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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8 16:08 수정 : 2005.09.09 14:26

역사로 보는 한주

9월11일이란 날짜는 역사적으로 의미심장한 날이 됐다. 2001년 그날 뉴욕 쌍둥이 무역센터 빌딩이 납치당한 대형 여객기들의 충돌로 무너져내렸다. 오는 11일에는 ‘헨진(괴짜)’ 고이즈미 정권의 앞날을 가늠하게 할 일본 중의원선거가 치러진다. 또 32년 전 그날 칠레에서 육군장성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이끄는 쿠데타가 일어나 좌파 사회주의 인민연합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렸다.

아옌데 정권의 붕괴는 미국의 부도덕한 대외개입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그 28년 뒤의 뉴욕 무역센터 빌딩 붕괴와 아무런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제국주의 패권정책이 구축한 세계구조의 비극적인 귀결이라는 점에서 두 사건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1908년 칠레 항구도시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난 아옌데는 국립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칠레 사회당 결정에 참가했다. 38년 인민전선 정부에 보건장관으로 입각했으며, 58년과 64년엔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실패한 뒤 70년에 마침내 성공함으로써 역사상 자유선거를 통해 등장한 첫 사회주의 정권이 됐다. 70년 대선에서 인민연합의 아옌데 득표율은 36.29%, 보수당의 전 대통령 알레산드리는 35.76%, 기독교민주동맹의 도미치는 27.95%로 표차는 근소했다. 1, 2위의 결선투표에서 기독교민주동맹이 민 아옌데 쪽이 이겼다.

그러나 아옌데 정권은 나라 안팎의 정적들에 포위당했다. 국내의 부유층과 군부 등 기득권세력, 주변국의 군사독재정권들, 그리고 중남미를 자신의 안마당으로 여기는 미국은 반격을 가했다. 미국은 중남미에 사회주의가 확산될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했다. 이들의 지원을 받은 반정부세력의 아옌데 암살 기도가 잇따랐다. 73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면적인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파의 군부와 경찰이 수도 산티아고를 순식간에 장악하고 대통령관저를 공격했다. 소규모 저항군을 이끌던 아옌데는 포탄이 작열하고 있는 가운데 라디오를 통해 최후의 연설을 한 뒤 숨졌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피노체트의 군사평의회는 곧 노조 간부들을 감금, 고문, 살해했으며, 그 뒤 냉전이 끝날 때까지 16년간 수천명의 반정부파 시민들이 투옥, 처형당한 ‘더러운 전쟁’이 이어졌다. 일부가 피노체트를 경제개발의 아버지로 떠받드는 칠레 현대사는 한국과 많이 닮았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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