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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5 17:19 수정 : 2005.09.16 14:09

옛 사람들은 달을 두려움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과학은 그 단단한 껍질을 한 꺼풀 벗겨냈다. 그곳은 이제 우주 개척을 둘러싼 각축의 장으로도 바뀌고 있다. 애틋한 달의 전설은 우주개척 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사진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수억년간 소행성과 혜성의 ‘융단폭격’ 때문에 ㎞급 운석구덩이가 3만개가 넘는다 중국은 월면 광물의 에너지화 가능성 조사추진 일본에선 월면을 평당으로 파는 사람도 있었다 옛 사람들은 두려움과 동경의 눈으로 바라봤지만 달은 각축과 투기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


한가위 특집/달의 과학

#1. 설화와 점성술 시대

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두려움과 동경의 대상이 돼왔다. 달에 관한 일본의 전래동화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옛날에 대나무를 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일을 나갔다가 대나무 속에서 작고 귀여운 카구야히메를 발견했다. 그날부터 대나무를 캐면 금은 보화가 쏟아졌고, 그는 곧 부자가 되었다. 자식이 없던 노부부는 그 여자아이를 딸처럼 사랑했고, 아이는 석 달 만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했다. 이 소문을 듣고 구혼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지만, 카구야히메는 아무에게도 청혼을 수락하지 않았다. 이 얘기는 천황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그도 카구야히메에게 결혼을 청했으나 결국 허사였다.

언제부턴가 카구야히메는 달을 보면서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는 원래 달나라 사람인데 죄를 지어 잠시 지상에 머물렀던 것. 그는 모든 죄를 다 갚았고, 음력 8월15일, 보름달이 뜨면 달의 사신들이 데리러 온다 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천황은 군사를 풀어 그를 지키려 했지만, 월군의 신비로운 힘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날개옷을 입은 채 세상의 모든 기억을 잊고 승천하는 카구야히메. 천황은 군사들에게 그가 남기고 간 편지와 불사약을 일본에서 높은 산에 올라가 태우라고 명했다. 지금도 그 연기가 피어오르는 후지산은 불사()라는 뜻과, 군사가 많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점성술은 달이 사람의 정신과 행동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고 믿고 있다. 보름달이 떴을 때에는 감정의 기복과 공격 성향이 나타나지만, 그믐 때는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영어에는 ‘루너틱(lunatic)’이라는 단어가 있다. 정신이상자, 미치광이, 괴짜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달이 사람 심리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속설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달에 관해서 과학적인 설명을 처음 시도한 이는 그리스 철학자 아낙사고라스였다. 그는, 해와 달은 암석으로 된 거대한 구이며, 달은 햇빛을 반사시켜 밝게 보인다고 말했다. 1609년,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처음 달을 보았고,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에 관측 노트와 함께 월면 스케치를 소개했다. 뒤이어 이태리의 리치올리와 그리말디는 월면지도를 완성했는데, 두 사람이 붙인 지명은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 후 달의 실체에 관한 가설과 추측이 난무했지만, 나치 지도자들이 ‘달은 고체 얼음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것은 매우 이채롭다.

#2. 과학탐구 시대


과학탐구를 통해 달의 수수께끼는 하나둘씩 걷혔다.

달의 인력은 지구의 바다를, 달과 그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며, 이렇게 ‘부풀어 오른’ 지역은 지구 자전에 따라 서쪽으로 조금씩 움직여간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밀물과 썰물의 원리다. 이러한 조수의 주기는 달 공전주기와 일치하며, 달, 지구, 태양이 일렬로 늘어선 보름과 그믐 때에는 달이 바닷물을 잡아당기는 힘(기조력)이 정점을 이루지만, 상·하현 때에는 최소가 된다. 따라서 보름과 그믐 때는 만조 수위가 높고, 상·하현 때는 그 반대가 된다. 물론, 달-지구 거리도 여기 가세해 근지점과, 보름(또는 그믐)이 일치할 때 만조가 최고에 달하는 반면, 원지점과 상·하현이 겹치면, 수위는 ‘바닥’을 친다. 기상 캐스터가 “천문조에 의해 이번 만조 때는…”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세계적으로 만조 수위가 가장 높은 곳은 캐나다 동북부 ‘펀디 만’으로 간만의 차가 무려 32m에 이른다.

기조력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져 있다. ‘바이오 타이드(biological tide)’란 달의 인력이 생체에 끼치는 효과를 일컫는다. 동물의 몸은 70~80% 이상이 물로 채워졌기 때문에 달의 인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과연 근거 있는 얘기일까? 해양생물의 짝짓기 패턴을 살펴보자. 섬게, 흰발농게의 생식주기는 달 공전주기와 일치하며, 굴은 보름과 그믐 때 껍질을 여는 것으로 보고됐다. 굴을 공수해 도심의 실험실에 갖다놓아도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 게다가 오스트레일리아 대보초 지역에서는 보름달이 떴을 때 무수한 산호충이 만조에 맞춰 정자와 알을 뭉게구름처럼 방출하는 장관이 연출되며, 물고기들이 1조수일(tidal day)의 ‘시계’에 맞춰 먹이를 찾는 행동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또 한가지. 달은 여성의 생리주기뿐 아니라, 분만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것은 양수에 기조력이 작용한 결과 나타나는 이상현상으로 풀이된다.

