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
|
민정당 법통 이었지만 적 아닌 경쟁자로 인정 분열과 적대의 사회·정치문화 혁신해보자 그것이 노대통령 연정론의 목표 아닐까 ‘대통령 신하’가 ‘국민 왕’에게 상소하는 것 지금 고민해달라고 국민을 ‘고문’하는 것이다
최보은의 인터뷰 무제한/‘연정론 대변인’ 유시민의원 여의도 의원회관 816호실에 들어섰을 때, ‘천하의 유시민’씨는 캐주얼 차림으로, 길이가 잘 맞지 않는 바지혁대와 씨름중이었다. 열린우리당의 대표 스피커로서, 요즘은 대연정 담론의 해설가로서, 온갖 토론 프로그램 패널명단에서 그 이름이 빠지는 적이 없는 정치인. 인터뷰 요청을 한 직후부터 매일같이 이 매체 저 매체에 인터뷰가 실리는 바람에, 그럼 난 어쩌라고, 싶은 난감함까지 느끼게 한 여당 주요 정치인과의 대면이 이런 방식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 저런 심사와 평소의 호감을 버무려 “바쁘시겠다”는 인사말을 건네자 “전혀 바쁘지 않다”는 답을 탁구공처럼 경쾌하게 튀겨내며, 기어이 혁대 끄트머리를 잘라내더니 그제서야 자리에 앉는다. 바로 이런 점을 누구는 ‘가볍고 싸가지 없다’고 비난하고 누구는 ‘진솔하고 매력적’이라고 환호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최근들어, 특히 지난 1일 <문화방송(MBC)> <100분토론>에 출연한 뒤로 부쩍 비난을 듣고 있는, 예의 그 “싸가지 없는” ‘캐주얼 화법’이 그의 입에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지적 오만이기보다는 그의 말마따나 정치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데카당한 기질’ 때문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서 ‘캐주얼한 유시민씨’에게 굳이 스타일에 관한 자기검열을 권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최근 대통령 비공식 대변인처럼 되셨는데, 대통령과 주기적으로 소통을 하고 계신가요? =아뇨. 대통령은 지극히 상식적인 분이거든요. 대통령 말씀을 들으면 설명을 들어서가 아니라 직관적으로 왜 저 말씀을 하시는지가 와 닿아요. 저도 대통령과 동일한 사회적 맥락, 정치적 상황에 처해 있는 거거든요.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신제품’에 비유했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은, 신제품이 시장에 출시됐는데 소비자들이 작동법을 잘 모르니까, 그 작동법을 설명하는 매뉴얼의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대통령 정신분석이 유행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지난 <한국방송(KBS)>에 출연한 모습을 보고 ‘우울증’이라는 얘기도 하던데요. =(웃음) 청와대 뒤의 북한산 산세가 험해서 대통령들이 기가 죽는다는 말들도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산 산세보다 더 기가 센 분이예요. 제가 보기엔 지난 2년 반 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어요. 오히려 그동안 ‘포스’가 더 충전돼 가지고, 누가 그런 비유를 하던데 “피카츄였는데, 지금은 라이츄가 됐다”고요.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진화한 거죠. 그래서 ‘대연정 제의’가 나온 거예요. 노무현이란 신제품의 작동법 설명나서 -대통령이 로맨티스트, 이상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해요. =로맨티스트, 이상주의자 맞죠. 그렇다고 나라에 해가 됩니까? 문제는 지금, 대통령이 국민을 고문하고 있다는 거죠, 생각의 고문. 사람들이 막 골치아파 죽겠는 거예요.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데,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합시다, 미래를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건 목숨 걸고 할라요, 이러니까 국민들이 시끄러워 죽겠잖아요. 국민들은 일 잘하라고 뽑아줬는데 뽑아줬으면 자기가 알아서 하지 왜 같이 고민하자고 하느냐 이거죠. -그런 ‘생각 고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미리 고민 안 해두면 나중에 집중적으로 고민해야 될 시기가 올지도 모르니까. 지금까지는 대통령이 왕이고 국민이 신하였잖아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자기가 신하고 국민들이 왕입니다, 이러니까 생뚱 맞은 거예요. 그런데 노무현 신하가 국민 왕에게 매일 상소를 올리고 있는 거죠. 하도 올리니까 국민 왕이 지겨워서 ‘이제 이런 상소는 그만 올리라’고 명령했는데, 또 올려요. 그래서 국민 왕이 ‘한번 더 상소를 올리면 목을 치겠다’ 이러니까 목을 들이밀면서 상소를 올린 격이죠. -최근에 최장집 교수, 김동춘 교수 등 진보적 지식인들이 대거 ‘대연정 제의’ 비판에 나섰는데요. =최장집 교수님 글을 보고 막막한 느낌과 더불어, 대통령이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런 사람들조차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일이라면 그런 일이 대한민국에서 가능한가라는 생각. 대통령이 만찬 간담회 때 “전에는 분열주의와 싸웠는데, 이제는 분열 그 자체와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어요.