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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8 18:33 수정 : 2005.09.09 14:23

“어떤 사람이 공자를 상갓집 개와 같다고 했다. 상갓집 개가 경황이 없는 주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공자도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이상을 펼칠 수 있게 해 줄 군주를 찾지 못하고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배병삼 풀어씀, 사계절 펴냄)) 그림은 공자의 생애를 104폭으로 그린 고판화집 <공자성적도>에서.

“폭력은 필부의 뜻조차 굴복시킬 수 없다”
공자가 꿈꾼 문명의 실체는 ‘신뢰’
‘신뢰’는 배려하는 마음 ‘인’에서 나오고
‘인’은 치사랑과 내리사랑에서 배양되니
가족문턱 넘으면 인류사랑이라


고전을 두고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잘 읽지 씸 책”이라고 비아냥댄 이는 스피노자였던가? 정작 <논어>야말로 이런 고전의 ‘역설적 조건’에 잘 들어맞는다. 잘못된 관습과 누추한 전통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을 뿐, 누구도 그 속내를 알려들지 씸다는 점에서다.

<논어>는 ‘공자의 어록’이다. 공자는 2500년 전 춘추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이 시대는 한 움큼의 밥을 위해 자식이 부모를 치고, 한 뼘의 땅을 다퉈 신하가 임금을 살해하는 대 혼란기였다. 공자는 폭력과 광기의 시대를 넘어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문명을 꿈꾸었다.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천하를 돌아다니며, 군주들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기껏 돌아온 것이라곤 ‘상갓집 개’라는 손가락질과, “콩과 팥도 구별하지 못하는 주제에, 선생은 무슨 놈의 선생이냐?”라는 비아냥거림뿐이었다.

그가 꿈꾼 문명의 정체는 신뢰(), 단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신뢰란 약속과 실천이 제대로 작동할 때 드러난다. 이를 위해선 먼저 사람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라는 말의 뜻이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군신관계를 이룰 수 없고, 관계를 이루지 못하면 ‘임금’, ‘신하’라는 말이 뜻을 잃고 껍질만 남는다. 또 말이 뜻을 잃어버리면 어디다 발을 디뎌야 할지 모르는 무질서한 야만상태로 추락한다. 공자가 가장 염려한 것이 이 사태였다. 그래서 공자는 각자의 역할, 즉 명분()을 어김은 곧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까지 경고한다.

한편 문명사회에서 폭력은 결코 참된 정치력이 될 수 없다는 것도 공자의 확고한 생각이었다. 어떤 권력자가 “죽임으로써 질서를 잡는 것이 어떤가?”라고 질문했을 때, 공자가 대뜸, “정치를 한다면서 어찌 죽이는 방법을 쓴단 말인가!”라고 꾸짖은 데서도, 폭력은 문명의 요소가 아니라는 인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선언한다. “폭력을 가지고서는 한낱 필부의 뜻조차 굴복시킬 수 없다”라고.

공자의 위대한 점은 정치를 폭력으로써 뜻을 관철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당시 권력자들에게, ‘좋은 정치란 폭력이 아니라 신뢰의 힘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데 있다. 이 점은 동양의 정치사상 발전사에서 분수령에 해당하는 것이다. 공자는 그 이전 샤먼의 힘(신화)과 폭력의 힘(무력)에 의해 주도되었던 정치를, 말과 약속이 실천되는 신뢰의 세계로 전환시킨 최초의 사상가였다.

안될줄 알면서 뚜벅뚜벅 행한 실천가

한편 신뢰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공자는 이 배려하는 마음을 인()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인’을 어디서, 어떻게 배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가족 속에서 형성되는 내리사랑(자애)과 치사랑(효도)의 순환과정에 주목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내리는 사랑은 모든 동물들이 다 그렇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 속담처럼 아무리 못난 자식도 부모 눈에는 세상에 그럴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것이 하늘이 모든 동물의 유전자 속에 심어둔 사랑이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감사히 여겨 이를 되갚겠다는 동물은 오로지 인간밖에 없다. 공자는 이 인간만이 가진 치사랑(효도)에 깊이 감동하였고 이 사랑을 확산시켜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수 천 년을 두고 발휘되는 <논어>의 힘은 오로지 이 사랑의 발견에서 비롯된다.

