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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8 15:30 수정 : 2005.09.09 15:16

한나라당과의 연정 제안에 이어 대통령 임기 단축 등을 쏟아부으며 정치 인생을 ‘올인’한 노무현 대통령.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노무현 대통령 정치인생 건 연정론 정치권 넘어 민주개혁세력에 영향 위기 실상을 지역주의로 설명하지만 정치와 정책 따로 놀아 지지층 멀어져 문제가 복잡할수록 해법은 평범하다 지지기반 결속시킬 개혁정책 개발해 정책으로 실천하며 꿈과 희망을 줘라

포커스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론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연립정권 수립, 대통령의 임기단축 등과 같은 충격적 내용들이 노 대통령의 입을 통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노 대통령의 논지는 극히 간단명료하다. 여소야대 구도의 제도적 해소와 지역주의적 대결정치의 청산에 필요하다면 자신의 임기도 단축하고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순도식화된 연정론의 언어는 그 속에 포함된 잠재적 폭발력 때문에 뭔가 정치적 암호가 숨어 있지 않느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의 논법에 따르면 여소야대와 지역주의적 대결구도는 정치현실이며 중대선거구제를 포함한 선거구제의 개정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어 연정은 선거구제 개정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또 하나의 수단이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는 여소야대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소야대의 해소라는 취지와는 충돌한다. 중대선거구제는 또 다당제의 존립에 필요한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며 이는 지역정당의 난립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지역주의적 정치문화의 종식과도 배치된다. 따라서 연립정권 수립의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 셈이다.

노 대통령은 이같은 모순에도 개의치 않고 밀어부칠 태세다. 어차피 그의 말대로 ‘정치인생’를 건 올인 게임인 것이다. 그가 연정론의 어떤 밑그림을 갖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은 물론이고 민주-민주노동당과의 연정, 차기 대권구도와 관련된 대선주자간 연합,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제 개헌 등 그 폭이 매우 넓을 것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이 되면 예외 없이 내각제 개헌의 시도를 퇴임 후 신변보장과 영향력 유지라는 최고 권력자의 숙명적 희망사항을 실현하려고 했던 것처럼 그 역시 내각제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각제야말로 그가 연정의 명분으로 제시한 여소야대 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노 대통령이 거론하고 있는 한나라당과의 연립정권 수립은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문제는 또 차기 권력의 창출문제와도 관련되기 때문에 정치권 차원을 넘어 시민단체 등 민주개혁 세력을 포함한 광범위한 세력의 공론화 과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범민주개혁세력의 동의과정을 생략한 채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연정론을 강행할 경우 87년 김대중-김영삼 양김의 분열, 90년의 3당합당, 2004년 민주당의 분당에 이어 민주개혁세력의 비극적 분열로 귀결될 수 있다. 논의과정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며 민주세력내의 상호 불신과 반목을 심화시키는 등 그 내상은 치유하는데 상당히 긴 세월을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민주세력 공중분해 가능성도


현재의 정치현실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민주개혁세력에게는 모두 우울하고 힘든 국면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지지기반의 결속 내지 확대라는 정당으로서의 정공법적 노력을 포기하고 정치적 로또복권 뽑기 식의 모험주의적 노선을 추구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민주세력 전반의 공중분해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연정론을 제기한 것은 야권의 대선후보 주자들, 특히 선구그룹을 형성한 고건 전 총리와 박 대표 사이의 물밑 제휴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냐고 관측한다. 호남지역에서 지지도가 높은 고 전 총리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탄탄한 지지층을 구축한 박 대표가 제휴를 타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구도는 국가경영 능력 면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박 대표로서는 ‘행정의 달인’ 고건 전 총리와의 연합을 통해 자신의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고건 전 총리 입장에서는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을 공유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여기에 만약 민주당이 가세할 경우 차기 대선은 고건-박근혜-민주당의 트리플 연합체제가 결정적인 승기를 잡게 될 것이 뻔하다. 기본적으로 영호남 지역연합인 이 카드는 열린우리당의 고립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고건-박근혜 연합협상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진전됐는지, 또 두사람의 역할분담이 어떤 그림으로 이루어질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연정론 공세는 이러한 연합움직임 또는 그 가능성에 쐐기를 박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연정론은 나아가서 차기 대선의 후보간 연합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다목적 포석이다.

