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쉴러 또는 독일이상주의 창시
뤼디거 자프란스키 지음. 한저 출판사 펴냄. 2004년 |
괴테 그늘에 가렸던 실러 사망 200주년 맞아 재조명 자유 향한 창조적 열정으로 병·욕망·바깥 압력 등 극복
바깥세상 책읽기 독일에서 쉴러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19세기에 교수, 수공업도제, 사회주의자들이 쉴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우러러봤으나, 게오르그 뷔히너 같은 개혁적 문학인들은 쉴러의 도덕적 이상주의를 ‘자연을 치욕적으로 경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니체는 쉴러를 ‘도덕의 나팔수’에 빗댔다. 지금도 쉴러는 괴테와 더불어 독일 고전주의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괴테의 빛에 가려 제대로 된 평가는 부족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프리드리히 쉴러 사망 200주년을 맞는 독일에서는 그에 관한 출판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 지난해 가을에 출판된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평전 <쉴러 또는 독일이상주의의 창시>는 쉴러의 진가를 담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이미 하이데거, 쇼펜하워, 니체 평전을 출판한 바 있는 자프란스키의 문체는 평이하지만 내용의 깊이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19세기 이후 쉴러 평전은 수없이 출간되었지만 고전주의자로 굳어진 전기가 주류를 이루었다면, 자프란스키의 쉴러 평전은 그의 생애뿐만 아니라 작품이 씌어지게 된 배경, 심리적 상태, 괴테를 비롯한 동시대 지성인들과의 관계, 지적 행로 등이 작가적 상상력에 힘입어 극적으로 묘사돼 있다. 이 평전에서는 쉴러의 질풍노도 시절의 처녀작 <도적 떼>가 만하임에서 초연될 당시의 대성공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관중들은 눈동자를 굴리며, 주먹을 쥐고 발을 구르며 쉰 목소리로 고함 질렀고, 훌쩍거리며 옆에 있는 낯선 이들을 보듬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여자들은 거의 기절 상태로 비틀거리며 문으로 다가갔다.”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유년시절부터, 규율이 엄격한 카를스 학교 시절,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를 꽃피운 바이마르 시절까지 쉴러는 실제로 많은 것을 경험하진 못했다. 건강상태가 악화되면서, 여행을 거의 하지 못했고, 병상에서 창작활동에만 주력했다. 특히 이 평전은 ‘자유를 열망하는’ 쉴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805년 5월9일, 쉴러가 지병으로 숨진 뒤 의사들이 부검 뒤 “어떻게 이런 상태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살 수 있었는지 놀랍다”고 입을 모았던 일화를 들며, 저자는 쉴러의 ‘창조적 열정‘이 육체가 생물학적으로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게 한 것으로 추측한다. 덧붙여 그는 “그 열광의 힘으로 육체가 허락한 것보다 적어도 10년을 더 산 것”을 쉴러 이상주의의 첫 번째 정의로 든다. 즉 쉴러의 이상주의는 인간이 사물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물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다.쉴러가 의대생 시절이었을 때 졸업논문의 제목은 ‘정신과 물질의 관계’, ‘자연과 정신’, ‘뇌와 자유’로 지금 보더라도 시의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자프란스키는 쉴러가 의대생 시절에 육체의 기능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자유에 관한 고민에 이르게 되는지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후 쉴러는 1782년 과로로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 남은 생애 13년 동안 병마와 싸우면서도 독일의 셰익스피어로 불릴 만큼 <마리아 스튜어트>, <발렌슈타인>등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다. 외부적 압력, 육체적 욕망, 육체의 약함, 야비함에 굴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그의 작품과 생애에 관철돼 있다. 쉴러에게 진정한 자유란 자연존재인 우리가 묶여 있는 속박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쉴러의 자유사상은 칸트 연구를 통해 더욱 고양된다. 그는 <인간의 미적교육에 대한 서한>에서 ‘유희로서의 예술’에서 인간이 자유로워진다고 주장한다. 자프란스키는 현대에 ‘인간의 공격성’, ‘위험한 민족주의’가 전쟁대신 축구와 같은 스포츠를 통해 해소되는 것을 들어 쉴러가 말한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예술’을 설명한다. 즉 예술이라는 유희 속에서 인간의 ‘거친 자연’이 순화되는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의 쉴러 연구에서는 그의 이상주의적인 면만 부각되었다면, 자프란스키는 쉴러의 회의주의적인 모습도 포착한다. 즉 자프란스키는 쉴러의 작품에서 이상주의적 관점뿐만 아니라 허무주의적 관점도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쉴러 이상주의의 이중적인 면을 지적한다. <돈 카를로스>가 좌파 공화주의자의 반란에 관한 드라마라면 <유령을 보는 자>는 우파의 반란에 관한 소설이다. 또 인간은 우리의 욕구인 ‘의미 없는 무감각한 필요성’과 우리의 의지인 ‘살아서 사랑하는 연관성’ 모두에 종속되어 있다는 쉴러의 생각은 그가 한편으로 회의주의자이기도 했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자프란스키는 회의주의자 쉴러가 없었다면 열정주의자 쉴러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