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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5 17:32 수정 : 2005.09.16 14:08

김찬호/한양대 강의교수·문화인류학과

TV시청 바둑 화투…격리된 노인 수용소 독일 양로원선 컴퓨터교육 일반인 상대로 실시한다 자연스레 젊은층과 접촉 우리도 생기 불어넣자 경로당을 세대간 교류 징검다리 삼자

생활속의 문화사회학

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다. / 그렇게 고픈 배 접어 감추며 / 생(生)을 핥는지, 참 애터지게 느리게 / 골목길 걸어 올라간다. 골목길 꼬불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은 꼭지야. / 걷다가 또 쉬는데 / 전봇대 아래 그늘에 웬 민들레꽃 한 송이 / 노랗다. 바닥에, 기억의 끝이 / 노랗다. / 젖배 곯아 노랗다. 이 년의 꼭지야 그 언제 하늘 꼭대기도 넘어가랴 / 주전자 꼭다리처럼 떨어져 저, 어느 한 점 시간처럼 새 날아간다. (문인수 ‘꼭지’)

몇 십 년 동안 외국에 머물다가 한국을 찾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무엇이 크게 달라졌는지를 물어보면 노인들의 자태를 지적할 때가 종종 있다. 긴 수염과 두루마기, 비녀 꽂은 머리와 치마저고리가 사라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비록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당당하게 걸어가던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그 근엄한 이미지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뭔가에 짓눌리고 구석으로 몰리는 듯한 분위기가 측은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가난하고 가족도 없는 노인의 삶은 더욱 고단하리라. 시인은 독거노인의 황량한 일상을 묘사한다. 꼬부라진 허리에 실린 생의 무게는 보릿고개만큼 버겁다. 엄마 젖이 모자라 하늘이 노랗게 보이던 춘궁기의 이미지가 그의 현재에 중첩되고 있다.

한국의 고령화는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노인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집 안에서나 집 바깥에서나 처신하기가 옹색하고 구차스럽다. 사회에서 그리고 동네에서도 노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특정한 공간에 집결되어 있다. 경로당, 노인복지회관, 양로원 또는 ‘실버타운’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외부와 차단되고 격리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가운데 현재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경로당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지역 단위로 노인 전용 사랑방을 만든다는 취지로 생겨나기 시작한 경로당은 현재 5만여 개에 이른다. 경로당은 복지 서비스 전달 및 노인 정책의 기초 단위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경로당은 노인들에게 비교적 편안한 공간이다. 그런데 그 시간은 즐거운가. 거기에서 노인들은 대개 텔레비전 시청, 장기와 바둑, 화투 등으로 소일한다. 간간이 북과 장구가 비치되어 풍물을 배우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문화 학습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이는 부족한 예산 탓도 있지만, 노인들의 여가 향수 능력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다. 각박한 생존 또는 무한한 상승 욕구에 허덕이며 살아오느라 문화가 궁핍해진 것이다. 그래서 간혹 경로당이 음주와 도박의 아지트처럼 변질되기도 한다. 게다가 몇몇 노인들이 패거리를 이뤄 독점하면서 지역 공유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경로당의 소프트웨어는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 그것은 지역과의 접점을 넓히는 방향에서 다양하게 모색될 수 있다. 노인들이 동네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감들을 찾는 것이다. 옛날에는 그것이 넉넉했다. 호피 인디언들의 경우 노인들은 육신이 노쇠함에 따라 그에 걸 맞는 일거리들을 선택할 수 있었다. 가축 돌보기, 식물뿌리와 열매 채집, 실 뽑고 천짜기, 정원 가꾸기, 장식품 만들기, 곡식 빻기, 옷 꿰매기, 햇볕에 열매 말리기…. 노동의 강도를 서서히 줄여가면서 제 나름의 몫을 하는 것이다. 그렇듯 전통사회에서는 노인들에게 일정한 역할이 있었고, 그와 함께 사회 문화적 위상도 분명했다.

‘노동의 종말’이 무섭게 진행되는 지금 기존의 시장 안에서 일자리를 확보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 대신 시장 바깥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영역들에 눈을 돌리면 새로운 일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는 교통정리 자원봉사가 가장 일반적인데, 그 외에 동네를 안전하고 쾌적하게 꾸미는데 일손은 많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최근 늘어나는 ‘도심 농사’나 동네의 녹지를 가꾸는 일 등에는 노인들의 경험과 노하우는 요긴하다. 그들의 지식이나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은 다양하다. 최근 일본의 교토 부근에서는 비어 있는 민가를 활용하여, 거기에서 노인들이 옛날 요리나 바느질 같은 것을 동네의 젊은이들에게 가르친다. 중풍이나 치매 등으로 고생하는 노인들이 손을 움직이면서 뇌를 자극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렇듯 ‘노인 문제’는 근본적으로 ‘생활’을 회복하는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스스로 삶을 꾸려가는 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많이 노쇠해져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경우에도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난 해 독일의 어느 양로원을 방문했을 때 인상 깊었던 것 한 가지가 있다. 양로원에서는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는데, 그 대상은 일반인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양로원에서? 주민들이나 노인의 가족들이 컴퓨터를 배우느라 빈번하게 드나들게 되면 노인과의 접촉도 늘어나고 그러한 왕래가 그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었다. 이제 동네는 노인의 삶이 영위되는 터전으로 되살아나야 한다. 국가와 가정 사이에 그 완충지대를 넓힘으로써 재정의 압박과 가족의 부담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은 인생의 자연스러운 행로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위엄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장례식조차 모두 병원에서 치러지는 현대 도시에서는 그 모든 것이 기피와 은폐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경로’는 구호나 도덕이 아니라 삶의 즐거운 나눔이어야 한다. 경로당은 노인들의 수용소가 아니라 여러 세대 간 교류가 이뤄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노후를 즐겁게 상상할 수 있는 공간, 압축성장 속에서 잃어버린 ‘돌봄’의 따스한 능력을 재생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인생의 깊은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고매한 경지와 기풍에 매력을 느낄 때 ‘어르신’들을 경외하는 마음은 문화가 될 것이다. 고은 선생의 말씀 한 마디. ‘노인에게 물어볼 말이 없는 시대, 그 시대는 엉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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