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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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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지음, 고정애 옮김, 삶과꿈 펴냄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인근 도시로 함께 가기로 한 친구가 약도를 꺼내며 멋쩍은 표정으로 한마디했다. 자기가 생각보다 겁이 많다고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며 파안대소했다. 목적지를 제대로 찾아가기 위해 두루 챙기는 것은 칭찬받을만한 일이지 않던가. 그런데 왜 친구는 그 상황에서 겁이라는 낱말을 썼을까. 가벼운 농담거리로 시간을 떼우면서도 그 생각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것이 살아남은 자들이 겪는 후유증은 아닐까 싶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숱한 사람들이 목숨마저 버릴 적에 우리는 아마 겁이 나서 뒷걸음질쳤을 터다. 아직 그이들 같은 확신이 서질 않아서, 또는 그 확신을 현실화하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여겨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인간적인 번뇌의 다른 표현인 겁은 흔히 비겁이라는 말로 바뀌어 옥죄여 왔으리라. 그 잔혹한 내면화에 맞서는 자기방어 논리가 바로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시민운동가들의 격려를 받았던 강상중이 결국 날인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을 때의 심정도 그러했을 성싶다. 그는 겁이 났을 것이다. 체포를 각오하고 맞선다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 확실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지금 형편에 내가 이런 고난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전위인 체하다 무의미한 희생을 당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를 바라보던 따뜻한 시선들이 싸늘하게 변했을 것이다. 그때 강상중을 감싸준 이는 도몬 목사였다. 국가 권력에 맞서는 시민운동은 늘 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했다. 계속 지게 되어 있지만, “그러나 어느 날인가 이기지는 못하지만, 지고 있지도 않는,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라고 격려했다. 강상중은 때를 기다렸다. 여기에 있는 자(인사이더)이면서도 저기 있는 자(아웃사이더)로서 일본과 동북아시아, 그리고 세계를 새롭고 정확하게 응시하기 위해 자신을 벼렸다. 역사에 희롱당한, 동북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한국계가 이 지역의 평화정착에 크게 이바지할 날을 꿈꾸었다. <재일 강상중>은 바로 그 때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난한 싸움을 벌인 강상중의 삶이 담긴 자서전이다. ‘고양이 이마’만한 고물상집의 아들로 자란 강상중은 끝내 일본사회에 편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 속에서 자라났다. 김대중 납치사건과 대학생들의 활발한 민주화운동에 자극받아 조국의 현실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베버를 연구하기 위해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할 적에 이슬람 부흥운동과 사회주의 종말, 그리고 신자유주의적인 보수혁명의 현장을 목격했다. 이때의 경험을 강상중은 “역사적 직감을 잘 닦고 갈아 날이 서게 만드는 결정적인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재일 강상중>을 읽다보면, 바리데기 신화가 떠오른다. 그 신화의 주제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버림받은 자들이 결국 세상을 구원한다, 정도가 될 듯하다. 재일교포라는, 조국이 못나 버림받았던 이들이 충돌과 대결의 시대에 교류와 평화의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의 불행한 역사를 넘어서는 희망을 일구기 위해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짓고자 하는 강상중에게 우리가 화답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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