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8 16:52
수정 : 2005.09.0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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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근대/고대사상사론
리쩌허우 지음. 김형종·임춘성·정병석 옮김. 한길사 펴냄. 전3권 각권 2만5000원, 3만원, 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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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국지식인의 ‘사상의 은사’ 리쩌허우
관념론 유물론 도식 벗어나 공자사상 주목
중국 마르크스주의가 주관적 관념론 변질 주장
좌절되고 굴절된 계몽의 필요성 다시 강조
18세기 서구 계몽주의 한계에 머문다는 비판도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직후의 <중국근대사상사론>(1979)부터 20세기의 황혼 무렵에 나온 <학설>(1999, 원제 己卯五說)에 이르기까지 출간년도가 20년이나 차이가 나는 리쩌허우(李澤厚)의 책 4권이 거의 동시에 우리말로 번역 출간되었다. 중국의 빠른 변화를 감안할 때 만시지탄이 있지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리쩌허우는 한마디로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상계의 덩샤오핑이었다. 그렇지만 요즘 중국 대학생들은 그가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고 하지만 80년대의 청년 지식인들에게 그는 당시 우리의 리영희 선생 같은 존재였고, 그의 책들은 <전환시대의 논리> 같았다. 그러나 무정한 시간은 흐르고 강호의 주인도 바뀌는 법. 90년대 초반부터 10년에 걸친 미국의 체류 기간에 중국은 정치보다는 경제, 사상보다는 학술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흐르고, 사상가로서 그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되었다. 중간에 혁명에 반대하고 개량을 강조한 <고별혁명>(1997)이라는 대담집을 홍콩에서 발간하여 잠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미 그건 낡은 레퍼토리에 불과하였다. 그렇지만 올해 75살 나이에도 여전히 <실용이성과 낙감문화>(2005)와 같은 새로운 저작을 쏟아내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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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설
리쩌허우 지음. 노승현 옮김. 들녘 펴냄.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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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출간된 <중국근대사상사론>은 그가 50년대에 썼던 탄스통, 캉유웨이에 대한 연구를 근대사 전반으로 확대하여, 옌푸ㆍ장타이옌ㆍ홍슈취안ㆍ량치차오ㆍ왕궈웨이ㆍ루신 등을 다룬 논문을 첨가해 완성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이들 사상가의 개인 연구에 머문 것이 아니라 근대 중국을 휩쓴 세 가지 선진적인 사회 사조, 즉 태평천국 농민혁명 사상, 개량파의 자유주의적 변법유신 사상 그리고 혁명파의 민주주의적 삼민주의 사상을 결합시켜 통일적으로 논하였다.
중국의 리영희 선생 같은 존재
왜냐하면 사상사 연구의 중심은 시대사조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러한 근대적 물결에 대항하였던 반동파의 사상도 깊이 연구할 필요를 역설하였다. 여기서 반동파의 사상이란 바로 주자학을 정통으로 여기는 봉건적 유가사상만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라는 외피로 위장한 당시의 봉건주의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 책은 사상통제가 엄격하던 조건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계몽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었다.
