의 전세계적 확대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전쟁수행을 위한 군사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나 재해대책비와 사회보장비는 계속 깎였고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떠넘겨졌다. 피해가 심했던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주 방위군 병력 3분의 1 이상을 이라크에 파병해 놓고 있었지만, 정작 자국내 혼란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자기 힘에 도취된 일방주의의 귀결.
이번엔 그 책임을 전가할 ‘외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란이나 북한, 시리아 탓도 아니고, 중국이나 한국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여기에 미국시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름값 급등마저 겹치면 오랜만에 중간선거가 출렁일 수도 있겠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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