밀물과 썰물은 천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조수에 의한 바닷물과 해저지각 사이의 마찰력 때문에 지구 자전주기도 조금씩 길어지고 있으며 지구로부터 달이 멀어지고 있다. 달이 멀어지는 거리는 매년 38㎜, 그리고 하루는 매년 100만 분의 15초만큼 길어지고 있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면 10억 년 전, 달은 현재의 2분의 1 거리에 있었고 하루는 18시간, 그리고 한달은 20일에 불과했다.

#3. 우주개척 시대

망원경으로 달을 보면 3만개가 넘는 ㎞급 크레이터가 그 실체를 드러내지만, 우주선을 타고 내려다보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작은 운석구덩이를 볼 수 있다. 달이 형성된 직후, 수 억년 동안 소행성과 혜성의 ‘융단폭격’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또 달 표면은 말 그대로 ‘마그마의 바다’였기 때문이다. 절구에 떡을 치는 토끼 모양으로 검게 보이는 지역은 먼 과거에 용암이 흘렀던 평원이다. 흔히 우리가 ‘바다’라고 부르는 곳이다. 여러분이 우주선을 타고 달에 착륙한다면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될까? 달에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대낮에도 검은 하늘 밖에 볼 수 없으며, 무선통신이 유일한 대화 수단이 된다. 낮 최고 섭씨 130도, 최저온도는 영하 110도로 일교차가 매우 심한 곳이다. 달은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체중이 60㎏인 어른은 10㎏밖에 나가지 않을 뿐 아니라, 어렵지 않게 야구공을 펜스 밖으로 날릴 수 있다.

먼 옛날, 충돌을 일으킨 일부 소행성과 혜성은 물의 주요 공급원이 됐지만, 물은 산소와 수소로 분해되어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도, 달에 소량의 물이 남아있을 거라는 추측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마침내 미 국방성의 무인 달 탐사선 ‘클레멘타인’은 달 남극지역에서 얼음의 흔적을 발견했다. 장구한 세월, 햇살이 미치지 않았던 크레이터 그림자 속의 ‘얼음 창고’는 수십 년 뒤, 인류가 달을 개척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원으로 쓰이게 될지도 모른다. 2004년 2월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유인 우주계획을 발표했고, 중국 국립항천국과, 유럽우주국에서도 잇따라 달 탐사계획을 세웠다. 특히 중국은 월면 광물의 미래 에너지원으로서 활용 가능성에 관해 조사할 예정이며, 일본과 인도는 ‘루나-에이(A)’와 ‘셀렌’, 그리고 ‘찬드라얀’이라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 중에 있다.

과거 12명의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이 달의 흙을 밟았고, ‘고요의 바다’ 지역에 6개의 성조기를 꽂았지만, 미 연방정부는 아직 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유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원회(COPUOS)’의 ‘외계우주조약’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두 번째 조약, 곧 유엔의 ‘월면 조약’은 한 국가가 단독으로 달의 자원을 개발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지만, 여기에 단 한 나라도 서명하지 않고 있다. 달은, 이미 선진국들의 각축이 예상되는 미래 자원의 보고인 것이다.

#4. 미래 자원 달에도 부동산 투기가?

한 때 캘리포니아의 한 기업은 사람들의 꿈을 상품화했다. 이들은 별 밝기에 따라 가격을 매겼고, 그 ‘소유권’을 인정하는 증서를 고객들 손에 쥐어주었다. 문제의 업체는 일거에 벼락부자가 되었지만, 곧 법정에 서야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는 신생아실을 찾아다니며 월면을 평당으로 판 사람들이 있었고, 부르는 대로 땅값을 낸 순진한 아빠들도 예상 외로 많았다. 인터넷에서 “달+부동산”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이런 업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가운데 엄격한 법적 기준을 통과한 세계 유일의 기업이라고 주장하는 곳에서는 에이커 당 19.99달러, 세금(lunar tax) 1.51달러, 등기권리증과 월면지도에 대한 우송료 조로 10달러를 받고 있다. 현재 ‘월면 부동산’ 소유자는 100만이 넘는데, 이 가운데는 2명의 전직 미국 대통령과 항공우주국(나사) 직원들도 포함돼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 업체는 ‘지구 조망권이 좋은’ 땅은 수요가 폭주하기 때문에 1인당 한 필지로 매매를 제한하는 조항을 달아 놨다. 봉이 김선달 뺨치는 이들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달의 전매권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이러한 행위는 국제법상 전혀 효력이 없다. 하지만, 강남의 발 빠른 투기꾼들은 벌써 ‘지구 조망권이 뛰어난’ ‘고요의 바다’ 같은 지역에 손을 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문홍규/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옛 사람들은 달을 두려움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과학은 그 단단한 껍질을 한 꺼풀 벗겨냈다. 동화 속 천황이 월군()과 대적했던 것처럼, 그곳은 이미 각축과 투기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우주국은 달에 탐사선을 보내 옛 카구야히메의 애틋한 전설을 되살려 보려는 것일까.

가을 문턱을 훌쩍 넘긴 오늘 밤, 달이 여전히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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