<중국고대사상사론>(1986)은 철저하게 전통을 때려 부수고 전반적으로 서양문화를 수입하여 민족을 개조하자는 입장(문화열 당시에 이런 입장이 주류였다)과 비판하면서도 보존하고 계승하자는 입장을 염두에 두면서 전통사상을 다룬 것이다. 그는 관념론과 유물론의 투쟁사라는, 이전에 유행한 철학사 서술의 도식을 벗어나 문화심리구조라는 색다른 용어를 동원해 공자 사상에 특별히 주목한다. 노장 사상이나 위진시대의 현학 혹은 선종 사상에 더 흥미를 느끼지만 그가 유가 사상을 중시한 이유는 바로 중국인의 문화심리구조의 형성에 유가 사상이 끼친 심대한 영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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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일어난 중국의 반제 구망()운동은 5·4 신문화운동과 결합하면서 근현대의 시작을 알렸다. 5·4운동은 ‘민주’와 ‘과학’을 구호로 삼았다. 그림 속에 ‘불평등조약 폐지’ 등의 구호가 보인다.(<중국 근현대사사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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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러한 문화심리구조가 원래 씨족 종법사회에서 기원한 것이지만 공자의 인(仁) 사상에 와서 계승 발전되고 한대에 이르러 뿌리를 내렸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특색이 바로 실용이성의 정신과 낙감문화(樂感文化, 죄의식을 중시하는 서양문화와는 다른)라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전통문화에 대한 색다른 명명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심리구조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전통이 단순한 비판을 통해 타도될 수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된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이는 계몽을 강조한 근대사상사론의 후퇴로 보였기 때문에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중국현대사상사론>(1987)에서는 다시 계몽을 강조한다. 이른바 구망(救亡)이 계몽을 압도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현대사를 점철한 각종의 혁명은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와 인권, 민주를 말살했다는 것이다. 이는 구망이 계몽을 불러일으켰다는 당시의 일반적 통념과 정면으로 배치되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한편 중국의 마르크스주의도 장기간의 전쟁 상황과 군사투쟁 속에서 주관적 관념론으로 변질되었고, 또한 인민주의와 중국전통의 도덕주의가 혼합되어 유물사관의 원칙과 마르크스의 원래 주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역설하였다. 요컨대 중국현대사에서 좌절되고 굴절된 계몽이 다시금 요청된다는 것이다.
<학설>은 비교적 최근의 저작으로 미국 체류 기간에 쓴 것이다. 이 책은 뒤의 사상사와 관련이 없는 듯하지만 사실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사전통(巫史傳統)설은 고대사상사 이전의 중국 전통문화의 원류를 탐색한 것이고, 유학4기설은 현대사상사 이후의 중국문화의 미래 발전 방향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샤머니즘이 아주 일찍 이성화되었다는 무사전통설은 중국문화의 특색으로 거론되는 실용이성과 낙감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해명하려는 시도로, 최근 10년간의 득의작으로 자평하고 있다. 이 주장은 신좌파의 대표자인 왕후이의 대작 <현대중국사상의 흥기>의 앞부분에 수용되어 그를 기쁘게 만들기도 하였다. 머우쭝산과 뚜웨이밍이 제창한 심성론 중심의 유학3기설에 반대한 유학4기설은 영미식 자유주의(외왕)와 포스트모더니즘(내성)의 도전에 직면한 유학의 ‘전환적 창조’를 촉구한 것이다.
유학의 ‘전환적 창조’ 촉구
대국을 조감하는 탁월한 능력, 세론에 휩쓸리지 않는 독립적 사고, 예리한 역사적 감각, 과감한 발언을 던지는 용기, 시적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문체 등은 그의 책을 다른 철학사나 사상사와 확연히 구별 짓게 만들고 있다. 원서가 출간된 이전과 이후에 여러 가지 다른 사상사가 나왔지만 중국의 사상사나 문화를 전체적으로 일별해 보기에 이만한 책은 아직 없다. 중국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번역본은 오랜 시간 공들인 번역과 역주를 보충하고 색인을 첨가하는 등 독자를 위한 배려가 돋보이지만 <중국고대사상사론>과 <학설>은 번역에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중국 대륙에서 근자에 벌어지고 있는 고전 암송 운동에 대해 리쩌허우는 그건 계몽이 아니라 “몽계”라고 비판하는 등 계몽주의자로서는 면모를 굳게 견지하고 있다. 다만 그가 말하는 계몽도 크게 보면 18세기 서구의 계몽주의에 머물고 있고, 계몽을 초월하려는 시도(루쉰에 대한 강조) 속에서 다시 전통과 타협하는 듯한 점은 그의 한계이자 중국의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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