내리사랑과 치사랑이 오고가고 주고받는 와중에 빚어지는 ‘사랑의 에너지’가 화목()이다. ‘가화만사성’이라는 글을 보신 적이 있을 텐데, 곧 ‘가족 속에서 형성된 사랑의 에너지는 사업을 이루는 데도 큰 힘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꿈꾼 사랑은 가정에만 머물지 씸다. 가정에서 익힌 사랑을 문턱 너머 이웃과 마을, 국가와 세계 더 나아가 숲과 동물들까지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유교를 두고 자기 가족만을 아끼는 ‘가족 이기주의’로 비난하는 것은 적어도 <논어>의 맥락에서는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당시는 약육강식의 시대가 아니었던가. 공자가 산길을 가다 울고 있는 여성과 만난 사건, 즉 호랑이에게 남편과 자식을 잃고서도 도회지로 나가 살지 씸 까닭을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기 때문”(. <예기>)이라고 하소연했던 고사는 당시의 폭력적 정치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면 가족간에 발효시킨 사랑을 바깥세상으로 펼쳐나가자는 공자의 꿈은 한낱 책상머리의 백일몽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는 단순한 관념론자가 아니었다. 공자는 당시 비극적인 현실을 냉정하게 관찰한 바탕위에서 사랑의 문명을 제시했던 것이지, 책상 앞에서 지적 유희를 즐긴 백면서생은 결코 아니었다. 예컨대 “선비의 책무는 뜻을 묵묵히 실천하는 데 있을 뿐! 오늘날 뜻을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이야 이미 다 알고 있는걸!”과 같은 표현 속에 그런 뜻이 잘 들어있다.

나아가 어떤 현자가 공자를 두고 비평한, “안 될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뚜벅뚜벅 행하는 사람”이라는 지적도 그의 정체를 잘 드러내 주는 말이다. 정녕 안 될 줄 알면서도 세상사에 개입하는 그 ‘비관적인 사회참여’야말로 공자의 특점이다. 이것이 사회현실을 비관하여 자연으로 물러나는, 즉 비관주의에 매몰되어버리는 은둔자의 세계관과 세상사를 비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사회에 개입하는 공자 사이에 패인 골짜기다.

문제를 사회구조의 탓으로 돌리며 뒤로 물러나 조소하는 은둔의 길도 아니요, 그저 제 한 몸의 안락을 위해 이념과 지식을 파는 참여일변도의 길도 아닌 그 사잇길, “안 될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뚜벅뚜벅 정의를 행하는” 이것이 공자의 길이다.

절망적 행태에 스민 공자 ‘목울음’

아! 눈을 감으면 찬바람 부는 가을의 황혼녘, 긴 그림자를 끌고 들판을 허위허위 걸어가는 공자의 모습이 보이고, 좀더 가까이 다가가면 그의 시린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보인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씸다면 군자가 아니랴”라던 그의 목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바로 이쯤이다. 시인 서정주가 <자화상>에서 표현한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는 시구를 빌자면, ‘공자를 만든 것은 팔 할이 목울음이다.’

목울음! 그렇다. <논어>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한 켜가 목울음이다. 그가 흐느낀 까닭은 눈앞에서 자행되는 인간들의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행태 때문이다. 하나 또 목 놓아 통곡할 수 없는 까닭은 인간의 천성 속에 사랑의 씨앗이 담겨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그는 내내 이 비극적 현실과 희망 사이에서 낚시찌처럼 요동친다. <논어>는 사랑과 증오의 변주곡일 따름이다.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학
<논어>에 개진된 공자의 꿈은 자기가족 챙기기에 머무는 편협한 사랑이 아니다. 가족 속에서 익힌 내리사랑과 치사랑을 문턱 넘어 이웃간에, 국가간에 그리고 인종 간에 더불어 나누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일까. 그 사랑은 사람만이 아니라 새나 물고기, 그리고 미물들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공자가 “낚시는 하되 그물질은 하지 않았고, 잠자는 새는 쏘아 맞추지 않았다”라고 한 것은 그의 사랑이 생물들에까지 미친 사뢨. 즉 인간도 동물이라 먹어야 살 수 있으니 물고기는 잡아야 하지만, 그물질을 하다보면 양보다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니 낚시로써 필요한 정도만 취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분별한 착취로 환경이 망가지는 이 시점에 공자의 생태계에 대한 사랑도 배울 만한 점이다.

50자평

◇ 황인용(62·수필가) “말은 통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말해 놓고 절차탁마하듯 공들인 주옥 같은 말이 논어다. 철학서 이전에 상징과 비유에 뛰어난 문학서인 까닭이다.”

◇ 최봉실(학술공동체 장미와주판(www.sophy.pe.kr) 운영위원) “공자는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을 가르쳐준 공자 스쿨의 좌장이자 동아시아의 스승. 논어는 형이상학을 말하지 않는 한 휴머니스트의 난세에 대한 경세서.”

◇ 김승영(성균관대 동양철학 박사수료) “봄날 기수가에 나가 목욕하는 것이 꿈이라던 공자의 모습에서 삶의 아름다움과, 모두가 한 후에 하겠다는 진정한 스승의 자세를 느낄 수 있다.”

▽ 다음주 이후 고전 <프로타고라스>(플라톤), <소네트 시집>(셰익스피어), <열하일기>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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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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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한 본문 해석과 깔끔한 해설, 논어 입문서로 제격)

논어집주

성백효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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