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15 16:35
수정 : 2005.09.16 14:09
동아시아는 지금
서울에서 자유로를 몇십분만 달리면, 맑은 날엔 바로 저 너머 개성 송악산이 또렷이 바라다보이고 곧 임진각에 다다른다. 명절 때 북에서 내려온 이산가족들이 모여 고향쪽을 바라보며 제를 올리는 임진각 망배단 오른편에는 ‘잃어버린 30년’ 노래비가 서 있다. 거기 설치된 단추를 누르면 노래비에 적힌 가사를 따라 가수 설운도의 애끓는 가락이 흘러나온다. 누구든 듣고 싶은 사람은 누르라는 설명문이 붙은 그 단추 달린 시설물에서는 누가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닌데 종일 구성진 가락이 흘러나온다. 평화축제가 열리고 있어선지 요즘 주말마다 수천명이 몰리는 임진각에서 듣는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은 결코 그냥 ‘뽕짝’이 아니다. 거기 막힌 경의선 철교까지 이어진 옆길의 시비 등에도 구구절절 새겨진 망향의 한들은 결코 ‘신파’가 될 수 없다. 적어도 거기에서만큼은 목놓아 핏줄을 부르는 그들의 절규는 만인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절창’이 된다.
잃어버린 30년이 어느덧 잃어버린 60년이 됐다. 삼국통일 이래 외세의 침략은 수없이 되풀이됐지만 나라 절반이 싹뚝 잘리고 수천만명이 반세기가 넘도록 생이별을 한 예는 없었다. 몽골의 원이나 만주족의 청이 침략하고, 심지어 일제가 수십년 식민지배를 했을 때조차 그런 생지옥은 없었다.
임진각에 갈 때마다 생각한다. 60년 전 마음대로 남의 나라를 동강낸 미국의 당사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뒤늦게나마 깨달았을까. 자국민의 고통과 죽음엔 그토록 민감한 그들이 왜 자신들이 부른 타국민의 고통과 죽음엔 그토록 둔감할까. 그들이 ‘이해타산’ 외에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할 능력을 지니기나 했을까. 60년 전과 지금 그들은 달라졌을까.
지난 11일 일본 중의원선거가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자민당 압승으로 끝나자 이웃 한국과 중국에서는 일본의 앞날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이 주조를 이뤘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기꺼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 정부 고위관리는 고이즈미의 압승이 주일미군 재편이나 자위대의 이라크 미군 작전지원 강화, 그리고 일본의 미제 소고기 수입 재개 등 큰 이익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 2002년 9월17일 평양행을 감행했던 고이즈미의 대북관계 개선 전망에 기대하는 시각들도 있다. 그러나 그때 고이즈미는 일본인 납치 사실을 고백하고 새출발을 다짐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평양선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때 일본의 급속한 대북접근을 견제했던 미국은 핵 선제공격 전략을 한층 더 구체화하면서 여전히 타국민의 고통에 눈감고 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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