연정론은 노 대통령의 위기인식이 지역주의적 관점에 과도하게 기울어 있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위기의 실상은 지역주의적 대립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심각하다. 핵심지지층이 급속히 이탈하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40대 지지층은 이미 대부분 이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제는 30대층의 이탈이 시작됐다. 20대도 예전과 달리 지지열기가 크게 식었다. 전통적인 지지기반이었던 자영업자들은 가장 적대적인 비판그룹으로 돌아섰다. 지역적으로도 호남은 민주당 쪽으로 기울고 있는 추세이며 충청권 지지도 많이 줄었다. 수도권의 지지도는 한나라당의 절반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지기반이 거의 해체 직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지도자가 일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카드에 유혹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역사는 정치세력이 탄탄하고 강고한 지지층의 구축없이 권력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연합체제’(New Deal Coalition)는 집권정당이 정책을 통해 강고한 지지층을 구축함으로써 장기집권의 기반에 성공한 모범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루스벨트는 1929년 발생한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파산직전에 있었던 1933년 취임해 파격적인 뉴딜정책의 시행으로 미국을 구해냈다. 뉴딜정책은 노동조합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허용, 정년퇴직 뒤 연금의 지급 등 당시 대공황의 여파로 가장 고통받고 있던 노동자, 농민, 흑인, 이민 소수민족 등의 저소득 소외계층의 생존권 보장에 역점을 두었다. 이때 도입된 연금제도는 지금도 노인 및 아동 의료보험제와 함께 미국 사회보장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 결과 노조, 흑인, 유대인, 소수민족 등 뉴딜정책의 수혜계층과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남부지역 유권자 등으로 구성된 뉴딜연합체제가 형성됐다. 이들은 선거 때마다 민주당에 80%에 가까운 몰표를 던졌다. 루스벨트가 4선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달성한 것도 뉴딜연합이라는 강고한 지지층이 있어 가능했다. 이들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루스벨트는 과감한 개혁정책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갈 수 있었다. 또 민주당은 뉴딜연합체제의 절대적 지지에 힘입어 1960년대 중반 닉슨의 취임 때까지 약 30년간 장기집권할 수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재선에 성공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오너쉽 소사이어티’(소유자 사회)라는 구호를 내걸고 루스벨트가 도입한 연금제도의 부분적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도 바로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기기반인 뉴딜연합체제의 해체를 겨냥한 것이다. 이를 통해 공화당의 장기집권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개발 남발하며 투기 잡겠다?

역사는 아무리 위대한 정치지도자라 할지라도 시대적 흐름에 역류할 경우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은 전쟁기간에 영국 국민들로부터 추앙받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실시된 총선에서 애틀리 당수가 이끄는 노동당에게 참패했다. 전쟁기간에 국민들이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절대적 지지에 도취한 처칠이 영국국민들의 복지향상과 부의 재분배 확대 등 경제적 욕구에 눈을 감은 데 따른 결과였다. 한마디로 경제정책에서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2차대전의 프랑스 영웅 드골 대통령도 1968년 학생-노동자 혁명에 대해 위압적인 자세로 일관하다 국민투표에서 패배해 권좌에서 물러났다. 시대의 흐름을 거부한 결과였다.

노 대통령이 지지층의 강화라는 정공법을 무시하고 연정 등과 같은 모험주의적 방식을 고집할 경우 지지도의 반전이 어려워질 수 있다. 지지층의 이반은 보수세력의 발목잡기로 개혁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상당부분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 탓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또 각종 개혁정책을 수행했지만 이를 지지기반의 강화로 연결시키는데 실패한 데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개혁정책이 없어서라기보다 제대로 된, 지지층을 결속시킬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정책이다. 하지만 노 정권하에서 정치와 정책은 따로 놀았다. 정책과 정치를 총괄조정하는 사령탑이 존재하지 않았다. 집값안정, 노사문제, 교육, 복지 정책 등 핵심적인 개혁정책들에 대해 지지층은 어떤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얼마전 대대적으로 발표된 8·31 부동산 종합대책은 강도높은 부동산투기 대책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나 지역균형발전 문제를 수백개 골프장 건설, 기업도시, 혁신도시, 신도시 건설 등 주로 개발이라는 토목건축적 관점에서 접근해 온 정책기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부동산 투기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부동산투기대책의 효과는 반감된다. 개발정책은 정경유착의 주범으로 불리는 건설업자들에게는 복음이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환경파괴 문제를 등한시하는 노 대통령의 부동산정책에서 큰 혼란은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개 복잡한 문제일수록 그 해결의 열쇠는 평범한 데 있다. 29%의 지지도에 실망하지 말고 취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지층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파악해 이를 정책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집권세력이 야당과 다른 것은 정책을 집행할 수단과 조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장정수 기자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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