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는 처음에 나도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지역분열 때문에 무슨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역분열 자체가 문제라는 뜻인 것같아요. 이제까지는 한나라당을 정권을 놓고 다투는 경쟁자로 보는 게 아니고 종국적으로 섬멸하고 박멸하고 사라지게 만들어야 되는 ‘적’으로 봐왔던 거잖아요. 이렇게 생각하고 일을 하게 되면 늘 마음 속에 적과의 투쟁을 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적개심, 증오, 분노를 내장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나도 피폐해지는 거죠. 많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런 심정에 사로잡혀 있어요. 한나라당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서, 우리는 그쪽에 대해서. 상대방을 말살과 배제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심리적 태도를 지니고 있는 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될 수 없어요. 이런 상황 자체를 극복하려고 하는 게 대통령의 생각인 것 같아요. 만찬 간담회 당시 조선시대 당쟁이 꼭 일제의 식민사관이 퍼뜨린 잘못된 사실만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이중환의 택리지 이야기를 하시면서, 당쟁이 한번 붙으면 “꼭 피를 보고 나서야 끝이 났다”라는 문장을 소개하셨어요. 그와 같은 분열과 적대의 심성과 문화를 뒤엎고, 적을 경쟁자로 인식하는 그런 문화로 옮기려는 것이 대통령의 목표가 아닌가 싶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나도 처음에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어요. 우리 현대사나 민족사를 보는, 우리 문화를 보는, 대한민국의 정치문화를 보는, 사회전반의 문화적 측면, 이런 것까지를 변화시켜야 본다는 그런 프로젝트일 거라는 생각말이죠. 그런데 가능하지 않은 목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에 대통령의 그런 인식을 이해해주는 지식인이 거의 없어요. 대통령이 그런 것 하겠다고 나선다는 사실을 용납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인 자연인, 그런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거의 없고. 그런 마당에 계속 하겠다고 그러시는건데 지식인 사회와 정치권, 일반 유권자들 속에 민정당 법통을 가진 정치세력에 대한 증오감과 원한의 뿌리가 너무 깊어요. 반대로 한나라당쪽에서는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도 없고. 굉장히 비극적인 사회적 상황이죠. 유쾌한 정치반란? 어휴 재미없어요 -그렇다면 지지입장이 바뀌신 건가요? =아뇨. 저는 끝까지 지지할 뿐 아니라, 성공이건 실패건 같이 할 겁니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 아닙니까. 설사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통령의 연정론 프로젝트가 무엇을 종국적으로 겨냥한 것이냐에 대해서, 가장 효과적이고 명료하게 문제제기를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대한민국 정치문화를 포함한 사회적 분위기의 혁신까지를 겨냥한 것이라는 성격 자체를 이해하는 사람 거의 없기 때문에,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만큼은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 지난 3-4일 참여정치연구회 1박2일 전국운영위 워크숍이 있었어요. 연정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하는 자리였는데, 중요한 결론중의 하나가, 한나라당을 적이 아니라 경쟁자로 인정한다는 것이었어요. 저부터도 그렇게 할 겁니다. -‘유쾌한 정치반란’을 표방하셨는데, 지금 유쾌하신가요? =재미 없어요. 어휴…(한숨). 임기 4년이니까 임기 끝날 때까지는 해야할 거 아니예요. -그럼 그 이후론 정치 안하실 건가요? =고민해봐야죠. 어휴…(또 한숨. 침묵). 뭐라고 말하기가 좀 그러네. 정치가 일정부분 권력투쟁일 수밖에 없거든요. 권력투쟁 자체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상적인 경쟁이기보다는 정서적 혐오감과 이데올로기적 증오감, 지역적 대결의식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뒤섞인 갈등구조 속에 있잖아요. 대통령도 어떨 때는 복수해주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슬퍼진다는 말씀하시는데 나도 그래요. 어쩌다가 실수로, 실수가 아니라 불운하게 <조선일보>를 보게 되는 경우, 식당에 들어갔는데 그냥 눈에 들어와서 김대중 칼럼 이런 걸 봤다든가 <문화일보>의 윤창중 칼럼을 봤다던가 이런 날은 속에서 치미는 거예요. 모욕당한 듯한 느낌 때문에. 그런 걸 하루에 몇 번씩 느끼면서 그걸 억누르고, 이러면 안되지 말하고, 그런 게 고통스럽죠.
|
최보은/전문 인터뷰어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